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 백브리핑] 미군 전투식량 MRE 뭐가 들어있나?

미군 전투식량인 ‘MRE(Meal, Ready-to-Eat)’

진행자) 세계 어느나라 군이든 ‘군인들은 항상 배 고프다’는 식의 농담이 있죠? 미군 장병들 사이에서도 먹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특히 훈련이나 작전 수행 중에 먹는 전투식량은, 생존이 달릴 수 있는 문제라 군 당국이 신경을 많이 쓰는데요. 미군 전투식량인 ‘MRE(Meal, Ready-to-Eat)’ 한 봉지에는 오랜 연구개발 노력과 과학, 그리고 병사들의 의견 수렴 결과까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에서 자세히 알아보죠, 오종수 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미군 전투식량을 ‘MRE’라고 부른다고요?

기자) 네. ‘Meal, Ready-to-Eat’의 영문 약자로 MRE인데요. 직역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식사’입니다. 1인분의 한 끼가 들어 있는 개인 식량이고, 취사 시설이 없는 야전에서 먹을 수 있게 개발된 건데요. 가벼운 포장에 담겨서 별도 조리 없이도 먹을 수 있는데, 특별한 도구 없이10분 만에 데워먹을 수 있는 게 핵심입니다.

진행자) 1인분이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기자) 황토색 파우치 형태의 봉투가 있습니다. 도시락 가방 크기만한 건데요. 이 봉투의 윗 부분을 뜯어 열면, ‘앙트레(entrée)’라고 하는 본 메뉴, 빵 종류를 비롯한 곁들이 음식, 그리고 디저트(후식), 입가심거리, 음료 가루가 나오고요. 아울러 가열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가열 장치로 앙트레를 데워 먹은 뒤, 음료 재료에다가 물을 부어 마시고, 디저트로 입가심까지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겁니다.

진행자) 전장에서 요리하자고 불을 쓰진 못할텐데, 봉투 안에 들어있는 가열 장치는 어떤 원리인가요?

기자) 무화염 발열기(Flameless Ration Heater·FRH) 기술입니다. 불을 피우지 않고 열을 내는 건데요. 가열 장치라는 게, 습기제거제 비슷하게 생긴 팩입니다. 팩 안에는 마그네슘과 철의 미세한 합금 가루가 들어있는데요. 여기에 물을 조금, 1.5온스(약 44ml) 정도 넣으면 금속 가루와 나트륨이 함께 화학 반응을 일으켜서, 수소 가스와 함께 순식간에 고열을 발생시킵니다. 화씨 100도(섭씨 약 56도) 가까이 도달하는데요. 불을 지피거나 전기 같은 걸로 가열할 필요 없이 오직 물 몇 숟가락만으로 메인 요리를 데워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조금 전에 뜯었던 MRE 봉투 안에 본 메뉴 팩과 가열기 팩을 함께 넣고, 입구를 접어 막은 다음10분 정도 기다리면 따뜻한 요리가 완성 됩니다.

앵커) ‘따뜻한 요리’라고 하니까, 전쟁터 또는 훈련장에서 체력을 소모한 장병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 되겠네요.

오) 물론입니다! 사실, 집에서 먹는 밥 만큼 맛있진 않지만 MRE로 식사할 수 있는 때만큼 야전의 미군 장병들에게 기다려지는 시간은 없거든요. 특히 가을이나 겨울에는요, 가열 팩을 작동시킬 때가 특별한 순간입니다. MRE 봉투에서 삐져나와 공중으로 모락모락 퍼지는 수증기가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미군 장병들 사이에서는 이 가열 팩을 향한 애정 표현도 있습니다. ‘rock or something(락 오어 섬씽)’이라는 말입니다.

