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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지목한 또 다른 선박 억류 확인…환적해역 드나들며 북한 영해 접근


카트린 호의 지난해 4월부터 6월 사이 항적. 공해상에 떠 있다 부산 항 인근으로 기수를 돌린 모습을 볼 수 있다. MarineTraffic 제공.
카트린 호의 지난해 4월부터 6월 사이 항적. 공해상에 떠 있다 부산 항 인근으로 기수를 돌린 모습을 볼 수 있다. MarineTraffic 제공.

미국 정부가 지목한 또 다른 환적 의심 선박이 한국 정부에 억류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에 발이 묶인 선박이 모두 5척으로 늘어난 건데요. 한 때 한국 깃발을 달았던 이 선박은 해상에서 불법 환적으로 의심되는 항적을 보였는데 북한 영해에 바짝 접근하기도 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국 정부에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선박은 파나마 깃발의 ‘카트린’ 호입니다.

한국 정부는 3일 이 선박에 대한 억류 여부를 묻는 VOA의 질문에 “동 선박은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또 다른 소식통도 같은 날 VOA에 “카트린 호가 불법 환적 혐의로 한국 정부에 의해 억류 상태"라고 확인했습니다.

지난달 21일 미 재무부는 국무부와 해안경비대와 공동으로 발행한 대북 해상거래 주의보에서 ‘카트린’ 호를 포함한 18척의 선박을 북한 선박과의 환적 의심 선박으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

이후 VOA는 선박의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을 통해 카트린 호가 지난 2월부터 두 달 넘게 부산항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4일 현재 카트린 호는 부산항대교 옆 부두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한 위치정보가 확인됩니다.

한국 해양수산부의 선박 입출항 정보에 따르면 카트린 호는 지난 2월1일 선박 수리를 목적으로 입항했으며, 이후 출항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카트린 호는 파나마 깃발을 달았지만 실제 선주는 한국 혹은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는 ‘두영’ 혹은 ‘도영’ 쉬핑인 것으로 국제해사기구(IMO) 자료를 통해 확인됐었습니다. 또 이 회사의 소재지 역시 조세 회피처로 알려진 마샬제도로 기재돼 실제 선주의 국적이 파나마나 마샬제도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카트린 호는 2003년부터 약 2013년까지 한국 깃발을 달고 ‘정진 넘버 1’ 호와 ‘덕양’ 호, ‘도신 마루’ 호 등의 이름으로 운영됐습니다.

VOA가 ‘마린트래픽’의 자료를 살펴본 결과 카트린 호는 지난해 4월부터 억류 시점인 2월 사이 선박간 항적의 주요 거점을 드나들었습니다.

지난해 4월20일 부산을 출발한 카트린 호는 23일부터 다음달 6일 사이 러시아 극동 지역인 포시에트만 인근 항구에서 여러 차례 AIS 신호가 잡혔습니다. ‘마린트래픽’ 자료상으로는 카트린 호가 이 기간 특정 항구에 입항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이후 러시아 나홋카 항에서 약 30km 떨어진 해역으로 이동한 카트린 호는 5월26일까지 다른 항구에 입항하지 않은 상태로 머무르다 다시 부산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후 카트린 호는 6월과 8월, 11월 같은 해역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8월과 11월에만 실제 나홋카 항에 입항했을 뿐, 6월엔 인근 해역에 있다가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카트린 호가 북한 내륙에서 인접한 항로를 운항하는 모습. 지난해 7월14일엔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을 지나쳤고, 6월21일 운항 땐 신포에서 약 40km 떨어져 있다. MarineTraffic 제공.
카트린 호가 북한 내륙에서 인접한 항로를 운항하는 모습. 지난해 7월14일엔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을 지나쳤고, 6월21일 운항 땐 신포에서 약 40km 떨어져 있다. MarineTraffic 제공.

그런데 카트린 호는 지난해 6월과 7월 북한 영해 인근을 운항한 흔적을 남겨 주목됩니다.

지난해 7월14일엔 북한 내륙에서 인접한 항로를 운항한 모습이 보입니다. 당시 카트린 호는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약 25km 떨어진 항로에서 한 차례 AIS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이보다 앞서 6월 21일에는 잠수함 기지로 잘 알려진 신포 내륙에서 약 40km 떨어진 항로를 운항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두 경우 모두 AIS 신호가 한 차례씩만 포착돼 카트린 호가 AIS를 계속 켠 상태로 유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그러나 북한 동해 일대는 AIS 수신률이 낮기 때문에 AIS를 끄고 운항했다고 속단할 순만은 없습니다.

카트린 호가 2월 한국 당국에 억류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항적. 상하이 앞바다에 한 달 넘게 머물다 부산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MarineTraffic 제공.
카트린 호가 2월 한국 당국에 억류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항적. 상하이 앞바다에 한 달 넘게 머물다 부산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MarineTraffic 제공.

또 다른 환적 장소로 알려진 상하이 인근 바다에서 포착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0일 상하이에서 약 60km 떨어진 공해상에 도착한 카트린 호는 이후 1월29일까지 일대에서 약 10차례 AIS 신호가 포착됐지만, 인근 항구에 입항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다시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카트린 호가 억류 직전 부산에 입항한 날짜가 2월1일인 점으로 미뤄볼 때, 억류 직전 마지막 운항지는 동중국해 공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무부 등은 주의보를 통해 동중국해 공해상과 러시아 극동지역 해역 등 4곳을 주요 환적지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중 카트린 호가 포착된 상하이 앞바다는 재무부가 지목한 해역과 일치하며, 나홋카 항 일대도 주의보에 나온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미 재무부 주의보가 공개한 주요 환적 해역. 동중국해와 러시아 인근 해역 등 4개 해역이 표시돼 있다.
미 재무부 주의보가 공개한 주요 환적 해역. 동중국해와 러시아 인근 해역 등 4개 해역이 표시돼 있다.

앞서 VOA는 재무부 등의 주의보가 지적한 한국 선박 ‘루니스’ 호와 또 다른 선박 ‘피 파이어니어’ 호가 싱가포르 등 최초 목적지로 신고한 항구에 기항하지 않은 채 주요 환적지를 운항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현재 피 피아이니어 호는 한국 당국에 억류돼 조사를 받고 있지만, 비슷한 항적을 보인 루니스 호에는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외교부는 3일 VOA에 “한국 정부는 작년 하반기 루니스 호의 북한 선박과 불법 해상 환적 혐의를 조사했으나 당시 안보리 결의 위반을 증명하는 충분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카트린 호가 억류된 것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를 이유로 출항 금지 조치를 내린 선박은 모두 5척으로 늘어났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7년 11월 북한 선박에게 유류 제품을 넘긴 유조선 ‘라이트하우스 윈모어’ 호를 억류했고, 다음달인 12월엔 같은 혐의로 ‘코티’ 호를 붙들었습니다. 또 지난해 1월부턴 북한 석탄을 운반한 의혹을 받고 있는 ‘탤런트 에이스’ 호가 억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선박을 적발해 억류한 것은 모두 미국이 먼저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조현 한국 외교부 차관은 지난해 VOA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선박들에 대한 정보를 미국 정부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한국 정부 차원의 조사를 거쳐 억류를 결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한국 선박 피 파이어니어 호가 불법 환적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네 번째 억류 선박이 됐고, 이번에 카트린 호가 발이 묶인 다섯 번째 선박이 됐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억류 선박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유엔 안보리와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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