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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전문가들 "북한 출산휴가, 선전과 달리 실질적 혜택 없어"


지난 2013년 2월 북한 평양의 한 산부인과 병원 복도에 여성 환자가 앉아 있다. (자료사진)
지난 2013년 2월 북한 평양의 한 산부인과 병원 복도에 여성 환자가 앉아 있다. (자료사진)

북한의 유급 출산휴가와 보조금 제도는 당국의 선전과 달리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거의 없다고 탈북 여성들과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명목상의 임금 지급보다는 쌀과 식료품 등 산모의 건강 회복에 도움을 주는 배급과 한국의 산후조리원 같은 요양 시설을 북한 당국이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 정권의 대외선전매체인 ‘통일의 메아리’는 지난 23일 북한 여성들은 산전 60일, 산후 180일 등 모두 240일의 출산휴가를 받는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출산휴가는 근속기간(로동년한)과 무관하게 쓸 수 있고, 휴가 기간 동안 기본 생활비의 100%에 해당하는 산전·산후 보조금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이 매체는 이런 “훌륭한 시책으로 공화국 녀성들은 아무런 불편을 모르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며 “국가와 사회의 특별한 혜택 속에 부러움을 모르고 사는 녀성들이 바로 조선 녀성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010년 제정한 여성권리보장법을 통해 최대 150일의 출산휴가를 보장했으며 이후 기간을 더 연장했다고 대외 선전매체들은 홍보하고 있습니다.

세계 빈곤국에 속하는 북한이 주장하는 34주의 출산휴가는 표면적으로 보면 선진국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입니다.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의 ‘2019 가족 친화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의 41개 고소득과 중간소득 국가 중 2016년 기준으로 북한처럼 34주 이상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하는 국가는 17개 나라에 불과합니다.

에스토니아가 85주 동안 임금 100%의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해 세계 1위였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36주로 16위, 한국은 25주로 23위였습니다.

덴마크와 캐나다(27주), 프랑스(19주), 벨기에(13주), 스위스(8주) 보다 북한의 유급 출산휴가 기간이 훨씬 더 긴 겁니다.

하지만 북한 출신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주장에 내부적으로 모순이 많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합니다.

북한 대학교수 출신으로 한국 이화여대에서 북한학을 가르치는 현인애 초빙교수는 25일 VOA에, 북한 내 직장 여성 비율과 임금이 매우 적기 때문에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현인애 교수] “북한에서 직장 다니는 여성이 이전에는 꽤 퍼센티지가 높았는데, 지금은 다 시장에서 장사해서 자체적으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여자들이 직장을 거의 다 그만둔 상황입니다. 두 번째로, 다른 나라에서 산전산후 휴가를 보장 못 하는 이유가 재정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뭐 여성들에게 기껏 돈을 줘야 얼마겠어요? 몇천 원 밖에 안 되니까. 그러니 산전산후 휴가를 8달이 아니라 1년도 줄 수 있죠. 돈이 안 드니까.”

현 교수는 “북한 여성들은 결혼하면 일부 특수직을 빼고 직장에 다닐 의무가 없기 때문에 직장 여성 출산에 대한 정부 부담이 거의 없으며,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여성의 출산에 북한 당국이 보조비를 제공한다는 증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북한 기관에 근무하는 근로 여성의 월급은 장마당 시세로 쌀 1kg 가격인 4천 700원조차 안 되기 때문에, 유급 휴가란 말 자체가 무색하다는 지적입니다.

해마다 탈북 여성들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북한 여성권 보고서를 작성하는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윤여상 소장은 24일 VOA에, “북한에서 한국에 온 여성들 중 (북한 당국이 밝힌) 출산휴가 제도를 실제로 경험했다는 분을 만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돈과 권력이 주어지는 극히 일부 직장은 결혼하고 출산을 하더라도 계속 다닐 의미가 있지만, 대부분의 직장은 급여나 혜택에서 전업주부나 직장여성 모두 거의 차이가 없어 산전·산후 휴가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북한 평양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 (자료사진)
북한 평양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 (자료사진)

현인애 교수는 직장 여성 중 다수가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출산휴가로 장사를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이 누리는 산전·산후 휴가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현인애 교수] “한국은 출산휴가 받으면 월급을 100% 줘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출산할 때 남쪽 여자들은 무지 행복하죠. 아이를 가졌다고 다 떠받들어 줘, 아기를 난 다음에는 산후조리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서도 얼마나 떠받들어줘요. 그러니까 남쪽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북한 말로 소위 ‘값이 있게’ 낳는 거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이고 (한숨) 힘들죠.”

