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행 직접 배송 막히자…소송 서류 ‘북한 유엔대표부’로 향해

미국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건물 입구에 취재진이 모여있다. (자료사진)

뉴욕 주재 북한 유엔대표부가 미국 법원의 대북 소송 문건을 전달하는 주요 통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북한행 민간 운송 수단이 크게 제한되자, 미 국무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소장과 소환장, 판결문을 뉴욕 북한대표부로 잇달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 국무부, 법원에 송달 확인서 제출… 외교 경로 통한 문건 전달

미 국무부는 최근 외국주권면제법(FSIA)에 따라 북한을 상대로 한 소송과 관련해 특정 사법 문건을 접수하고, 이를 북한 측에 전달했음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은 5일 배경설명(on background)을 전제로 한 서면 답변에서, 북한을 상대로 한 알칼릴리 사건의 소송 문건을 접수했으며 외국 정부에 대한 소송 서류 송달 책무에 맞춰 북한 측으로 문건이 전달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9월 버지니아 동부 연방법원은 이라크, 시리아, 케냐,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7건의 공격 피해자와 유가족 등 미국인 47명이 제기한 알칼릴리 소송에서 북한과 이란이 약 4억 8천7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판결 이후 원고 측은 국무부에 해당 판결문을 북한 측에 송달해 달라고 요청했고, 국무부가 이를 이행한 것입니다.

국무부가 다른 주요 반테러 소송에서도 외교공한(Diplomatic Note)을 통해 뉴욕 북한대표부에 법원 문건을 전달한 사실이 법원 기록을 통해 잇따라 확인됐습니다.

워싱턴 D.C. 연방법원 전자기록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피해자 등이 제기한 요나 베차렐 브리프 소송, 그리고 2007년 이라크 바그다드 캠프 빅토리 기지 로켓 공격 피해 미군 유족이 제기한 릴리안 라대 클레먼스 소송의 소환장과 소장이 지난 6월 24일 뉴욕 북한대표부에 각각 전달됐습니다.

두 사건 모두 미 국무부 해외시민서비스국의 존 발라드 국장이 해당 외교공한이 6월 17일 작성돼 같은 달 24일 뉴욕 북한대표부에 전달됐음을 증명하는 인증서에 지난 9월 30일 서명했습니다. 이어 국무부 법률고문실의 재러드 헤스 변호사가 이 인증서를 10월 1일 자로 법원 사무처에 공식 통보하며 송달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국무부는 2000년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다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 김동식 목사 유족 소송(대니 버틀러 사건)의 궐석판결 통지서와 법원 판결문을 뉴욕 북한대표부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유족들에게 3억 6천6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소통 뜸한 미·북 관계 속 '외교공한' 통한 법률 문서 전달

미국과 북한 간의 정례적인 외교 접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양국 정부 간 공식 문서 양식인 외교공한이 법률 서류 전달 수단으로 주로 쓰이고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

외교공한은 통상 정부 간 공식 입장을 전하거나 주요 현안을 다룰 때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례들에서는 국무부가 외국 정부에 법적 문건을 송달하도록 규정한 미국 법률에 따른 책무를 다하기 위해 이 양식을 활용했습니다.

이 공식 절차는 외교적 협상의 일환이 아니라, 엄격한 미국 사법 절차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유지되고 있는 셈입니다.

미 법원 시스템에 공개된 반송된 케네스 배 씨의 소장 우편물.

평양행 운송 중단 속 뉴욕 대표부 직원 서명 수령

과거 대북 소송 원고들은 평양에 사무소를 두고 있던 국제 특송업체 DHL을 통해 북한 외무성으로 소장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2020년 북한 억류 피해자 케네스 배 씨 소송 당시 DHL이 비외교 우편물 취급을 제한한 데 이어,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비트의 소송 문건을 통해 DHL의 북한행 운송 서비스가 무기한 중단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다른 주요 민간 특송업체나 미국 우정국 역시 북한행 등기우편을 취급하지 않아 평양으로 문건을 직접 보내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소송 서류의 전달 창구가 뉴욕 북한대표부로 집중되면서, 민간 특송을 통한 수령 기록도 나왔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는 북한을 상대로 승소한 5억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 판결금 회수의 일환으로, 뉴욕주 감사원이 보관 중인 북한 연계 동결 자금 242만 달러에 대한 법원 집행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웜비어 부모는 지난 9월 22일 이 영장 사본을 페덱스를 통해 뉴욕 북한대표부로 발송했고, 법원에 제출된 배송 기록에 따르면 'K. 김(K. Kim)'이라는 인물이 해당 서류를 직접 서명해 수령했습니다. 웜비어 부모는 이를 토대로 법원에 자산 이전 명령을 신청했습니다.

소셜미디어(SNS) 전자 송달 거쳐 공식 외교 송달 절차로 귀결

우편 경로가 원활하지 않았던 시기 미국 법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송달을 예외적으로 허가하기도 했습니다.

1968년 북한에 나포된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의 3차 소송인단과 케네스 배 씨 등은 법원 승인을 받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공식 엑스(옛 트위터) 계정과 외무성 공개 이메일로 소장 링크를 전송하는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미국 외국주권면제법에 따르면 피고 외국 정부는 서류가 송달된 뒤 통상 60일 이내에 답변해야 합니다. 응답하지 않을 경우 법원은 궐석 판결을 내릴 수 있지만, 이것이 자동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울러 동결 자산에 대한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판결문 자체를 피고에 공식 전달하는 등 추가 절차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원고들은 판결문 송달을 위해 국무부의 정식 외교공한 전달 절차에 의존하게 됩니다.

'뉴욕 채널'의 변화… "과거와는 다른 양상"

뉴욕 주재 북한대표부는 과거 미·북 간 비공식 접촉 창구였던 이른바 ‘뉴욕 채널’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해튼 중심가에 자체 단독 건물을 둔 한국대표부와 달리, 북한대표부는 미드타운 44번가의 일반 오피스 빌딩 일부 층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엔 외교관 명부인 ‘블루북’에 따르면 이곳에는 대사를 포함해 12명의 남성 외교관과 그들의 배우자가 등록되어 있으며, 미 정부 규정에 따라 맨해튼 콜럼버스 서클 반경 25마일 이내로 이동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과거 이 채널을 담당했던 전직 미국 외교관은 현재 채널의 성격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측 뉴욕 채널을 2년간 담당했던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16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수년 전만 해도 이 채널은 양국 정부가 서로 접촉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방문을 조율하고 주요 구상을 논의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당시 상부로부터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받아 북한 측 카운터파트와 광범위한 현안을 논의했고 매우 주목할 만한 접촉들도 있었지만, 이는 미·북 관계의 완전히 다른 시대를 반영한 것이었으며 그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재 전해 듣는 바로는 뉴욕 채널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정상회담 조율 등에 쓰였던 다른 직접적인 메커니즘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과거 조용한 양자 외교 협의가 오가던 뉴욕 채널이, 현재는 북한 정권의 과거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미국 법원의 명령이 전달되는 법적 창구로서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VOA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 대북 소장과 판결문 송달과 관련한 내용을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