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장병들은 전시든 평시든, 언제 어떤 위험과 마주하든, 미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질 준비가 돼 있도록 훈련받습니다. 최근 워싱턴주 고속도로에서 이걸 증명하는 영화 같은 실화가 펼쳐졌는데요. 미군들이 대형 교통사고와 흉기 난동이 얽힌 사건 현장에 즉각 뛰어들어 범인을 제압하고, 9세·15세 소녀들의 목숨을 구했는데요,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과 함께, 언제 어디서나 국민을 섬기게 하는 미군 교육 훈련 체계까지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오종수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앵커) 얼마전 워싱턴주 고속도로 위에서 긴박한 사건이 일어났다고요?
기자) 네. 지난 5일 아침, 미국 서쪽 끝 태평양 연안 가까이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5번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워싱턴주 듀퐁 인근 구간에서 빠르게 달리던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이 있었습니다. 이 차는 줄곧 비틀비틀 불안정하게 주행했는데요. 출근 길이었기 때문에 차들이 많았는데, 위협적인 움직임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고속도로 중앙부를 가르는 콘크리트 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됐는데요. 이 때문에 같은 방향 교통이 완전히 마비되고, 반대 방향도 일부 지장을 받았습니다.
앵커) 무엇보다 전복된 차 안의 사람들을 빨리 구해야하는 상황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사고 현장 가까운 곳에 루이스-매코드 합동기지가 있어서, 당시 출근 중이던 미군 장병들이 많았는데요.
기지 내 매디건 육군 병원에서 간호 실무관으로 근무하는 제프 하이타워 중사가 그 중의 한 명입니다. 하이타워 중사는 사고를 목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비상등을 켜고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운 뒤 탑승자들을 도우려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전복된 SUV 차량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단순한 교통사고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반파된 사고 차량에서 내린 여성이 흉기를 휘두르고 있었는데요. 소녀 두 명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군 공보실과 현지 경찰을 취재해 확인한 사건 개요에 따르면, 흉기를 든 여성은 소녀들의 어머니였고, 9세·15세 자매 가운데 한 명에게 살해 위협을 했습니다.
앵커) 듣기만 해도 오싹하고 기가 막히네요. 1초가 급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겠습니다.
기자) 맞습니다. 하이타워 중사는 흉기를 확인하자마자 소녀들과, 어머니인 난동범 사이를 막아섰습니다. “그냥 본능적이었다”고 소속 부대인 매디건 육군 병원 공보실을 통해 밝혔는데요. “내가 훈련받은 것이 저절로 튀어나온 순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장면은 주변을 지나던 차량들의 대시캠(차내 녹화장치·‘블랙박스’) 등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하이타워 중사는 난동범을 막아서는데 그치지 않고, 곧바로 흉기를 빼앗기 위해 돌진했습니다. 소녀들의 생명이 걸려있었으니까요. 하이타워 중사는 맨 손이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흉기를 든 사람에게 혼자, 맨손으로 맞선 건데, 다른 도움의 손길이라도 있었나요?
기자) 네. 그 순간, 출근 길에 있던 다른 미군 장병 두 명이 차를 세우고 달려왔습니다. 제7보병사단 소속 리카르도 누녜스 병장이 먼저 하이타워 중사를 도왔습니다. 두 사람은 곧 난동범, 소녀들의 어머니한테서 흉기를 빼앗고 제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사이 워싱턴 주방위군 의무병인 알렉시스 맥케이 병장이 다친 소녀들에게 달려가 즉각적인 응급처치를 시행했고요. 워싱턴주 순찰대(WSP)가 도착할 때까지 심리적 안정을 도왔습니다.
앵커) 소속 부대가 각기 다른 장병들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팀을 이뤄 범인을 제압하고 소녀들의 목숨까지 구한 거네요. 역할 분담을 통해서요.
기자) 그렇습니다. 즉각적인 위협이 제압되자, 하이타워 중사는 부모된 마음으로 소녀들에게 다가가, 충격에 빠진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WSP에 범인인 어머니를 인계하면서 상황이 마무리됐는데요. 하이타워 중사는 “그날 아침 그 누구도 이런 일을 예상하고 차를 세우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 내 가족에게 바라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며, 현장에 모인 군인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완벽히 해낸 팀워크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공을 다른 장병들에게 돌린 겁니다.
앵커) 소녀들은 사건 이후 어떤 상태인가요?
기자) 둘 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입니다. 자매 중에서 동생인 9세 어린이는 다수의 자상과 함께, 골절상까지 입어서 집중 처치를 받았고요. 언니인 15세 소녀 역시 사건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앵커)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한테 돌진해 제압한다는 게, 말은 쉽지만 섣불리 하기 힘든 행동인데요. 군인이 전장도 아닌 일상 속에서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진 거잖아요?
