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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뉴스] “북한 생존 ‘한국군 포로’…미한 정부 ‘송환 협력’ 호소”


[VOA 뉴스] “북한 생존 ‘한국군 포로’…미한 정부 ‘송환 협력’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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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포로 출신으로 2006년에 탈북한 이선우 씨가 워싱턴을 방문해 북한에 있는 한국군 포로들이 단 며칠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는 한국군 포로 송환을 위해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력해 줄 것도 요청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취재: 김선명 / 영상편집: 김정규 )

한국군 포로 출신으로 2006년에 탈북한 이선우 씨가 워싱턴을 방문해 북한에 있는 한국군 포로들이 단 며칠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는 한국군 포로 송환을 위해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력해 줄 것도 요청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취재: 김선명 / 영상편집: 김정규 )

올해 93살의 한국군 포로 출신인 이선우 씨. 북한에 남아 있는 고령의 한국군 포로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았습니다.

이 씨는 9일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가 한국군 포로들을 주제로 개최한 행사에서 한국 사회가 한국군 포로 귀환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이들이 단 며칠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선우 / 6.25 한국전쟁 한국군 포로

“국군 포로들이 나이가 많아도. 나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3일만 살다가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다, 포로 송환해서 고향 돌아가서 3일만 살다 죽어도 원이 없겠다.’ 아무리 나이 많아도 내 나라 내 땅 밟아 보는 것...”

이 씨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15일 한국군에 입대한 뒤 미국 제24보병사단에 배치됐습니다.

이후 미군들과 함께 북진해 신의주까지 올라갔던 이 씨는 후퇴 명령이 떨어지면서 한국군으로 다시 복귀해 육군 수도사단에 배치됐습니다. 그리고 1953년 7월, 휴전협정을 불과 13일 남기고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북한의 포로로 잡혀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50년 가까이 함경북도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이 씨는 지난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한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첫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고국에 돌아갈 희망을 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국군 포로 송환에 대한 말 한마디 없이 정상회담이 끝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했고 나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결국 탈북을 결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선우 / 6.25 한국전쟁 한국군 포로

“ ‘죽으면 죽고, 뭐 방법 없다’ 말입니다. 그래서 탈북했는데 용하게 탈북해서 성공했습니다.”

2006년 탈북에 성공한 이 씨는 그러나 한국에 왔지만 여전히 한국 정부와 사회는 북한에 있는 한국군 포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 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력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미연합사 작전참모 출신의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조국을 위해 희생한 국군 포로들을 위해 모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

“이 씨가 나라를 위해 또 자유를 위해 싸운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를 누리고 있는 모두가 이 씨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COI는 최종보고서에서 한국전쟁 정전 당시 8만 2천 명의 한국군 포로가 실종됐으며, 이 가운데 5만~7만 명 정도가 포로로 억류된 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VOA뉴스 김영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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