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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남부의 명문, 밴더빌트대학교 (1)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의 커크랜드홀.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의 커크랜드홀.

미국의 유수한 명문 대학들을 알아보는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오늘은 미국 남부의 명문 사립대학교, '밴더빌트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오디오] 밴더빌트대학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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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중심형 밴더빌트대학교"

1873년에 설립된 '밴더빌트대학교'는 미국 남부 테네시주에 있는 연구중심형 명문 사립대학입니다. 미국에서 38년간 대학 진학상담과 교육을 해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도움말로, 밴더빌트대학교가 어느 정도 수준의 학교인지 먼저 알아볼까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네, 밴더빌트대학교는 US News & World Report지 2020년 발표에서 미국의 종합 대학교 중 공동 15위에 오른 남부의 자랑이자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교 반열에 서 있는 학교입니다. 미국의 수많은 대학 가운데서 박사과정 학술연구와 교육시스템이 가장 우수한 연구중심형 대학들의 연합체인 'AAU'라고 하는 '미국대학협회(Association of American Universities)'가 있습니다. 이 AAU는 미국 내 60개 대학과 캐나다 2개 대학으로 총 62개 대학이 있는데요. 미국 대학은 34개 주립대와 26개 사립대학입니다. 밴더빌트대학교는 이 26개 사립대학 중 하나로, 남부에서는 듀크, 에모리, 툴레인, 라이스대학교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학문 연구에 정진하는 대학이기도 합니다."

밴더빌트대학교는 미국 동부 명문 사립 8개 대학을 일컫는 '아이비리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대학은 아닌데요. 하지만 아이비리그 수준의 교수들이 포진해 있는데다가 탄탄한 장학제도와 실용적이고 내실있는 교육 시스템을 갖춘 명문대학이고요. 특히 과거 백인 학생 위주의 귀족 학교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 국제화에도 힘쓰고 있는데요. 미국의 교육기관인 '프린스턴리뷰' 2020년 조사에서 또다시 학생들이 가장 행복한 학교로 선정될 만큼 좋은 교육환경과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학교로 평가받는 대학입니다.

"‘밴더빌트대학교와 내슈빌"

밴더빌트대학교는 미국 음악의 도시로 유명한 테네시주의 주도인 내슈빌시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내슈빌은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 당시 미 대륙군에서 활약했던 프랜시스 내쉬(Francis Nash)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내슈빌 자체는 70만 명 규모이지만 인근의 소규모 위성도시들을 거느린 인구 200만 명을 이루는 생동감이 넘치는 남부의 거대한 교역, 음악, 의료기관, 금융, 운송 산업의 중심지인데요. 이 내슈빌에 300ac가 훨씬 넘는 규모의 밴더빌트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슈빌은 대학의 부지가 선정되어 구체적으로 건설 작업이 시작될 당시만 해도 초라한 농촌에 불과했습니다. 거대한 옥수수농장 한복판에 건물이 들어설 때 젖소들이 하도 건물 둘레에 몰려들어서 소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돌담을 쌓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신입생들이 학교 설립자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연례 행사에 참석했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신입생들이 학교 설립자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연례 행사에 참석했다.

"철도 해운업계 재벌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밴더빌트대학교의 설립자는 철도와 해운업계 재벌이었던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라는 사람입니다.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설명입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미국의 대학교들을 순례하는 과정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아픔과 고통의 수 없는 전철을 밟아오면서도 짧은 역사를 가진 이 미합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선진 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혼돈과 격동기를 수없이 겪으면서도 미국의 정신을 창출해내고 이끌었던 선각자들과 그들이 세운 대학들을 통해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밴더빌트대학교도 미국의 아픔과 고통을 슬기롭게 견디어내고 시대를 이끌었던 한 선각자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대학 중의 하나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전에 남부 지방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던 밴더빌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손승호 씨 설명 더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밴더빌트대학교의 탄생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박업과 철도업으로 거부가 되었던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요. 밴더빌트는 네덜란드에서 이민해온 농부의 후손으로 11세에 학업을 중퇴하고 뉴욕시 맨해튼 섬과 스태튼아일랜드를 오가는 배의 잡역부로 일하다가 16세가 되면서 해상화물을 운반하는 개인사업을 시작했던 인물입니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뉴욕시 주변에 있던 군 기지에 물자 운송을 담당하는 기회를 얻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운송사업을 키워나갔으며 철도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이루며 거부가 됐습니다. 자신은 생전에 남부를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남북 전쟁을 통해서 지역분쟁이 극심해졌고, 갈기갈기 찢어진 남부 주민들의 상처를 싸안으려는 사랑을 가지고 이곳에 대학을 세우는 일을 도왔던 것입니다."

