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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니카라과 정국과 대미 관계


니카라과 대선이 진행된 지난 7일 수도 마나과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니카라과 대선이 진행된 지난 7일 수도 마나과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중미 국가 니카라과가 지난 7일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이 선거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다시 승리하면서 네 번째 연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르테가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20년 장기 집권을 하게 되는 건데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 사회는 사기극이라고 규정하고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니카라과의 정치 상황과 미국과의 관계 등을 짚어봅니다.

“니카라과는 어떤 나라?”

니카라과는 중미 국가에 속한 나라들 가운데서는 가장 큰 나라입니다. 국토 면적은 약 13만㎢로 북한보다 조금 큰데요.

북서쪽으로는 온두라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요. 동쪽은 카리브해, 남서쪽은 태평양, 그리고 남쪽으로는 코스타리카와 접해 있습니다.

인구는 국제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World O Meter)’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약 673만 명인데요. 약 12만㎢ 면적에 약 2천600만 인구를 가지고 있는 북한과 비교하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편이죠.

니카라과의 수도는 ‘마나과’라는 곳으로 니카라과에서는 가장 큰 도시고요. 중미권 국가들 가운데서도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니카라과는 메스티소 원주민과 백인,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고요. 공용어는 스페인어지만 일부 지역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니카라과는 국내총생산(GDP)이 약 130억 달러에 불과한 매우 가난한 나라입니다. 국민의 절반 정도가 빈곤층이며, 빈부 격차, 소득 불균형이 극도로 심각합니다.

“니카라과의 정치적 배경”

니카라과는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였다가 1821년에 독립했는데요. 그래서 스페인의 문화와 풍습 등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니카라과는 스페인에서 독립한 후 당시 멕시코 제국의 일부로 있다가 다시 독립하는 등 격동기를 거치는데요. 여기에 보수주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간의 분쟁이 벌어지고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 1912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의 통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니카라과의 소모사 가문은 명목상 대통령제를 앞세워 약 50년간 니카라과를 족벌 통치하는데요.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혁명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현 집권 여당인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도 그중 하나였는데요. 다니엘 오르테가 등 당시 반정부 세력은 1979년 무력으로 소모사 정부를 축출하고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련과 볼리비아,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들에 나라재건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는데요. 이에 미국은 니카라과에 대한 지원을 끊고 경제적 제재를 단행하는 등 관계가 악화했습니다.

“오르테가 대통령 장기 집권”

니카라과 혁명 정부는 1984년에 총선과 대선을 치렀습니다. 여기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압승을 거두고, 다니엘 오르테가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하지만 5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야 했는데요.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미국과의 관계 악화에 따른 경제 실패가 가장 큰 패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르테가 대통령은 2006년 선거에 다시 도전해 약 38% 득표율로 재집권에 성공하고요. 2011년 선거에서는 62% 넘는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며 두 번째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3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한 후 2016년 다시 출마해 또다시 선출됐는데요. 오르테가 대통령은 70% 넘는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발표했지만, 부정선거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때 오르테가 대통령은 부인인 로사리오 무리요 여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함께 출마했는데요. 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대통령과 부통령 부부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오르테가 대통령과 무리요 부통령은 지난 11월 7일 치러진 대선에 또 출마해 4연임에 도전했는데요. 여기서 또 승리했다고 발표하면서 장기 독재의 길에 들어서는 모양새입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이미 실질적인 대통령 재임 기간만도 15년이 넘는데요. 내년부터 5년간 더 니카라과를 통치하게 되면서 미주 국가 정상들 가운데 현역 최장수 국가수반이라는 호칭을 갖게 됐습니다.

“오르테가 집권의 니카라과”

니카라과는 오르테가 대통령과 좌파 사회주의 정당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장기 집권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후퇴하고 있습니다.

오르테가 정권은 그동안 지속적인 야권 탄압과 강경 정책 도입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지난 2018년에는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는데요. 오르테가 정부는 무자비한 강경 진압에 나섰고요. 당시 300여 명이 사망하고 2천여 명이 다쳤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임의 구금됐습니다.

니카라과의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위기로 니카라과를 떠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유엔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지난 2년 동안만도 니카라과를 떠난 사람이 10만 명이 넘습니다.

니카라과의 경제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니카라과의 경제성장률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는데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더 고전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선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 사회의 제재가 더 강화되면 니카라과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니카라과와 미국”

미국 정부는 오르테가 정권의 탄압과 압제가 심해지면서 정권 핵심 인물과 관련 기관에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재무부가 경제 제재를 단행하고 있는 사람은 오르테가 대통령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과 자녀 등 30여 명이고요. 미국 국무부는 150여 명에 대한 비자발급 규제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또 지난 2018년 이후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니카라과 정부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미국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니카라과 시민사회 단체, 인권운동가, 독립적인 언론사 등에 대한 지원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오르테가 정부의 비민주적 행위를 규탄하며 정치, 외교적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럽연합(EU)과 영국 등 서구권 국가들과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미주기구(OAS)의 대부분 회원국도 오르테가 대통령에게 인권 탄압 중단과 정치범 석방 등을 촉구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요. 반면 쿠바,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들은 오르테가 대통령의 승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르테가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이들 국가와 밀접한 행보를 보여 왔는데요. 하지만 정치, 경제적 위기로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베네수엘라는 물론, 쿠바나 러시아 역시 국력상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르테가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게 되면, 니카라과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입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1945년생으로 현재 76살입니다.

한때는 반독재 정권의 붕괴를 주도한 혁명가였지만 이제는 그 자신이 종신 집권을 꿈꾸는 독재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니카라과 중부 촌탈레스주의 중산층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요. 그의 부모도 소모사 정권에 반대하다 투옥되는 등 반정부 투쟁에 앞장섰으며, 오르테가 대통령은 물론 그의 형제들도 이런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르테가 대통령이 반정부 활동을 하다 처음 체포된 게 15살 때였습니다. 이후 그는 당시 반정부 지하 세력이었던 ‘산디니스타민족혁명전선(FSLN)’에 가담해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면서 구금과 석방을 반복했습니다. 한때는 당국의 수배를 피해 쿠바로 망명해 게릴라전술을 배우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FSLN를 지휘하면서 소모사 정부에 맞서 투쟁을 벌였습니다. 1979년 소모사 정권이 붕괴한 후 그는 과도정부의 수반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1984년 치러진 대선에 출마해 승리하면서 니카라과의 혁명 후 첫 대통령이 됐습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임금 인상, 문맹 퇴치, 보건 체제 등을 정비하고 토지 개혁 등을 통한 부의 재분배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소모사 정권의 장기 독재에 시달려왔던 니카라과 국민은 처음에는 오르테가 대통령과 좌파 정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는데요.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 악화, 경제난, 징병제 도입과 언론 탄압 등으로 민심이 점점 악화했고요. 결국 그는 1990년 대선에서 패해 우파 정권에 권력을 넘겨줬습니다.

이후 그는 줄곧 야인 생활을 하다 2006년 다시 대권 도전에 나서 당선됐습니다.

집권 2기, 그는 대통령 연임 횟수를 제한하지 않도록 헌법을 개정해 장기 집권의 틀을 마련했고요. 200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3번 연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7일 대선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또다시 정권 연장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1979년 로사리오 무리요 여사와 비밀리에 결혼했다가 2005년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무리요 여사는 오르테가 정부 대변인과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17년에는 부통령에 취임했는데요. 올해 70세인 무리요 여사는 오르테가 정부의 실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니카라과 정국과 미국과의 관계 등을 짚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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