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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안보 백브리핑]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전우 살린 미군 병장...57년 만에 무공 훈장

1994년 미 육군 중령으로 퇴역한 데이비드 곤틀릿 (사진 오른쪽)
1994년 미 육군 중령으로 퇴역한 데이비드 곤틀릿 (사진 오른쪽)

미군이 세계 최고 전투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기(morale)의 근간은 바로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는 정신과, ‘국가를 위한 희생은 세월이 흘러도 반드시 기억하고 보상한다’는 원칙입니다. 이걸 증명하는 일이 최근 일어났는데요. 베트남 전쟁 당시 빗발 같이 쏟아지는 박격포탄 속에서 사흘 밤낮을 버티며 동료들의 목숨을 구했던 미 공군 병장의 영웅적 실화가 무려 57년이라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 ‘V(Valor·무공)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 수훈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이 무공이 어떻게 반세기 만에 드러났는지,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종수 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57년 전에 있었던 일로 최근에 무공훈장을 받은 미군이 있다고요?

기자) 네. 주인공은 1960년대 17세에 입대해,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20세 미 공군 병장이었고, 그 뒤에도 군생활을 하다가 1994년에 미 육군 중령으로 퇴역한 데이비드 곤틀릿 씨입니다. 지난 19일, 오레곤주 세일럼에 있는 오레곤 주방위군 사령부에서 ‘V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 with Valor)’을 받았는데요. 현재 77세인 곤틀릿 씨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에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긴 했지만,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육군 정복을 입은 채 수훈식에 나왔습니다. 이날 행사는 오레곤 주방위군 지휘부의 러셀 깁슨 준장이 주관했는데요. 오레곤 출신 발 호일 하원의원을 비롯한 정·관계 지도자들과 참전용사,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됐습니다.

진행자) 일흔 일곱 살인 곤틀릿 퇴역 중령이 57년전 스무살 병장일 때, 베트남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겁니까?

기자) 사건은 1969년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동안 벌어졌습니다. 베트남 푹롱성의 송베(Song Be) 전방 기지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당시 곤틀릿 병장은 전방항공통제(FAC) 파견대의 무전병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지는 북베트남군의 핵심 보급로인 ‘호치민 통로(Ho Chi Minh Trail)’ 부근에 있어서 적의 기습 공격 표적이 되기 쉬운 대단히 위험한 거점이었습니다. 여기서 곤틀릿 병장은 고립무원 상황에 놓인 상태였는데요. 사흘 간 버티면서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은 채, 미군 공습을 요청하는 무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그 결과로 해당 지역 수많은 미군 장병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진행자) 요충지의 전방 기지에서 무전병으로 근무했다면, 적의 포격이 집중됐을 텐데요.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나요?

기자) 공군 전사를 찾아보고, 사건 기록을 군 당국에 요청해 들여다 봤는데요. “기지 전체에 적의 박격포탄이 폭우처럼 쏟아졌다”고 묘사돼 있습니다. 그 때 곤틀릿 병장은 통신장비와 함께 기다란 안테나를 탑재한 지프차를 지키고 있었는데요. 이 차량은 지역 전체의 미군 공습과 항공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 고리였습니다. 포탄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극도로 위험한 노출 지역이었는데요, 곤틀릿 병장은 어깨에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무전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사흘 밤낮 동안 잠도 거의 자지 않고 무전 위치를 수호하면서 공중 지원을 요청했고요, 적의 박격포 진지를 찾아내 파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수많은 동료의 목숨을 구한 겁니다.

진행자)  이렇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공적이 왜 57년 동안이나 인정되지 않았던 건가요?

기자) 증거 자료가 분실됐기 때문입니다. 전쟁 당시의 혼란, 그리고 미군의 엄격한 행정 절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요. 1969년 사건 직후 지휘관이 곤틀릿 병장을 무공훈장 후보로 상부에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일부 보고 체계에 장애가 생긴 탓에 관련 서류의 행방을 완전히 알 수 없게 됐습니다. 

진행자)  그러다 어떻게 반전의 계기가 생긴 건가요?

기자) 2000년 무렵에 인터넷 커뮤니티 붐이 일었잖아요?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학교 동창이나, 직장 동료, 군대 전우들과 다시 연결되는 웹사이트에 이용자들이 몰렸습니다. 그 시점에 곤틀릿 씨도 2000년께 베트남 참전용사 웹사이트를 드나들었는데요. 거기서 참전 당시 상관이었던 딕 게리 전 공군 대위와 다시 연결됐습니다. 이게 반전의 실마리가 됐는데요. 게리 전 대위가 자신의 개인 서류함 속에서 1969년 당시에 타자기로 쳤던 ‘곤틀릿 병장 무공훈장 추천서’ 원본 초안을 기적적으로 찾아낸 겁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다시 연결된 인연이, 이번에 훈장 수여식으로 이어지는 물꼬를 튼 거네요.

