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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한국 특전사 출신 군목 소개…"독특한 경험으로 주한미군병사 적응 기여"


미국 육군 군목 김혁찬 중령 부부와 공군사관학교 졸업 뒤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인 삼남매
미국 육군 군목 김혁찬 중령 부부와 공군사관학교 졸업 뒤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인 삼남매

미국 육군이 홈페이지에서 한국 특전사 장교 출신으로 현재 미군 군목으로 복무 중인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한국의 군대를 경험한 뒤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미군 군목이 된 김혁찬 중령이 낯선 이국땅에서 복무하는 미군 장병들의 정서 안정과 사기 진작에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육군 공보지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대구의 주한미군 제19 지원사령부에 복무 중인 미 육군 군목 김혁찬 중령을 소개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뒤 육군 학사장교로 특전사에서 복무했던 김 중령이 미국에서 다시 군목이 된 뒤 한국에 배치돼 주한미군 장병들의 적응에 기여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육군이 1775년부터 시작한 육군 군종 장교(The Army Chaplain)제도는 다양한 종교와 교단 출신 성직자로 구성돼 있으며, 평시와 전시에 관계없이 종교 활동과 상담 등 미군과 그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 중령은 한국 특전사에서 전역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후 다시 신학교에 진학해 라스베가스 지역에서 10여 년 간 목회를 하다 40살 가까운 늦은 나이에 미 육군 군목에 지원했습니다.

미 육군 공보지에 따르면, 김 중령은 목사 인생의 다음 여정에 관해 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그가 미국 육군 군목이 되길 원한다는 응답을 받고 군종 장교 제한 연령인 40살 직전에 입대했습니다.

특히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한국 특전사의 구호와 100회 이상의 고공강하 경력, 특전사 교관으로서 장병들과 소통하던 경험이 미군 군목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김혁찬 중령의 한국 특전사 장교 시절 사진 (미국 육군 공보지)
김혁찬 중령의 한국 특전사 장교 시절 사진 (미국 육군 공보지)

아울러 김 중령은 미군 장병들이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자신이 함께할 것이란 확신을 주기 위해 제19지원사령부의 모든 미군 장병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사고를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되는 명언과 성경 구절 등을 나누고 있다고 미 육군은 전했습니다.

미 육군은 김 중령의 독특한 인생 경험이 미국과 멀리 떨어진 낯선 한국 땅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미군 장병들을 상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의미를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젊은 병사들과 교감을 나누면서 최선의 해법은 한국 주둔의 역사적 사명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 믿는다는 겁니다.

김 중령은 “비록 이병이나 신병일지라도 미군의 임무는 한국의 평화를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런 중요한 사명이 미군 장병들에게 자부심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부대의 군종 장교인 커티스 서덜랜드 소령은 김혁찬 중령이 예하 부대 구성원 모두에게 훌륭한 종교적 지원을 물론 안내와 지도력까지 제공하고 있다며, 김 중령은 자신의 모든 직무를 즐기면서 군목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육군은 김 중령의 이런 헌신이 자녀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며, 슬하의 3남매 모두가 미국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현역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육군에 따르면 육군 군종 장교는 현역에 1천 200 명 등 2천 600여 명이 있으며, 개신교와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등 120여 개 교단 출신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 육군은 특히 한국전쟁 전사자와 실종자 가운데 전쟁포로 출신 4명 등 군종 장교 8명이 포함돼 있으며, 이 가운데 한 명인 군종 신부 에밀 카폰 대위의 유해 신원이 올해 초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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