"남북 화합의 상징이 된 밴더빌트대학교"

그런데 어떻게 단 한 번도 남부에는 가보지도 않았던 밴더빌트가 남부 테네시주에 학교를 세울 생각을 하게 된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아는 게 도움이 좀 될 듯한데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밴더빌트대학교가 태동하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이 땅 미국은 노예 제도를 반대했던 북부군과 노예제도를 찬성했던 남부군 간의 격심한 내전으로 눈물과 아픔이 격심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했던 첫해에는 북부군이 남부군에 밀리기도 했지만, 지형적으로나 인적 자원, 군수 장비, 정치 체제 면에서 단연 우세했던 북부군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이후 '경제재건(Reconstruction)'을 통해서 남북이 연방으로 합치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서 미군 62만 명이 사망한 것을 포함해 엄청난 인명 손실로 서로가 융화되기 어려운 갈등이 지속되는 시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바로 이렇게 남북전쟁으로 생채기 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라의 재건을 돕고자 했고요. 그래서 남부에 대학교를 짓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고 하네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테네시 내슈빌에 거주하던, 감리교 감독이자 밴더빌트 부인과는 친인척 관계인 홀랜드 맥타이어(Holland McTyeire) 목사가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뉴욕을 방문해 밴더빌트 저택에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요. 이때 맥타이어 목사가 밴더빌트 씨에게 남부의 실정을 알리면서, 감리교단에서 대학을 세우려고 하지만 재정적인 부족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의 인품과 교육 신념에 감동을 느낀 밴더빌트는 '우리나라의 산산이 흩어진 모든 이들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대학을 설립하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밴더빌트가 79세가 되던 해인 1873년 100만 달러를 기증했는데요. 이것이 기초가 되어 오늘의 밴더빌트대학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밴더빌트를 기리는 밴더빌트코모도어스(Vanderbilt Commodores)"

밴더빌트 씨는 4년 후에 사망하는데요. 하지만 생전에 한 번도 남부 지방은 물론 이 학교도 방문하지 못했다고 해요. 하지만 학교 측은 밴더빌트의 업적을 기려 학교 이름을 밴더빌트로 하고, 동상을 세워 오늘날까지 밴더빌트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비록 밴더빌트 씨는 생전에 자신이 헌납한 재산으로 세워진 이 대학을 가보지도 못하고 1877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는 결코 이 대학이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희망하지도 않았지만, 대학 이사회는 1877년, 그의 이름을 따서 밴더빌트대학교라고 하는 이름을 공식으로 채택했습니다."

또 학교 내 스포츠팀도 밴더빌트를 기리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요. 밴더빌트대학의 농구, 풋볼, 야구 등 스포츠팀의 이름이 '밴더빌트코모도어스(Vanderbilt Commodores)'입니다. 코모도어, 군대 계급이죠. 생전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별명이 코모도어(The Commordore), 해군 준장인 데서 유래하는 거라고 하네요.

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시간이 다 됐습니다. 오늘은 남부 테네시주의 명문 사립 밴더빌트대학교의 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봤고요. 다음 이 시간에는 밴더빌트대학교의 학교 현황과 신입생 입학 사정 등 다양하고 유익한 이야기 좀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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