기자) 맞습니다. 하지만 원본 초안이 발견됐다고 해서 훈장을 바로 주지는 않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20여년이 더 흐른 이유인데요. 미군은 공적을 검증할 때 엄격한 검증을 요구합니다. 이때부터 국방부(현재 명칭 전쟁부)의 담당 조직과 미 의회, 그리고 참전용사 동료들이 모여 전수 조사와 증거 수집 작업을 벌였습니다. 1969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을 미국 전역에서 찾아내 진술서를 받았는데요. 결정적으로, 당시 곤틀릿 병장의 무전 덕분에 목숨을 구했던 병사의 증언까지 확보했습니다. 미 육군 제5특전단(그린베레) 소속으로 참전했던 로버트 프라이어 씨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는데요. 이런 증거와 검증자료들을 바탕으로 전쟁부의 최종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진행자)  당국과 의회, 그리고 참전용사 동료들이 곳곳으로 증인을 찾아다니며 검증을 해냈다는 게 대단합니다. 이번에 열린 수훈식 현장 분위기도 상당히 고조됐을 것 같네요.

기자) 맞습니다. 수훈식에 나온 참전용사 동료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는데요. 행사를 주관한 깁슨 준장은 곤틀릿 씨에게 “이 훈장은 귀관의 배짱과 기개가 시험받았고, 그 시험을 완벽히 통과했음을 의미한다”고 치하했습니다. 이어서, 곤틀릿 씨의 무공 이후 57년이 지난 사실을 언급하면서 “군 복무의 가치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결코 퇴색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훈장을 받은 곤틀릿 씨도 연설을 통해 소감을 밝혔는데요. 당시 상관이 타자기로 기록한 추천서 원본 초안을 들고 나와 청중에 보여주면서 감격했습니다.

진행자)  57년 만에 무공을 인정받은 곤틀릿 씨, 뭐라고 소감을 밝혔나요?

기자) “이 훈장은 나를 위해 받는 게 아니라, 그 전쟁(베트남전)에서 복무한 270만 명의 젊은 미국인들을 위해 받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워싱턴 DC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진 5만 8천 명 넘는 미군 전사자들을 언급했는데요. 열일곱살에 처음 입대할 때 했던 ‘입대 선서(Oath of Enlistment)’를 청중과 함께 낭독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군에 입대하며 다짐했던 그 맹세에는 유효기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진행자)  ‘맹세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니, 평생을 군과 국가에 바친 전사의 품격이 느껴지는 소감이네요. 그런데, 곤틀릿 씨가 받은 ‘V 동성훈장’은 어떤 상훈인가요?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미군 최고의 무공훈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공훈장 서열(order of precedence)에서, 대통령이 직접 주는 명예훈장(Medal of Honor), 이어서 각 군의 십자훈장(Cross), 그리고 은성훈장(Silver Star Medal), 공로훈장(Legion of Merit) 등과 함께 상위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동성훈장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하나는 복무·행정 공로(For Merit)에 관한 것인데, 전투지역에서 뛰어난 지휘나 행정적 공로를 세운 경우를 인정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공 표창(For Valor)인데요. 적의 직접적인 공격과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용맹을 발휘한 경우를 치하하는 겁니다. 여기엔 동성훈장 메달 위에 금색 V자 표식(‘V’ device)이 추가됩니다. 곤틀릿 씨가 받은 게 이겁니다.

진행자)  그런데 미군에서는 이렇게 오래 전 공적을 뒤늦게 발굴해서 훈장을 주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까?

기자) 네, 대단히 흔합니다. 오래전 공적을 발굴해 정립하는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데요.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을 비롯한 과거 전쟁과 군사작전에서 인종 차별이나 행정 착오,서류 분실 등으로 정당한 서훈을 받지 못한 영웅들을 찾기 위해 전쟁부 내에 전담 검증 팀을 두고 계속해서 재조사를 진행합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나 지평리 전투에서 활약했던 영웅들에게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과 십자훈장이 뒤늦게 수훈되기도 했습니다. 당사자가 사망한 뒤(posthumous)라도, 정당한 상훈을 받고, 합당한 예우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친 영웅이라면, 백발 노인이 돼도, 그리고 사후에라도 끝까지 찾아내 기억한다는 이 원칙이 미군의 강력한 자부심을 만드는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런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개선할 예정인데요. 발 호일 하원의원은 이번 수훈식에서 “국가를 위해 우선순위를 바친 참전용사들에게 훈장이 전달되는 데 57년이나 걸려서는 안 된다”면서,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을 통해 관련 행정 절차를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거라고 밝혔습니다. 국가가 영웅을 잊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보상하는 시스템,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그 희생을 우대하는 문화야말로 미군 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57년의 세월을 넘어 마침내 가슴에 걸린 무공훈장, 그리고 국가를 위한 희생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히지 않는다는 미군의 유구한 원칙과 영웅에 대한 예우를 살펴봤습니다. ‘미국 군사·안보 백브리핑’ 오종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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