기자) 미군 장병들이 일상에서 벌어진 대형 사고를 목격하고 목숨을 건 구조 활동에 나선 사례는 여럿 있습니다. 군 당국은 이런 일들을 주요 정훈 교육 소재로 삼고, 모든 장병들이 기억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최근 사건 가운데 대표적으로 지난해 3월, 조지아주 포트 무어 기지 인근 고속도로에서 발생했던 대형 자동차 화재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현장 인근에서 차를 몰고 가던 조지아 주방위군 제48 여단 보병 전투단 121 연대 1 중대의 존 링 주임원사의 이야기인데요. 앞서가던 대형 트레일러와 승용차가 충돌하며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했습니다.
앵커) 폭발 위험이 있는 화재 현장이었군요.
기자) 맞습니다. 연료가 유출돼 차량 전체에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자욱해 폭발 위험이 매우 높은 때였는데요. 주변의 민간인들이 보고도 선뜻 접근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링 주임원사는 망설임 없이 화염을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시간이 대단히 중요한, 위태로운” 때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앵커) 뛰어들어간 현장 속 상황은 어땠습니까?
기자) “SUV가 옆으로 누워있었고, 차량 바닥에서 불길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 남자의 몸이 거꾸로 늘어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링 주임원사가 설명했는데요. 이 남성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몸 상태를 봤을 때 “머리나 목에 부상을 입은 걸로 추정”됐고, “몸 전체가 안전띠에 매달려 있었다”고 하는데요. 링 주임원사는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한테, 혹시 칼이 있다면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걸로 안전띠를 끊어 냈고요. 차량 지붕의 선루프를 통해 부상자를 끄집어 냈습니다.
앵커) 상황 평가도, 그에 따른 결단도,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도, 모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한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링 주임원사는 곧바로 자신의 옷을 벗어 주변의 불을 끄고 유압 장비가 오기 전까지 군에서 익힌 응급처치를 시행했습니다. 조금만 지체했어도 차량이 폭발해 탑승자가 숨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는데요. 링 주임원사의 신속한 결단과 행동 덕분에 소중한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현지 소방대가 평가했습니다.
앵커) 참 대단합니다. 링 주임원사의 군 경력이 어떻게 되나요?
기자) ‘레인저(Ranger)’ 출신입니다. 이전 방송에서 주제로 다뤘던 미 육군 특공대, 황갈색 베레모를 쓰는 제75 레인저 연대, 기억하실텐데요. 주요 군사작전들마다 선봉에 들어가 전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정예 요원들이잖아요? 링 주임원사는75레인저 소속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다섯 차례 참전했고요. 미 중부사령부(CENTCOM) 작전참모실의 위기대응태스크포스 주임원사를 지냈습니다. 링 주임원사가 현재 소속된 조지아 주 방위군은 예비군입니다. 일반 시민과 다름없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군문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앵커) 미군 장병들이 이렇게 일상 생활 중 위기 상황을 맞은 시민들을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비결이 과연 뭘까요?
기자) 하이타워 중사와 링 주임원사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정답일 겁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고, 훈련받은 대로 행동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했는데요. 이게 바로 미군이 강조하는 ‘고도의 대비 태세(Readiness)’와 ‘행동 우선 가치(Bias Towards Action)’이고요. 이 가치는 전장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전사하는 것입니다.
앵커) 훈련받은 게 몸에 배어있어서 갑작스러운 흉기 난동 같은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현장을 통제할 수 있었던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하이타워 중사는 “군인으로서 받은 상황 평가 훈련과 의무 병과 교육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현장을 신속하게 평가해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는데요. 처음에는 교통사고 부상자 구조가 우선이었지만, 흉기 난동이라는 돌발 위협이 발생하자마자 스스로의 안전보다 주변 시민과 소녀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즉각 전환한 거죠. 그리고 이보다 앞서, 시민을 위하는 마음가짐을 거듭 다져왔던 게, 주저하지 않는 행동을 이끌어 낸 겁니다.
앵커) ‘시민을 위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건 훈련으로 안되는 거 잖아요, 어떻게 다지는 건가요?
기자) 그건 미 육군 장병이면 누구나 군 생활 내내 수도 없이 암송하는 ‘병사의 맹세(Soldier’s Creed)’에 답이 들어있습니다. 병사의 맹세란, 한국군으로 치면 ‘복무 신조’ 같은 건데요. 단 열 두 문장입니다. 첫 번째 문장은 마지막에 다시 반복하기 때문에 총 열 세 줄인데요. ‘나는 미군이다.(I am an American Soldier.) 나는 전사이자 팀원이다.(I am a warrior and a member of a team.) 나는 미 합중국의 국민들을 섬기고, 육군의 가치대로 살아간다.(I serv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and live the Army Values.)’ 이게 첫 세 문장인데요. 보시다시피, 첫 두 문장은 병사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미국민을 섬긴다’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민을 섬기는 게 미 육군의 가치라는 거고요.
‘나는 미 합중국의 국민들을 섬긴다’는 병사의 맹세, 오늘 이야기를 이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장을 넘어, 일상 속 위험의 한가운데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어린 생명들을 구한 미군 장병들의 활약,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훈련 체계, 함께 살펴봤습니다.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 오종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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