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지명수배된 스페인 출신 친북인사가 대북제재 위반 혐의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암호화폐 전문가의 방북과 북한에 대한 블록체인 기술 지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건데, 미 검찰은 그의 위법 행위가 명확하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스페인 국적자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 씨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성명을 올렸습니다.
카오 데 베노스 씨는 “한 달 전 미국 언론인의 이메일을 통해 미 검찰이 미국의 긴급경제권한법(IEEPA) 위반 혐의로 나를 기소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나는 어떤 소환장도 전달받지 않았고 진술을 요청받거나 변호가 필요하다는 내용 역시 전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해당 기소는 완전히 틀린 것”이라면서 북한을 방문했다 최근 실형을 선고받은 미국인 암호화폐 전문가 버질 그리피스 씨에게 도움을 준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친북 단체인 조선친선협회(KFA) 회장이기도 한 카오 데 베노스 씨는 지난 2019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암호화폐 콘퍼런스를 주관하고, 버질 그리피스 씨를 직접 섭외해 방북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피스 씨가 방북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뉴욕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와 연결을 주선하는 등 방북이 금지된 그리피스 씨의 북한 방문을 부추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그리피스 씨는 현재 카오 데 베노스 씨와 함께 지명수배된 영국인 암호화폐 전문가 크리스토퍼 엠스 씨와 함께 ‘평양 암호화폐 콘퍼런스’에 참석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북한의 제재 회피에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의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카오 데 베노스 씨는 이날 성명에서 “(그리피스 씨가) 자원한 것이고 자유 의지로 (행사에) 참석했다”면서 “여행비용도 본인 돈으로 지불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긴급경제권한법이 미국법인만큼 미국인이 아닌 자신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아울러 자신은 6년 전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스페인 당국에 체포됐을 당시 여권을 압수당한 만큼, 타국으로 도주할 의사가 없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은 카오 데 베노스 씨가 사용한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근거로 그가 현재 이탈리아로 도주했다고 지적했지만, 또 다른 트위터 이용자들은 그가 실제와 다른 IP 주소를 내세울 수 있는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하기 때문에 위치가 노출되지 않는다며 ‘이탈리아 도주설’에 반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카오 데 베노스 씨가 이처럼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미 검찰은 그의 위법 행위가 명확하다는 입장입니다.
먼저 최근 공개된 카오 데 베노스 씨에 대한 FBI의 지명수배 전단에는 그가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물품과 서비스 혹은 기술을 북한에 전달했다는 혐의 내용이 적시됐습니다.
이는 미국법에 따른 판단이지만, 유엔 안보리도 같은 내용을 대북 관련 결의에 명시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채택된 결의 2321호는 북한과 의료를 제외한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유엔 안보리는 북한 정권과의 어떤 합작 사업도 금지했습니다.
카오 데 베노스 씨가 주관한 암호화폐 콘퍼런스의 경우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제재 회피 관련 기술을 주제로 한 데다 행사 자체도 장소 제공 등 북한의 지원 속에 열린 만큼 미국 재무부와 유엔 안보리의 제재 규정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또 카오 데 베노스 씨는 그리피스 씨의 방북을 주선한 혐의를 부인했지만, FBI와 미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미 검찰은 그리피스 씨의 범죄를 입증할 각종 증거자료를 제출하면서 카오 데 베노스 씨가 그리피스 씨에게 보낸 이메일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그리피스 씨가 연락할 수 있는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이메일과 주소 정보 등이 담겨 있습니다.
또 북한 대표부에 이메일을 쓸 때 특정 북한 당국자 이름과 함께 2019년 4월 18일부터 25일 사이에 열리는 암호화폐 콘퍼런스의 참석을 희망한다는 내용을 넣으라고 주문하는 등 카오 데 베노스 씨가 그리피스 씨에게 효과적인 방북 비자 신청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점도 검찰이 지적한 부분입니다.
아울러 당시 암호화폐 콘퍼런스를 안내하는 공식 홈페이지에는 “미국인들의 참가 신청을 환영하며, 여권에는 도장이 찍히지 않아 입국 증거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 대북제재 위반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카오 데 베노스 씨는 이번 사건 발생 전부터 이미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무기 거래상으로 가장한 연기자들이 북한 인사들과 실제 만남을 갖는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잠복’에는 카오 데 베노스 씨가 ‘무기 거래상’과 북한 관련 인사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로 등장합니다.
이런 여러 정황 때문에 그는 친북 단체 운영을 넘어 북한의 불법 무기 거래에도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받아왔습니다.
현재로선 카오 데 베노스 씨의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될지 예단할 수 없습니다.
앞서 스페인 외무부는 관련 내용에 대한 VOA의 질의에 “외무부는 제3국의 법적 결정과 관련해 논평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스페인 법무부는 VOA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스페인은 1970년부터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어 스페인 법원이 허가할 경우 카오 데 베노스 씨는 미국으로 옮겨져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