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구글, 유튜브 16억 5천만 달러 인수 발표…비틀스 존 레넌 탄생

구글과 유튜브 로고가 위아래로 배치된 현판
구글과 유튜브 로고가 위아래로 배치된 현판

[진행자] 오늘은 10월 9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은 2006년 구글이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날로 돌아가 봅니다. 이어 1940년 영국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음악가 존 레넌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 Google Announces Its Acquisition of YouTube — 2006년 10월 9일

[진행자] 첫 번째 소식입니다. 2006년 10월 9일,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인수 금액이 상당히 컸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이날 구글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16억 5천만 달러 상당의 주식으로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당시 구글의 최고경영자는 에릭 슈밋이었는데요. 구글은 검색과 온라인 광고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유튜브는 누구나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유튜브가 설립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신생 기업이었다는 겁니다.

[진행자] 설립된 지 2년도 안 된 회사가 16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건데요. 유튜브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된 회사였습니까?

[기자] 유튜브는 2005년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자웨드 카림, 이렇게 세 사람이 공동 설립했습니다. 당시에도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었지만, 개인이 촬영한 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은 지금처럼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는 이용자가 동영상을 업로드하면 다른 사람이 별도의 복잡한 프로그램 없이 웹브라우저에서 바로 재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동영상 링크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거나 다른 웹사이트에 삽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편리함 덕분에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유튜브에 처음 올라온 영상도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유튜브에 처음 올라온 영상은 공동 창업자 자웨드 카림이 2005년 4월 23일 올린 ‘Me at the zoo’, 우리말로 ‘동물원에 있는 나’라는 제목의 영상입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배경으로 촬영한 약 19초짜리 영상인데요. 카림이 코끼리의 긴 코에 관해 짧게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특별한 촬영 장비나 화려한 편집이 없는 평범한 영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영상도 누구나 인터넷에 올려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유튜브의 새로운 특징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구글도 당시 자체 동영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잖아요. 굳이 유튜브를 인수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구글은 이미 ‘구글 비디오’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는 이용자들이 직접 영상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영상을 찾아보고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구글은 2006년 10월 9일 발표한 공식 보도자료에서 유튜브의 성장하는 동영상 커뮤니티와 구글의 정보 검색과 광고 기술을 결합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유튜브의 브랜드와 이용자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해 인수 이후에도 독립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구글이 인수를 발표한 10월 9일부터 유튜브가 바로 구글 소유가 된 겁니까?

[기자]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6년 10월 9일은 구글이 유튜브 인수 계약을 공식 발표한 날입니다. 실제 인수 절차가 완료된 것은 약 한 달 뒤인 11월 13일이었습니다. 당시 발표된 거래 규모는 16억 5천만 달러 상당의 주식이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구글의 공식 자료에서도 두 날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구글의 유튜브 인수가 완료된 날이 아니라 인수 계획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날입니다.

[진행자] 지금은 뉴스도 유튜브로 보고, 개인이 만든 방송도 유튜브로 보는 시대가 됐죠.

[기자] 그렇습니다. 유튜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방송과 영상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은 주로 방송사와 전문 제작사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는 개인 창작자와 기업, 언론사 등 다양한 주체가 직접 영상을 공개하고 시청자와 만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2. John Lennon Is Born — 1940년 10월 9일

[진행자] 두 번째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1940년 영국으로 가 보겠습니다. 정말 유명한 가수에 관한 이야기죠?

[기자] 네, 제가 노래를 한번 불러볼 테니 누구인지 맞혀 보시겠어요?

[진행자] 네,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의 이야기군요?

[기자] 맞습니다. 방금 부른 노래는 존 레넌이 1971년 발표한 대표적인 솔로곡 ‘Imagine’입니다. 평화와 갈등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인데요. 오늘은 이 노래를 부른 존 레넌이 태어난 날입니다. 1940년 10월 9일, 영국 리버풀에서 존 윈스턴 레넌이 태어났습니다. 당시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독일군의 공습을 받고 있었습니다. 레넌은 부모가 함께 생활하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어린 시절 상당 부분을 이모 미미의 집에서 보냈습니다. 이후 미국의 로큰롤 음악에 영향을 받아 기타를 연주하고 밴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만남이 비틀스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1957년 7월 6일, 당시 16살이었던 존 레넌은 리버풀의 한 교회 행사에서 자신의 밴드인 ‘쿼리맨’과 공연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15살의 폴 매카트니를 소개받았는데요. 매카트니는 레넌에게 기타 연주와 노래 실력을 보여줬고, 이후 밴드에 합류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가 합류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비틀스의 구성이 완성됐습니다. 1957년 두 십대의 만남이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 파트너십 가운데 하나로 이어진 겁니다.

[진행자] 비틀스는 1960년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는데요. 특히 미국에서도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죠?

[기자] 맞습니다. 비틀스는 1960년대 초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뒤 1964년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그해 2월 미국 CBS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는데요. 첫 방송을 약 7천30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미국 인구를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이후 비틀스의 음악과 헤어스타일, 패션은 미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큰 유행을 일으켰습니다.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영국 대중음악의 미국 진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존 레넌은 비틀스의 인기뿐 아니라 사회적 발언과 반전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레넌은 비틀스 활동 후반부터 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혔습니다. 특히 베트남전쟁이 계속되던 시기에는 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반전 활동을 벌였는데요. 1969년 두 사람은 호텔 침대에 머물며 평화를 호소하는 이른바 ‘베드 인 포 피스(Bed-In for Peace)’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같은 해 발표한 ‘Give Peace a Chance’는 반전 시위 현장에서 널리 불리는 노래가 됐습니다. 이후 1971년에는 전쟁과 국가, 종교적 갈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용을 담은 ‘Imagine’을 발표했습니다. 레넌은 음악 활동과 함께 당시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진행자] 인터넷 동영상 공유 서비스 유튜브를 구글이 16억 5천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2006년 10월 9일, 그리고 비틀스의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 존 레넌이 태어난 1940년 10월 9일. 역사 속 오늘이었습니다.

Forum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