한국 고용노동부는 홈페이지에서 출산 유급 휴가 90일 중 60일은 정부가 최대 월 1천 780달러(2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하고, 사업주는 통상 임금과 1천 780달러의 차액분을 지급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나머지 30일은 정부가 최대 1천 780달러를 지급하고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통상 임금을 지급한다며 동영상을 통해 이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녹취: 한국 고용노동부 동영상] “출산 급여! 들어 보셨죠? 프리랜서? 1인 사업자? 안될 거 같죠? 학습지 교사 같은 특수 형태 근로자도 남 얘기 같죠? 고용보험도 안돼는데..음음~ 돼요! 고용보험 없어도 일하는 엄마라면 맘 편하게 더! 워킹맘이세요? 신청하세요!”

한국은 특히 2019년 10월부터 많은 선진국들처럼 남편, 즉 배우자의 유급 휴가도 10일로 늘리고, 여성의 육아 휴직도 1년으로 연장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녹취: 한국 고용노동부 동영상] “애 낳고 병실 옮기고 아기 볼라치면 출근?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출근해야 하니까 아 정말로 고생한 아내한테 엄청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요…배우자 출산휴가를 10일, 통상임금 100%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등 많은 나라가 이렇게 여성 근로자와 배우자에게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하는 것은 가족과 지역, 사회 전체에 모두 유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국제노동기구 ILO는 설명합니다.

ILO는 지난 2019년 국제출산보호협약(Maternity Protection Convention, 1919)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과 동영상에서, 전 세계에 14주 이상의 출산 유급 휴가를 권장하고 있다며, 유엔 회원국 중 다수가 다양한 출산휴가를 법으로 제도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ILO 동영상] “Maternity protection, for every person, everywhere, is the key to health, wealth, stability, and equality in the home, the work place, and the world.”

모든 사람과 모든 지역에서의 출산휴가는 가정과 직장, 전 세계의 건강과 부, 안정, 평등의 핵심이자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란 겁니다.

ILO는 193개 유엔 회원국 중 대다수가 다양한 유급 출산 휴가 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질적인 현금 혜택을 받는 여성은 10명 중 4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미국은 41개 고소득과 중간소득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출산휴가 등을 법으로 지정해 제공하지 않지만, 여러 직장과 일부 주는 별도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난민 지위로 미국에 입국해 시민권자가 된 뒤 미국 공무원으로 일하는 케일럽 씨는 최근 아내의 출산으로 12주, 통상 임금 100%를 받는 유급 휴가를 받았다고 VOA에 말했습니다.

석 달 가까이 출근하지 않은 채 가정에서 아내와 아기를 돌보며 수천 달러에 달하는 월급을 받는다는 겁니다.

미국 공무원들은 과거 최대 12주의 출산 관련 무급 휴가만 쓸 수 있었지만, 지난해 10월 법 개정으로 유급 휴가 혜택을 받게 됐습니다.

미국 노동부는 미국 민간 분야 근로자의 21%가 업체로부터 일부 유급 출산휴가를 받고 있으며, 40%는 단기로 출산 관련 보험 혜택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북한 내 최신 정보를 한국 공공기관과 단체들에 제공하는 ‘NK 투자개발’의 강미진 대표는 VOA에, 북한 내 출산 여성들이 받는 혜택으로는 본인과 아기를 돌보기 힘들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의 산후보조원 같은 제도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미진 대표] “북한에서 여성들이 임신하면 사회적 대우는 별로 없잖아요. 대부분은 출산했다고 가정에서 편안히 누워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여기(한국)는 임신하면 엄청나게 온 집안이 다 이것저것 돌봐주는 상황이잖아요. 산후조리원! 그런 혜택이 북한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출산하면 뼈가 늘어나고 육체적으로 어려운 걸 조리원에서! 집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니까…”

현인애 교수는 북한 당국의 폐쇄적 제도와 만성적 경제난으로 볼 때 혜택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쌀과 식료품 등 산모의 영양을 보충할 배급이라도 준다면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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