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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초석 설치…그리니치 본초자오선 채택 표결

미국 백악관
미국 백악관

[진행자] 오늘은 10월 13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은 1792년 미국 대통령의 관저인 백악관의 초석이 놓인 날로 돌아가 봅니다. 이어 1884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를 세계 경도의 기준으로 채택하는 표결이 이뤄진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 The Cornerstone of the White House Is Laid — 1792년

[진행자] 첫 번째 소식입니다. 1792년 10월 13일, 미국 백악관의 초석이 놓였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워싱턴 D.C.가 미국의 수도로 자리 잡기 전이었죠?

[기자] 맞습니다. 당시 미국의 연방정부는 필라델피아에 있었습니다. 미국 의회는 1790년 포토맥강 인근에 새로운 연방 수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는데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새 수도의 위치와 대통령 관저 건설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1792년 10월 13일, 오늘날 백악관이 자리한 곳에서 건물의 기초가 되는 초석을 놓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백악관의 설계자는 미국인이 아니었다고요?

[기자] 백악관을 설계한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 건축가 제임스 호번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새로운 대통령 관저의 설계안을 공개 모집했는데요. 여러 건축가가 설계안을 제출했고, 호번의 작품이 선정됐습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최종 설계안 선정에 관여했습니다. 호번은 유럽의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대통령 관저를 설계했습니다.

[진행자] 초석을 놓는 행사에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참석했습니까?

[기자] 워싱턴 대통령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역사협회에 따르면 당시 행사는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참여하는 의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조지타운에 모인 참석자들이 행렬을 이루어 공사 현장으로 이동했고, 대통령 관저의 기초 부분에 초석을 놓았습니다. 당시 초석 아래에는 건설 날짜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수도 건설위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황동판이 놓였습니다. 하지만 원래 초석의 정확한 위치는 이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트루먼 대통령 시절 대규모 보수공사에서도 초석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확실하게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진행자] 백악관을 건설하는 데는 얼마나 걸렸습니까?

[기자] 약 8년이 걸렸습니다. 1792년 공사가 시작된 뒤 1800년 11월 존 애덤스 대통령과 부인 애비게일 애덤스가 입주했습니다. 당시에도 건물은 완전히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1799년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이 건설을 추진했던 대통령 관저에서 생활하지 못했습니다. 백악관에 처음 거주한 대통령은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였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백악관은 건설된 뒤에도 여러 차례 큰 변화를 겪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는 1814년 영국군에 의한 방화였습니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이른바 1812년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요. 1814년 8월 영국군이 워싱턴에 진입해 대통령 관저와 의사당 등 여러 정부 건물에 불을 질렀습니다. 백악관은 내부가 크게 파괴됐지만 외벽의 상당 부분은 남았습니다. 이후 원래 설계자인 제임스 호번이 재건 작업을 맡았고, 1817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다시 건물에 입주했습니다.

[진행자] 이후에도 백악관은 계속 증축됐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19세기에는 건물 남쪽과 북쪽에 기둥이 있는 현관 구조물인 포티코가 추가됐습니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서쪽에 별도의 업무용 건물이 들어섰고, 이것이 오늘날 웨스트윙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동쪽에도 별도의 건물과 시설이 마련됐습니다. 또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인 1948년부터 1952년까지는 건물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를 거의 전면적으로 철거하고 재건하는 대규모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진행자] 최근에도 백악관에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백악관에 새로운 대형 연회장을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존 이스트윙이 철거됐습니다. 백악관 측은 공식 행사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공원에 1852년에 설치된 그리니치 평균시(GMT)를 나타내는 셰퍼드 24시간 자두식 시계(Shepherd Gate Clock)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공원에 1852년에 설치된 그리니치 평균시(GMT)를 나타내는 셰퍼드 24시간 자두식 시계(Shepherd Gate Clock)

2. Greenwich Is Selected as the Prime Meridian in an International Vote — 1884년

[진행자] 두 번째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1884년으로 가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2년 전 이날 전 세계 지도와 시간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1884년 10월 1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자오선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를 지나는 자오선을 세계 경도의 공통 기준으로 채택하자는 결의안이 표결을 통해 통과됐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본초자오선, 즉 경도 0도의 기준을 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세계 여러 나라가 서로 다른 기준 자오선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왜 세계 각국이 서로 다른 기준을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까?

[기자] 경도는 지구상의 동서 방향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인데요. 위도와 달리 경도 0도는 자연적으로 정해진 선이 아닙니다. 어느 지점을 기준으로 삼을지는 사람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영국이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삼았고, 프랑스는 파리를 지나는 자오선을 사용하는 등 나라마다 기준이 달랐습니다. 이런 차이는 항해와 지도 제작, 국제 통신에서 불편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19세기에는 철도와 증기선, 전신망이 발달하면서 국가 간 이동과 정보 교환이 빨라졌고, 공통된 지리적·시간적 기준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진행자] 그래서 국제회의가 열린 거군요. 그런데 회의 장소가 영국이 아니라 미국 워싱턴 D.C.였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기자] 네, 당시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1884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국제자오선회의가 시작됐습니다. 회의에는 25개국에서 41명의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각국 대표들은 세계 공통의 본초자오선을 정하는 문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날짜와 시간을 계산하는 기준도 논의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철도와 전신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고, 국제적인 시간 기준을 통일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여러 나라의 기준 가운데 영국 그리니치가 선택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자]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그리니치가 이미 국제 항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는 오랫동안 항해에 필요한 천문 관측 자료를 제공해 왔는데요. 세계 선박들이 사용하던 해도의 상당수가 이미 그리니치를 경도 0도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리니치를 국제 기준으로 채택하면 기존 해도와 항해 체계를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실용적인 이점이 있었습니다.

[진행자] 실제 표결 결과는 어땠습니까?

[기자] 1884년 10월 13일 실시된 표결에서 그리니치를 본초자오선으로 채택하자는 결의안은 찬성 22표, 반대 1표, 기권 2표로 통과됐습니다.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당시 산토도밍고로 표기된 도미니카공화국이었고, 프랑스와 브라질은 기권했습니다. 다만 정확히 구분할 점이 있습니다. 그리니치를 본초자오선으로 삼자는 표결은 10월 13일에 이뤄졌지만, 회의의 여러 결의안을 정리한 최종 문서는 10월 22일에 채택됐습니다.

VOA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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