[역사 속 아메리카 250] 그림으로 돌아보는 미국의 250년,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여성미술관(NMWA) 전경. 사진 = 국립여성미술관 웹사이트 캡처.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는 미국 역사 이야기, ‘역사 속 아메리카 250’입니다. 조진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조 기자,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올해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역사를 다각도로 돌아보는 전시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워싱턴 D.C.에서는 특별히 여성 화가들의 눈으로 미국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렸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여성미술관(NMWA)에서 개최 중인 ‘미즈 아메리카나(Ms. Americana)’ 전시인데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활동한 미국 여성 화가 9명의 작품 10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 등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미국 사회의 변화와 여성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이번 전시는 건국 250주년을 맞아 정치나 전쟁, 위인 중심의 거대한 역사에서 벗어나, 예술을 통해 일상을 살아간 대중의 경험과 삶의 궤적을 함께 돌아보자는 취지로 기획됐습니다.

진행자: 들여다보면 평범한 일상이나 정물, 풍경을 담은 그림들일 텐데, 이런 작품들이 어떻게 미국의 거대한 역사와 연결되는 건가요?

기자: 대표적인 예로 19세기 화가 애나 클레이풀 필(Anna Claypoole Peale)의 ‘딸기가 있는 정물화(Still Life with Strawberries)’를 들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과일 그림이지만, 당시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접했던 식문화와 사물을 예술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또 제니 오거스타 브라운스컴(Jennie Augusta Brownscombe)의 ‘젊은 사랑의 꿈(Young Love’s Dream)’은 19세기 시골집 앞의 인물들을 담아냈는데요. 이들의 옷차림과 주거 형태는 당시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진행자: 여성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는 가사노동을 담은 그림도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엘런 데이 헤일(Ellen Day Hale)의 ‘6월(June)’은 1893년경 제작된 작품으로, 창가에서 바느질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조용한 실내 풍경이 인상적인데요. 당시 여성들의 일상과 가사노동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만이 아니라, 가정과 일상, 사람들의 관계 역시 미국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죠.

진행자: 거창한 정치사 너머의 '삶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군요. 이번 전시에서 독자나 관람객이 특히 주목할 만한 화가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기자: 루이지애나 출신의 화가, 클레멘타인 헌터(Clementine Hunter)를 꼽을 수 있습니다. 헌터는 남부 농장에서 오랜 기간 노동자로 일하다가 50대 후반이 되어서야 붓을 들었는데요.

자신이 몸담았던 루이지애나 농장 공동체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습니다. 이번 전시작인 ‘교회로 부르는 종소리와 꽃들(Call to Church and Flowers)’처럼 교회 종을 울리는 모습, 수확철 풍경, 세례식이나 장례식 같은 일상이 주요 소재였습니다. 기존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흑인 공동체의 삶과 경험을 고스란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작품입니다.

진행자: 농장 일상뿐만 아니라, 당대 미국인들이 여가를 즐기던 역동적인 모습도 이번 전시회에서 엿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네, 제인 피터슨(Jane Peterson)의 ‘해변 풍경(Beach Scene)’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유롭게 담아냈는데요. 이 작품 역시 역사를 전쟁이나 정치로만 해석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쉬고 여가를 즐겼는지, 어떤 여가 문화를 누렸는지도 한 시대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이번 전시는 단순히 여성 화가들의 작품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작가 자신들의 삶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면서요?

기자: 맞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미술 교육이나 작품 판매, 전시 기회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의 화가들은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라 미리엄 필과 애나 클레이풀 필 자매는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의 초기 여성 회원으로 활동하며 전문 초상화가로 입지를 다졌고요. 릴리 마틴 스펜서(Lilly Martin Spencer) 같은 화가는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여성들이 단순한 감상자나 모델에 머물지 않고, 예술을 직업으로 삼아 주도적으로 삶을 일궈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진행자: 미국 건국 250주년이라는 시점에서 이 여성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재조명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겉으로는 익숙하고 정겨운 생활상을 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한계를 넘어선 도전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화가이자 사업가로서, 때로는 세계를 여행하고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미국의 문화적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림에 담긴 풍경뿐만 아니라 화가들의 삶까지 함께 읽어낼 때, 비로소 미국의 250년 역사를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진행자: 그림 뒤에 숨은 사람과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250년을 새로이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미즈 아메리카나’ 전시 소식, 조진우 기자와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