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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억류 선박, 동중국해 수차례 드나들어…루니스 호와 같은 회사가 운영


지난해 4월 8일부터 17일 사이 '피 파이어니어 ' 호의 항적. MarineTraffic 제공.

한국 정부가 6개월째 억류 중인 선박이 여러 차례 동중국해에 머물다 한국으로 되돌아 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목적지를 허위로 기재하고 한 달이나 공해상에 떠 있던 적도 있는데, 앞서 VOA가 환적 의심 선박으로 지목한 ‘루니스’ 호와 동일한 항적을 보였고 운영 회사도 같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게 석유를 환적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 선박 ‘피 파이어니어’ 호.

북한 선박에게 정제유를 건넸다는 미국 측 첩보에 따라 지난해 10월부터 한국 정부에 억류돼 조사받고 있습니다.

VOA가 ‘마린트래픽’을 통해 이 선박의 지난해 4월부터 억류 시점인 10월 사이 항적을 살펴본 결과 이 선박은 최소 5차례 동중국해 공해상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일대는 미국 정부의 최근 대북 해상거래 주의보에 주요 환적지로 지적된 곳으로, 선박 간 불법 환적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마린트래픽’과 한국 해양수산부의 선박 입출항 자료에 따르면 피 파이어니어 호는 지난해 4월8일 한국 여천 항을 출항하면서 차항지 즉 목적지를 싱가포르로 신고합니다. 이후 4월11일 동중국해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한 신호를 보내고 추가 신호를 보내지 않다가 4월16일 남해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뒤 같은 날 부산에 입항합니다.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최대 5일간 AIS 신호를 끈 채 머물렀다는 추정이 가능한데, 이 기간 차항지로 신고한 싱가포르에 입항 흔적을 남기지 않은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지난해 4월 21일부터 5월 25일 사이 '피 파이어니어 ' 호의 항적. MarineTraffic 제공.
지난해 4월 21일부터 5월 25일 사이 '피 파이어니어 ' 호의 항적. MarineTraffic 제공.

이후 피 파이어니어 호는 4월21일 울산 항을 출발하면서 차항지를 베트남으로 신고했지만, 5월25일 약 한 달만에 부산 항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베트남 쪽으론 운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신 4월28일을 기점으로 5월3일, 10일, 12일, 13일, 17일, 23일에 동중국해 공해상 수 킬로미터 반경 내에서 AIS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베트남이 아닌 동중국해에서 한 달 가까이 떠다니다 되돌아온 겁니다.

지난해 5월 31일부터 8월 25일 사이 '피 파이어니어 ' 호의 항적. 출항 당시 기록한 목적지 베트남이 아닌 미얀마와 싱가포르에 기항한 것을 알 수 있다. MarineTraffic 제공.
지난해 5월 31일부터 8월 25일 사이 '피 파이어니어 ' 호의 항적. 출항 당시 기록한 목적지 베트남이 아닌 미얀마와 싱가포르에 기항한 것을 알 수 있다. MarineTraffic 제공.

이후 5월 31일 울산을 출발한 피 파이어니어 호는 7월 12일 실제로 싱가포르에 입항했습니다. 당시 울산에서 남쪽 방향으로 운항하다 동중국해 공해상에 멈춰 약 6일을 머물렀고, 이후 미얀마를 거쳐 싱가포르에 기항한 뒤 약 세 달 후 한국 여천 항에 입항했습니다.

이렇게 뚜렷한 항적을 남겼는데도 불구하고 피 파이어니어 호는 출항 당시 한국 해양수산부에 차항지를 싱가포르나 미얀마가 아닌 베트남으로 기재했습니다.

지난해 8월 28일부터 9월 5일 사이 '피 파이어니어 ' 호의 항적. 일주일 간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MarineTraffic 제공.
지난해 8월 28일부터 9월 5일 사이 '피 파이어니어 ' 호의 항적. 일주일 간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MarineTraffic 제공.

피 파이어니어 호는 지난 8월28일 여천 항을 출항할 땐 남쪽으로 항해하는 모습을 끝으로 AIS 신호를 아예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후 9월4일 여천 항에 다시 입항할 때까지 AIS 신호는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AIS를 끈 상태로 운항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피 파이어니어 호의 운항 행태는 최근 미국 정부의 주의보에 이름이 공개된 18척의 환적 가능 선박과 닮아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4월부터 12월 사이 수 차례 동중국해 공해상 등을 운항한 것으로 드러난 한국 선박 루니스 호와 유사한 항적을 보이고 있는 점도 주목됩니다.

앞서 VOA는 마린트래픽 자료를 통해 루니스 호가 미국 정부가 주요 환적지로 지목한 해역에 머물다 돌아간 흔적이 있으며, 싱가포르를 차항지로 신고했지만 실제 싱가포르에 기항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두 선박의 유사점은 항적이나 차항지와 관련된 기록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VOA 취재 결과 피 파이어니어 호의 선주는 루니스 호를 빌려 운항했던 회사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정보 자료에 따르면 피 파이어니어 호의 선주는 한국의 D사입니다. D사는 루니스 호의 선주인 A사로부터 루니스 호를 용선, 즉 빌려 운항한 회사입니다.

앞서 루니스 호의 선주인 A사 관계자는 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루니스 호의 운영은 용선 회사 즉 A사로부터 선박을 빌린 D사가 담당하고 있다며, 현재 D사는 또 다른 싱가포르 회사에 재용선을 준 상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피 파이어니어 호는 항적은 물론 실질적인 운영에 관여한 회사도 루니스 호와 상당 부분 겹칩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 억류된 피 파이어니어 호와 달리 루니스 호에 대해선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외교부는 3일 VOA에 “한국 정부는 작년 하반기 루니스 호의 북한 선박과 불법 해상 환적 혐의를 조사했으나 당시 안보리 결의 위반을 증명하는 충분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루니스 호를 계속 예의주시해오고 있고, 관계기관에서도 입항 시마다 검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VOA는 이번 사안과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D사 담당자와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또 루니스 호가 싱가포르에 입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받기 위해 싱가포르 항만청에 이 내용을 문의한 상태로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마린트래픽 관계자는 3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마린트래픽은 (VOA의 요청에 따라) 해당 선박(루니스 호)에 대한 과거 기록을 빈틈 없이 조사했다”면서 “싱가포르에 입항한 기록은 없었다”고 확인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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