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는 미국 역사 이야기, ‘역사 속 아메리카 250’입니다. 조진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곳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기자: 오늘은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메릴랜드주 포토맥강변에 있는 ‘포트 워싱턴(Fort Washington)’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 요새는 200년 넘게 미국 수도로 향하는 물길을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산책과 역사 탐방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지만, 이곳에는 미국이 수도 방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역사와 군사 기술의 변화가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 수도를 지키기 위해 요새까지 세웠다는 건데요.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건가요?
기자: 중요한 계기는 1812년부터 1815년까지 이어진 미영전쟁이었습니다. 미 국립공원관리청(NPS)에 따르면 1814년 8월, 영국군은 워싱턴 D.C.를 공격해 의사당과 대통령 관저를 비롯한 주요 공공건물을 불태웠습니다. 당시 포토맥강을 통해 수도로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지금의 포트 워싱턴 자리에는 ‘포트 워버턴(Fort Warburton)’이라는 요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함대가 접근하자 미군 수비대는 요새를 빼앗길 것을 우려해 스스로 파괴하고 철수했습니다. 영국군이 워싱턴 D.C.를 불태운 데 이어, 수도로 이어지는 물길을 지키던 요새까지 무너진 겁니다.
진행자: 수도가 공격받은 데 이어 방어를 맡은 요새까지 스스로 파괴해야 했다니, 타격이 컸겠군요. 이후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기자: 미국은 전쟁이 끝난 뒤 수도 방어 체계를 다시 정비했습니다. 육군 공병대의 워커 아미스테드(Walker Keith Armistead) 중령이 새로운 요새 포트 워싱턴의 건설을 맡았고, 공사는 1815년부터 진행돼 1824년 주요 건설 작업이 마무리됐습니다. 포트 워싱턴은 벽돌과 석재로 만든 견고한 요새였습니다. 포토맥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의 함선을 대포로 공격하고, 육지 쪽에서 접근하는 적도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요새 주변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도랑인 ‘해자(Moat)’가 있었고, 출입구와 방어벽도 적의 침입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대포와 군함의 성능이 발전하면 기존 요새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워졌을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군함의 장갑과 함포 성능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석조 요새만으로는 한계가 생겼습니다. 이에 미국은 1890년대부터 콘크리트와 철강을 활용한 현대식 해안 방어시설을 건설했습니다. 대표적인 시설이 ‘포대 디케이터(Battery Decatur)’입니다. 이곳에는 길이가 약 9미터에 달하는 대포 두 문이 설치됐는데요. 약 260킬로그램짜리 포탄을 약 10킬로미터 거리까지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 포탄 무게가 260킬로그램이라니 상당하네요. 대포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까?
기자: 네. 포대 디케이터의 대포에는 ‘은폐식 포가(disappearing carriage)’라는 장치가 적용됐습니다. 대포를 발사하면 반동으로 포신이 아래쪽으로 내려가 콘크리트 방벽 뒤에 숨는 방식이었습니다. 적의 시야에서 대포를 감추는 동시에, 포를 다시 장전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겁니다. 이 포대는 1897년 시험 발사도 진행했습니다. 기존 요새의 대포가 성벽 위에서 적을 향해 발사하는 방식이었다면, 새로운 포대는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물과 기계식 장치를 활용해 대포와 병력을 보호했습니다. 수도 방어 기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진행자: 이렇게 방어시설을 현대화했는데, 포트 워싱턴이 실제 전투에 투입된 적도 있습니까?
기자: 아닙니다. 재건된 포트 워싱턴은 멕시코전쟁과 남북전쟁 당시 수도 방어 임무를 맡았지만, 두 전쟁에서 실제 전투를 치르지는 않았습니다. 요새는 수도를 지키는 방어 거점으로 유지됐고, 189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콘크리트 포대들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포트 워싱턴은 시간이 지나면서 군사시설로서의 역할이 줄어든 거군요. 오늘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군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래된 요새만으로는 수도 방어에 필요한 역할을 모두 수행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새로운 포대들이 들어서면서 포트 워싱턴의 방어상 중요성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포대 디케이터에 설치됐던 대포 역시 1917년 철거돼 유럽에서 철도포로 사용됐습니다. 오늘날 포트 워싱턴 공원에서는 역사적인 요새의 성벽과 출입문, 병영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포토맥강을 내려다보는 전망도 볼거리입니다. 과거에는 적의 함선을 감시하던 장소에서 이제는 방문객들이 강변의 풍경과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된 겁니다.
진행자: 한때 수도를 지키기 위한 핵심 방어시설이었던 곳이 이제는 역사를 돌아보는 공간으로 바뀌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포트 워싱턴은 미국이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어떤 시설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무기와 전쟁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방어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공원이지만, 이곳에는 수도 워싱턴 D.C.를 지키려 했던 미국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 1814년 영국군의 워싱턴 D.C. 공격 이후 수도 방어를 위해 다시 세워져, 미국의 군사 기술과 방어 전략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 요새, 포트 워싱턴 이야기, 조진우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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