진행자) ‘rock or something’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기자) 가열 팩 겉면에, 요리하는 동안 돌멩이 같은 걸로 받쳐 놓으라는 문구가 써 있습니다. “ROCK OR SOMETHING”이라는 영문 대문자 표시인데요. ‘돌멩이나 뭐 그런 거’ 정도의 의미인데, 이 말이 미군 장병들 사이에선 MRE 가열 팩을 향한 애정 표현으로 굳어졌습니다. 이 표현이 적힌 티셔츠를 입거나 각종 상품을 사용하는 장병들도 많고요. ‘ROCK OR SOMETHING’이라는 제목의 소셜미디어 페이지까지 있습니다. 미군 장병들이 MRE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드러나는 현상인데요. ‘ROCK OR SOMETHING’가 적힌 상품을 쓰거나 소셜미디어 페이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MRE를 좋아하는 민간인들도 많습니다.

진행자) ‘ROCK OR SOMETHING’이라고 적혀 있는 가열 팩으로 데운 요리를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MRE 봉투 안에 어떤 음식이 들어있습니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나요?

기자) 네. 여러 메뉴가 있고,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소고기 스테이크(beef strip)에서부터, 페퍼로니 피자, 각종 파스타, 브리토 볼, 그리고 아시안 닭고기 국수까지 다양한 메뉴가 들어있는데요. 전쟁부 산하 기관인 국방운수청(DLA)에서 총 24개 메뉴를 운영합니다. 이 24개 메뉴는 장병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라 계속 업데이트를 하는데요. 매년 바뀌고 있습니다.

진행자) 선호도에 따라 매년 메뉴를 바꾸는 거라면, 미군 장병들이 시대별로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겠네요?

기자) 맞습니다. 메뉴마다 번호가 붙어있는데요. 최근 20여년 간 메뉴 1번의 자리를 지킨 것이 칠리 빈스(Chill with Beans)입니다. 소고기와 양파, 마늘 등을 함께 걸죽하게 요리하고 콩을 넣은 멕시코식 음식인데요. 이게 2006년부터 MRE 메뉴 1번이었는데, 올해에도 1번입니다. 메뉴 2번은 돼지갈비(Pork Rib)였다가, 닭고기 파히타(Chicken Fajita), 소고기 바베큐(Shredded Barbeque Beef) 등으로 계속 바뀌더니, 지금은 닭고기 볶음(Chicken Stir Fry)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닭고기 볶음은 한국 음식의 닭볶음탕과 비슷한 식감인데, 고춧가루 양념이 안 들어간 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진행자) 선택지가 24개나 되는 건데, 인기 메뉴를 더 많이 만들고 비인기 메뉴는 아예 없애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기자) 군인들도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인기메뉴만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선택의 여지를 주고, 자유 의사를 존중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야전에 보급하는 MRE 박스 안에는 24개 메뉴가 골고루 들어있습니다. 현장마다 장병들의 선택이 몰릴 수가 있는데요. 미군 장병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 번호를 기억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즉석 거래가 이뤄지는데요. 예를 들어 ‘오늘 MRE에서 5번은 나한테 달라’는 식으로 전우들에게 미리 말해 두는 겁니다.

진행자) 그런 요구를 하는 병사와 거래를 한다면, 메뉴를 양보하는 대신 무얼 받나요?

기자) 곁들이 음식이나 입가심거리, 디저트, 음료 등 다양합니다. 아까 서두에, MRE 봉투를 뜯으면 본 메뉴 외에 빵 종류를 비롯한 곁들이 음식과 디저트, 입가심, 음료 가루가 함께 들어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이런 것들도 본 메뉴만큼 종류가 다양합니다. 여기서 또 장병들의 선호도가 갈리거든요. 그래서 본 메뉴와 디저트·입가심·음료를 상호 교환하는 식으로, 야전에서 장병들 사이 주고받는 거죠. 말하자면, MRE 봉투 속의 개별 항목들이 야전에서 화폐처럼 물물교환 수단이 되는 건데요. 삭막한 환경에 처한 장병들의 놀이 문화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본 메뉴와 함께 들어있는 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기자) 곁들이 음식은 빵과 땅콩 버터 혹은 잼, 크래커, 콘브레드, 치즈 스틱, 패스트리 같은 것들이 있고요. 디저트의 경우, 초콜릿 푸딩, 모둠 과일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입가심은 엠앤엠즈(M&M’s) 초콜릿, 스키틀스(Skittle’s) 캔디, 츄잉 검 등이 들어있습니다. 음료의 경우, 커피 또는 차, 탄산음료, 단백질 드링크 같은 것들이 가루 형태로 들어있어서 물을 부어 마십니다.

