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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지목 제3국 선박들, 환적 해역 수십 차례 운항…‘한국 선박, 석유 수천t 싣고 공해 머물러’


루니스 호의 지난 1년간 항적을 표시한 마린트래픽 지도. 미국 정부가 주요 환적지로 지목한 해역(원 안)에 여러 차례 머문 뒤 다시 돌아간 흔적이 있다. 빨간색은 선박이 멈춘 것을 의미하며, 노란색은 저속, 녹색은 정상 속도로 운항했음을 나타낸다. 자료제공=MarineTraffic
루니스 호의 지난 1년간 항적을 표시한 마린트래픽 지도. 미국 정부가 주요 환적지로 지목한 해역(원 안)에 여러 차례 머문 뒤 다시 돌아간 흔적이 있다. 빨간색은 선박이 멈춘 것을 의미하며, 노란색은 저속, 녹색은 정상 속도로 운항했음을 나타낸다. 자료제공=MarineTraffic

최근 미국 정부가 북한 선박과 환적 행위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제 3국 선박을 대거 지목한 가운데 이 중 일부 선박들이 ‘선박 간 환적’의 주요 거점으로 수십여 차례 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깃발을 단 ‘루니스’ 호를 비롯한 여러 선박들이 목적지에 입항하지 않은 채 공해상에 머물다 되돌아온 항적 기록이 포착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21일 미 재무부가 국무부와 해안경비대와 공동으로 발행한 대북 해상거래 주의보에는 북한 선박과 환적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 18척의 이름과 국제해사기구(IMO) 번호, 선적 정보가 공개돼 있습니다.

이들 선박들이 불법 환적을 통해 정제유를 북한 유조선들과 거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입니다.

VOA가 선박의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민간웹사이트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을 통해 이들 선박들의 지난 1년 간의 움직임을 확인한 결과 이중 최소 7척의 선박에서 선박간 환적으로 의심되는 운항 기록이 포착됐습니다.

선박간 환적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가장 많았던 건 한국 깃발을 단 ‘루니스’ 호입니다.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지난해 4월11일 한국 여천항을 출발한 루니스 호는 다음날 중국 상하이 앞바다에서 약 200km 떨어진 동중국해 공해상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한 신호가 포착되지 않던 루니스 호는 사흘 뒤인 15일 같은 지점에서 신호를 보냈고, 18일과 26일 추가로 두 차례에 걸쳐 같은 장소에서 위지 정보가 확인됐습니다.

AIS 신호만 놓고 보면 루니스 호는 당초 차항지로 신고한 싱가포르에 입항하지 않은 채 2주 동안 공해상 같은 자리에 머물렀던 겁니다.

이후 루니스 호는 북부 해상을 향해 운항을 시작해 같은 달 29일 한국 울산 항에 도착합니다.

한국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루니스 호는 당시 동중국해에 도착하기 전 한국 여천 항에서 석유를 실었고, 차항지 즉 목적지는 싱가포르로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마린트래픽 자료에는 이 기간 루니스 호가 싱가포르에 입항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루니스 호의 지난해 4~5월 항적(왼쪽)과 6~7월 항적. 동중국해와 타이완 북부 해상에 며칠 간 머문 뒤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간 모습이 확인된다. 자료제공=MarineTraffic
루니스 호의 지난해 4~5월 항적(왼쪽)과 6~7월 항적. 동중국해와 타이완 북부 해상에 며칠 간 머문 뒤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간 모습이 확인된다. 자료제공=MarineTraffic

루니스 호는 지난해 5월에도 최소 두 차례 동중국해 공해상에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기록을 남겼고, 6월에는 타이완에서 북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해상에서 두 차례 머물다 한국으로 기수를 틀었습니다.

또 8월엔 동중국해 인근 해역으로 향하던 중 AIS 신호가 끊겼으며, 12월엔 저우산 섬 인근 해역에 머물다 다른 나라 항구에 입항을 하지 않은 채 되돌아갔습니다.

루니스 호가 머물다가 돌아간 동중국해 공해상과 타이완 북쪽 해상, 저우산섬 인근 해역은 모두 재무부 등이 보고서에서 주요 환적지로 지적한 곳과 일치합니다.

미 정부 주의보가 공개한 주요 환적 해역. 붉은 원 안의 2개 해역이 루니스 호가 싱가포르에 입항하지 않은 채 여러 차례 머문 공해상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미 정부 주의보가 공개한 주요 환적 해역. 붉은 원 안의 2개 해역이 루니스 호가 싱가포르에 입항하지 않은 채 여러 차례 머문 공해상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앞서 VOA는 지난해 7월과 8월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유조선 2척이 중국 저우산 섬 인근 해역에서 발견돼 이들 선박들에 대한 억류 여부가 주목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이들 선박들은 약 일주일 간 모습을 드러낸 후 사라졌었는데, 이후 재무부의 보고서를 통해 이들 선박들이 있는 위치가 주요 환적 장소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루니스 호가 차항지로 보고한 항구에 실제 기항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루니스 호는 매번 한국 항국를 떠날 때마다 한국 항만청에 차항지를 싱가포르와 베트남, 해상구역(Ocean District) 등지로 신고했습니다. 횟수로는 싱가포르가 가장 많았는데, 마린트래픽 지도에 따르면 이 기간 루니스 호는 싱가포르는 물론 베트남에 기항하지 않았습니다.

