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바이비트에서 훔친 암호화폐 가운데 약 9억 달러가 거쳐 간 탈중앙 교환망이 최근 북한이 연루된 또 다른 도난자금에 대한 차단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보안업체는 교환망 업체가 자체 금고를 보호할 때처럼 긴급 정지 기능을 가동할 수 있다며, 미 당국이 북한 해킹자금으로 공식 확인한 자산의 이동과 세탁을 막는 데에도 이 기능을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해킹자금의 주요 교환 통로로 이용된 ‘토르체인(THORChain)’이 또 다른 대규모 도난자금의 거래를 막아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토르체인은 일반적인 회사나 암호화폐 거래소가 아니며, 여러 검증자가 함께 운영하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암호화폐를 자동으로 맞바꿔 주는 탈중앙 교환망입니다.
특히, 회원 가입이나 신원 확인 없이도 국제 송금과 결제를 빠르게 처리하도록 만들어진 암호화폐XRP를 비트코인으로 바꾸는 식의 거래를 할 수 있어, 해커가 훔친 암호화폐를 다른 코인으로 바꾸고 여러 지갑으로 분산해 추적과 회수를 어렵게 만드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이번 논란은 지난 24일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겟에서 3억8천750만 달러 상당의 자산이 탈취된 뒤 불거졌습니다.
그레이시 첸 비트겟 최고경영자는 앞서 지난 24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이번 해킹 공격과 관련된 일부 IP 주소가 특정 북한 해킹 조직이 사용하는 가상사설망(VPN)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번 공격에서 나타난 수법이 과거 북한 연계 해킹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첸 최고경영자는 공격자의 지갑 주소가 공개돼 추적되고 있다며 토르체인에 해당 주소의 이용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토르체인은 누구나 허가 없이 이용할 수 있고 특정 이용자를 검열하지 않는 것이 설계 원칙이라며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또 긴급 정지는 전체 네트워크나 특정 블록체인의 거래를 멈추는 장치이지, 특정 지갑만 골라 동결하는 기능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블록체인 보안업체 ‘고플러스 시큐리티’는 28일 토르체인이 아무런 통제 수단이 없는 일반 블록체인과는 구조가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토르체인에서는 여러 검증자가 공동 금고에 보관된 자금의 인출을 함께 승인하는데, 자체 운영 지침에 따르면 한 검증자가 긴급 정지를 요청하면 전체 네트워크를 약 한 시간 동안 멈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검증자들이 동참하면 정지 시간을 늘릴 수 있고, 공동 투표를 통해 특정 블록체인의 거래나 자금 전송 승인도 중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이 기능은 특정 지갑만 동결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상적인 이용자의 거래까지 함께 멈출 수 있습니다.
고플러스는 토르체인이 지난 5월 공동 금고에서 약 1천70만 달러를 탈취당했을 때 이 긴급 정지 기능을 실제로 가동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르체인은 당시에도 공격자 지갑을 차단한 것이 아니라 공동 금고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네트워크 전체를 멈춘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토르체인과 북한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지난해 2월 발생한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비트 해킹 사건입니다.
미 연방수사국(FBI)는 당시 약 15억 달러의 암호화폐를 탈취한 주체가 북한이라고 공식 발표하고 이를 북한 해킹 활동 ‘트레이더트레이터’로 분류했습니다.
바이비트 측은 전체 탈취 자금의 약 72%에 해당하는 9억 달러 상당의 이더리움이 토르체인을 거쳐 비트코인으로 교환됐다고 밝혔습니다.
FBI는 거래소와 탈중앙 금융업체, 블록체인 운영사 등에 북한 해커들이 사용한 주소에서 나오거나 이를 거친 거래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미 재무부는 북한이 훔친 암호화폐를 세탁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필요한 수익을 조달하고 있다고 밝혀 왔습니다.
따라서 토르체인을 통한 북한 해킹자금의 이동은 암호화폐 업계의 운영 원칙을 넘어 대북 제재와 미국의 국가안보에도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고플러스는 FBI나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이 북한 해킹자금으로 공식 확인한 주소에 대해서는 토르체인도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고플러스는 자체 추적 결과 비트겟에서 탈취된 자금 가운데 약 85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이 이미 토르체인을 통해 빠져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논쟁의 핵심은 토르체인이 특정 지갑 하나를 동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공식 확인된 북한 해킹자금의 이동을 막기 위해 정상 거래까지 중단시키는 광범위한 긴급 정지 기능을 가동해야 하느냐가 쟁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