진행자) 식사 뒤에 후식과 입가심거리, 음료까지 MRE 봉투 하나로 꼼꼼하게 다 챙기는 구성이네요. 미군이 언제부터 이런 걸 먹은 겁니까?

기자) 1980년대부터입니다. 1981년에 MRE가 처음 생산됐는데요. 앞서 제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 때 미군이 먹던 ‘K-레이션(Ration)’과 ‘C-레이션’이라는 전투식량이 있었습니다. 특히 C-레이션은 과거 미군 전투식량의 대명사였기 때문에, 연배가 좀 되시는 분들은 많이 아실 겁니다. 이어서 베트남전쟁 때는 ‘MCI(Meal, Combat, Individual)’라는 전투식량을 사용했습니다. 이것들은 통조림 형태였는데요. 전장을 비롯한 극한 환경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무거워서 휴대·소지에 어려움이 있었고요. 따뜻하게 데워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이런 과거 전투식량들의 단점을 MRE는 모두 해결한 겁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MRE는 설명드린대로, 가열기가 들어 있어서 데워먹기도 쉽고요. 가벼워서 장병들의 군장에 여러 개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통조림 못잖게 오래 보관도 할 수 있는데요. 아까, MRE가 황토색 봉투에 담겨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이게 4겹의 특수 알루미늄과 폴리머 포장재입니다. 빛, 산소, 습기를 100% 차단하는데요. 음식을 봉지에 넣은 뒤 고온·고압으로 균을 완전히 사멸시키는 레토르트 기법을 사용합니다. 미군 규정에 따라 MRE는 섭씨 27도 상온에서 최소 3년, 섭씨 21도 조건에서는 5년 이상 보존되어야 하고요. 섭씨 40도가 넘는 사막 환경에서도 최소 한 달 이상 버텨야 합니다.

진행자) 3년에서 5년 동안 상온 보관이 가능하다니, 상당한 연구 노력의 결과인 것 같네요.

기자) 맞습니다. 미군에는 먹을거리들을 비롯한 장병들의 행동 양상 개선 문제만 연구하는 조직이 있는데요. 그 중에 한 곳인 ‘네이틱 병사 시스템 센터(Natick Soldier Systems Center)’가 MRE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네이틱 공보실 측은 현재, 차세대 MRE 가열기를 개발 중이고, 시험 단계라고 밝혔는데요. 물을 부을 필요도 없이 공기와 반응해서 음식을 가열하는 기술을 적용한 것입니다. 이 기술을 미군 당국이 10여 년간 연구해왔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MRE를 실제로 먹어보면, 맛은 어떻습니까?

기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래도, 집밥처럼 맛있진 않습니다. 제한된 환경에서 최대한 이상적인 식사를 하도록 만든 게 MRE이니까 맛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맛을 주제로 미군 장병들 사이에 농담도 많습니다. MRE라는 약어를 달리 풀어서, ‘Meals Rejected by Everyone(모두에게 거부당한 식사)’라고 하거나 ‘Materials Resembling Edibles(먹을 것을 흉내내는 물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병사들이 이렇게 별명으로 푸념하면서도 결국 야전에서 의존해야 하는 식량이라는 점에서, MRE는 미군 당국의 연구와 병사들의 입맛이 함께 만든 식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죠. MRE는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한 꾸준한 연구 노력의 결과이고, 지금도 계속 개선되고 있는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네이틱 공보실 측은 MRE가 “전투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는데요. 특수한 MRE도 보급되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베지테리언(Vegetarian) MRE’가 나온지는 오래됐고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 장병을 위한 ‘할랄(Halal) MRE’, 유대교 장병을 위한 ‘코셔(Kosher) MRE’도 있습니다. 미군의 모든 장병이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하는 당국의 노력이, 한 끼 식사에도 들어있는 겁니다.

진행자) 당국의 꾸준한 연구 노력과 장병들에 대한 배려가 집약된 미군 전투식량, MRE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 오종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