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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한국,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러시아 제재’에 적극 협력해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연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연설했다.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제재에 나서자 영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도 잇따라 제재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한국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인데요, 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분리주의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병력 진입을 명령하자 이를 ‘침공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본격적인 제재에 나섰습니다.

[녹취: 바이든 대통령 (22일 대국민 연설)] “This is the beginning of a Russian invasion of Ukraine”

미국은 첫 조치로 크렘린궁의 자금줄인 국책은행 VEB와 러시아군에 자금을 공급하는 PSB 은행, 또 42개 자회사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고 서방 금융기관과 거래를 차단했습니다.

이에 영국도 러시아 은행 5곳과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올리가르히(재벌) 3명의 영국 내 자산동결을 발표했고, 독일은 러·독 직결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사업승인 절차 중단을 발표하는 등 유럽 동맹국들이 일제히 보조를 맞췄습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주요 동맹들도 미국의 대러 압박 동참 요구에 대한 입장을 구체화하는 가운데 현재까지는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소 온도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이 현재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러시아의 추가 행동을 억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만큼 최대 관심사는 각국의 제재 동참 여부와 수준입니다.

일본은 23일 첫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러시아 국채 등의 추가 발행과 유통을 금지하고, 러시아가 독립을 선언한 2개 지역 인사의 비자 발급 중단과 자산 동결 등이 포함됐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태가 악화하면 추가 제재를 단행한다는 방침도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제재 동참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분위기입니다.

한국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3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미국 등 관련국들과 긴밀히 소통해오고 있다”며 “다만 아직 향후 우크라이나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군사적 지원이나 파병에 대해선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상황의 긴박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23일 VOA에 “러시아가 이미 공세를 펼치고 있다”면서 “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 “ROK should fully cooperate with the U.S., NATO, and other members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 imposing and enforcing the strongest possible economic, political, and diplomatic sanctions on Russia and on the two breakaway regions of the Ukraine that are, in fact, Russian puppets.”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가능한 가장 강력한 경제, 정치, 외교적 제재를 부과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다른 국제사회 구성원들과 전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강력한 경제, 무역 제재가 포함될 제재 조치에 세계 주요 경제강국인 한국의 행동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이와 함께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장비와 기술 제공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나토와 협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렌스 코브 전 국방부 차관보는 “한국이 국제적인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 원하는지”가 핵심 질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코브 전 차관보] “The main question really for South Korea is what role do they want to play in the international system? For example, Japan has said that they want to join in the US sanctions…”

일본과 타이완이 제재에 동참할 뜻을 밝힌 가운데 한국도 국제적인 체계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체적인 접근법을 취할지 결단해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항상 미국과 긴밀한 관계 유지를 원하면서도 스스로의 접근법을 모색해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코브 전 차관보는 러시아가 전면적인 침공을 강행한다면 한국도 제재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며, 다만 지금은 대러 관계 등을 고려해 선택지를 남겨놓으려는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미국 외교협회의 스콧 스나이더 한국담당 국장은 청와대의 이번 발표를 보면 “현재로선 한국의 입장이 미국의 입장과 충분히 일치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스콧 스나이더 국장] “I see the ROK position as sufficiently aligned with that of the United States for now. I imagine ROK energy trade and investments with Russia may soon come under more careful review as part of the broader effort to calibrate increasingly harsh sanctions in line with Russian military actions.”

스나이더 국장은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 따라 점점 더 강력한 제재를 조율하기 위한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의 대러 에너지 교역과 투자도 조만간 더욱 면밀한 검토에 들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한국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 대응을 따라가고 있다”면서 “바람직한 접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 “I think the ROK is following the lead of the US and European countries in responding to Russian threats against Ukraine. I think this is the right approach.”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다른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대러 제재에 합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은 이런 결정을 내리는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 “As a US ally and responsible member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 Republic of Korea should join the other global democracies in sanctioning Russia. Seoul seems to be dragging its feet in reaching this decision.”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발표된 제재가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의 동맹국, 파트너들’과 함께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사키 대변인] “we announced our first tranche of sanctions in less than a day after the beginning of the invasion with allies and partners from the European Union, United Kingdom, Canada, Japan and Australia.”

이런 가운데 미국이 다음 단계로 수출 통제 조치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대한 수출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한국과 일본 등의 동참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23일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 재무부의 월리 아데예모 부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추가 침공할 경우 핵심 기술 부품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치명적 타격을 줬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러시아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방식이 적용되면 미국 밖의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도 제조 과정에서 미국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사용됐을 경우 수출을 할 수 없습니다.

일본과 싱가포르, 타이완은 이미 이런 제재 계획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2일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진보센터의 토비아스 해리스 선임연구원은 23일 VOA와 전화통화에서, 한국도 이 같은 수출 제한 조치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해리스 선임연구원] “In the interests of signaling that this is really a global effort in the US and its allies working together, I think there's gonna be a lot of pressure from certainly Washington for South Korea to join with other US allies in the region who've already said that they would support this kind of move.”

이런 조치가 미국과 동맹국이 함께 협력하는 국제적 노력이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워싱턴은 서울에도 이미 지지 의사를 밝힌 역내 다른 동맹국의 대열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해리스 선임연구원은 이런 접근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주요 제조국이자 수출국인 한국의 참여가 중요하다면서 미국이 한국 측과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격화를 틈탄 북한의 무력시위 가능성도 제기되는 가운데 북한은 현 상황을 다소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22일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싸고 러-미 사이의 대립이 극도로 격화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일본을 대러시아 압박 공조에 노골적으로 끌어들인다고 비판했지만,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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