마린트래픽의 위치정보 자료는 일부 지역에 따라 수분 혹은 수시간 단위로 일부 항적이 누락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먼 거리의 항구로 항해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항적이 포착되지 않는 경우는 AIS를 의도적으로 껐을 때가 유일합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운항이 가능한 싱가포르 항구를 방문하면서 AIS를 껐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만큼 싱가포르에 기항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풀이됩니다.

VOA는 마린트래픽 자료의 오류 가능성에 대비해 싱가포르 항만청에 루니스 호의 입항 기록이 있는지를 요청한 상태로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루니스 호는 석유 등 유류제품을 실을 수 있는 6천500t급 유조선입니다.

한국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던 유기준 의원은 루니스 호가 매 출항 때마다 한국에서 약 6천500여t의 석유 제품을 적재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유 의원 사무실이 VOA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루니스 호가 공해상으로 향할 당시 한국 해양수산부에 신고한 정유제품 적재량은 6천300t에서 6천500t 사이였습니다.

유 의원은 “루니스 호가 2017년 이후 한국에서 총 27차례에 걸쳐 정유제품 16만5천400t을 싣고 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중 울산에서 출항한 5차례 중 4차례는 출항 시 차항지를 해상구역(Ocean District)으로 신고해 항만운영시스템상으로 과연 이 제품들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 이후 루니스 호의 한국 출항 기록. 자료제공=유기준 의원 사무실
2017년 이후 루니스 호의 한국 출항 기록. 자료제공=유기준 의원 사무실

루니스 호의 선주인 A사 관계자는 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루니스 호의 운영은 용선 회사 즉 A사로부터 선박을 빌린 D사가 담당하고 있다며, 현재 D사는 또 다른 싱가포르 회사에 재용선을 준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세한 내용은 D사에 문의하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루니스 호가 해상에서 바지선 등에게 유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며, 지난해 9월~10월 사이 관계 당국의 조사를 통해 혐의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싱가포르에 기항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를 차항지로 기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 대신 2017년까지 인도양에서 운항하던 선박이며, 현재 싱가포르에 재용선이 됐다는 내용만을 설명했습니다.

VOA는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D사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의보에 등장한 선박 중 환적 행위로 의심되는 항적을 보인 또 다른 선박은 토고 깃발을 달았던 ‘찬퐁’ 호와 파나마의 ‘카트린’ 호, 싱가포르의 ‘씨탱커 2’ 호, 선적이 불분명한 ‘샹위안바오’ 호와 러시아의 ‘탄탈’ 호와 ‘비타이아즈’ 호 등입니다.

토고 깃발을 단 '찬퐁' 호의 항적. 한국 부산과 타이완 등을 거점으로 운항하며 동중국해 공해상에 머문 흔적을 남겼다. 자료제공=MarineTraffic
토고 깃발을 단 '찬퐁' 호의 항적. 한국 부산과 타이완 등을 거점으로 운항하며 동중국해 공해상에 머문 흔적을 남겼다. 자료제공=MarineTraffic

이 중 찬퐁 호는 한국 부산과 타이완 등을 거점으로 운항하며 동중국해 공해상에 여러 차례 머문 흔적을 남겼고, 카트린 호도 부산과 울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드나들며 최소 한 차례 중국 상하이 인근 해역에 갔다가 되돌아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카트린 호는 지난 2월 선박수리를 목적으로 부산에 입항해 현재까지 머물고 있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정보 자료에 따르면 카트린 호는 ‘Do Young’ 즉 ‘두영’ 혹은 ‘도영’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소유한 선박입니다. 이 회사는 한국 혹은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회사의 소재지는 마샬제도였습니다.

씨탱커 2 호의 경우 지난해 7월과 10월 최소 한 차례씩 저우산 인근 동중국해로 운항하던 중 갑자기 항적 기록이 사라지는 모습이 포착됐으며, 샹위안바오 호와 탄탈 호 등도 항적이 없다가 타이완과 러시아 해역에 들어서면서 AIS 신호가 포착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들 모두 환적 의심 장소 인근을 운항하면서 AIS를 껐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아울러 마린트래픽에 환적으로 의심되는 항적이 포착되지 않은 나머지 선박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운항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운항 기록이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들 선박을 환적 의심 선박으로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국무부는 선박간 환적으로 의심되는 일부 선박들의 움직임이 포착된 대한 VOA의 질의에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강조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 “We expect all UN Member States to faithfully implement their obligations under applicable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미국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선박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질문에는 추가로 답변할 내용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2월 북한의 해상 거래와 관련된 10페이지 분량의 주의보를 발표한 뒤 이를 19페이지 분량의 주의보로 갱신했습니다.

올해 갱신된 주의보에는 북한의 해상 불법 활동이 이뤄지는 4개 해역은 물론 북한 선박과 환적을 한 선박들이 이를 전후해 기항했던 항구 14곳이 명시됐습니다.

아울러 불법 환적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18척의 제 3국 선박과 더불어 유류 환적이 가능한 북한 선박 28척과 석탄 운송이 가능한 49척의 선박 정보도 공개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7년 채택한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으로 판매되거나 공급될 수 있는 연간 정제유 양을 50만 배럴로 제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보는 지난해 북한이 공해상에서 조달한 정제유를 263차례 북한 유조선을 통해 북한 내 항구로 옮겼다며, 이를 토대로 볼 때 북한은 378만 배럴의 정제유를 수입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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