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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O 번호 감춘 북한 선박 일주일새 9척...“불법 거래 목적 가능성”


MMSI 정보만을 공개한 북한 선박 TH호가 4일 한반도와 중국 사이 해상을 운항 중인 장면. 자료=MarineTraffic
MMSI 정보만을 공개한 북한 선박 TH호가 4일 한반도와 중국 사이 해상을 운항 중인 장면. 자료=MarineTraffic

국제해사기구(IMO)가 발급한 고유번호를 외부로 드러내지 않은 채 운항 중인 북한 선박이 늘고 있습니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데 일부 선박은 대북제재 위반 전력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지도에 지난 2일 중국 산둥성 인근 해상을 지나는 북한 선박이 보입니다.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한 정보를 토대로 식별된 이 선박은 북한 선적의 TH호.

이 선박의 AIS 정보에는 선박 이름, 선적과 더불어 해상이동업무식별번호(MMSI)가 담겨있지만, 선박의 건조 시점부터 부여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고유번호는 없습니다.

선박 스스로가 어떤 정보를 외부로 발신할지 정할 수 있는 만큼 의도적으로 IMO 번호 정보를 숨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IMO는 ‘해상에서의 인명 안전을 위한 국제협약(SOLAS)’을 통해 크기 300t이 넘는 선박이 자국 해상을 벗어날 땐 MMSI와 IMO 번호를 모두 발신하도록 했습니다.

1만5천850t급 선박인 TH호가 IMO 정보를 감춘 채 운항하는 게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의미입니다.

VOA가 마린트래픽 정보를 토대로 최근 일주일 사이 AIS 신호 정보를 발신한 북한 선박을 조사한 결과 북천호와 하프호, 부양2호, 태령1호, 만풍산호, 은흥8호 등 최소 9척의 선박이 IMO 정보를 감춘 채 MMSI 번호만 공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MMSI 번호만을 외부로 발신하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 대북제재 단속이 주로 IMO 번호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들 선박들이 과거 전력을 숨기고 추가 불법 행위를 감추기 위한 게 아니냐는 추론이 제기됩니다.

선박이 국제해사기구에 등록되는 시점에 부여되는 IMO 번호는 선박의 소유주나 기국이 변경되더라도 처음 번호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반면 MMSI는 선박의 등록 국가가 부여하며 언제든 새 번호로 바꿀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와 미국 등 유엔 회원국은 한번 부여되면 바뀌지 않는 IMO 번호로 북한 선박을 식별해 왔습니다.

만약 선박이 IMO 번호를 감춘다면 해당 선박이 제재 대상인지, 과거 제재 위반을 저질렀는지 등은 알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선박 전문가인 우창해운의 이동근 대표는 VOA에 “정상적인 선박으로 국제항행을 할 땐 두 가지 번호(IMO, MMSI)가 필수이지만, 이미 제재 대상 선박이거나 선박의 신분을 구태여 나타낼 필요가 없는 경우엔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불법 거래를 목적으로 한 운행이나 기항국에서 모른 척 하는 경우에도 선박이 IMO 번호를 감출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IMO 번호와 달리 MMSI는 공개한 데 대해선 “비상시 유일한 연락수단이기 때문에 가동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대북제재 위반 행위에 연루된 선박이 MMSI 번호만을 발신한 사례가 과거 몇 차례 있었습니다.

특히 대북제재를 감시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연례보고서에서 선적 미상 선박 뉴콘크호의 불법 행위를 여러 차례 지적했는데, 최근 1~2년 사이 뉴콘크호는 MMSI 번호를 통해서만 식별되고 있습니다.

특히 뉴콘크호는 총 6개의 MMSI 번호를 사용하며 자신을 다른 선박으로 위장하려던 정황도 여러 번 포착됐습니다.

이번에 VOA가 포착한 9척의 선박 중에도 과거 대북제재에 연루된 선박이 있습니다.

이들 9척 중 7척은 새로운 MMSI번호가 부여돼 선박의 IMO 번호를 비롯한 실제 선박 정보를 알 수 없었지만 나머지 2척인 TH호와 부양2호는 이전 MMSI 정보를 사용하면서 이전 정보가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TH호는 과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불법 석탄 운반선으로 지목한 아시아 아너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올해 공개한 중간보고서에서 북한 선적의 아시아 아너호가 작년 4월 청진항에서 석탄을 싣고 중국 닝보-저우산 인근 해역으로 향했고, 이후 빈 선박으로 북한으로 되돌아왔다고 전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7년 채택한 결의 2371호를 통해 석탄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광물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아너호가 이번엔 IMO 정보를 감춘 채 TH호라는 이름으로 중국 근해에서 운항 중인 사실이 포착된 것입니다.

또 다른 선박인 부양 2호는 지난해 VOA가 북한이 타이완에서 불법으로 매입했다고 지목한 SF블룸호입니다.

전문가패널은 올해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불법 매입 문제를 지적하며 부양 2호에 대한 제재를 권고했습니다.

현재 부양 2호는 중국 다롄 인근 해상에서 MMSI 신호만을 발신 중입니다.

물론 북한이 기존 아시아 아너호와 부양 2호가 사용하던 MMSI를 또 다른 선박에 부여한 것이라면 이 선박은 제 3의 북한 선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선박이라고 할 지라도 MMSI만을 공개한 채 공해상을 운항하는 건 해상 업계에서 일반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3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IMO 정보를 감추는 북한 선박뿐 아니라 이들의 입항을 눈감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 항구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녹취: 와츠 전 위원] “If China is not doing Port State Control inspections on these vessels, well, then I think they would rather not transmit because what having an IMO number clearly identifies the vessel and its track record since it was built.”

와츠 전 위원은 “만약 중국이 이들 선박에 대해 안전검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선박 입장에선 IMO 정보를 발신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IMO 번호는 선박의 건조 이후의 모든 행적을 다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들 선박 대부분의 거래가 (일반적인 무역 등) 합법일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지만, 문제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 불법 화물을 몰래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와츠 전 위원] “There's no doubt in my mind that most of these vessels, most of their trade is legal. But of course, the problem is that when and when necessary, they'll slip in an illegal cargo. And so if the port authorities are complicit, they will not do the Port State Control inspection and reported the vessel was there.”

이어 “항만국까지 연루된 경우라면 항만국은 안전검사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고, 그 선박이 그곳에 있었다고 보고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앞서 VOA는 북한 선박이 지난해 중국 항구에서 단 1척도 안전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중국으로 향하는 선박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검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중국 항만당국의 고의 누락 의혹도 제기됐었습니다.

VOA는 당시 중국 정부에 ‘누락 배경’을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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