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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재법 전문가 “대통령, 대북제재 완화 재량에 한계…미 의회 특별법 필요”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를 발표하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비핵화 조치 없는 대북 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한 가운데, 실제 제재 완화나 해제를 위해선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법률 자문가로 활동한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제재 완화 권한엔 한계가 있다며, 북한이 법에 명시된 제재 해제 요건을 모두 이행하거나 의회가 특별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 의회의 대북 제재법 입안을 도운 스탠튼 변호사를 이조은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대가로 북한에 무엇을 제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제재를 완화해주려고 해도 법적인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스탠튼 변호사) 의회는 대북 제재법에 제재 완화에 앞서 북한이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을 명시해놨습니다. 만약 북한이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북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제재를 완화시키려면 의회가 해당 조건들을 우회하는 특별 법안을 통과시켜야 가능합니다.

기자) 대통령이 제재 완화를 제안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스탠튼 변호사) 북한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고 북한과의 합의 내용에 거의 모든 의원들이 반발하는 상황이라면, 의회는 예산을 배정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돈이나 지원을 요구해도 의회가 예산을 허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죠.

기자)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죠?

스탠튼 변호사) 1994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을 때입니다.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북한이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난 뒤 의회에 증명하지 못했고, 결국 의회는 관련 예산을 중단했죠. 북한이 미국에 연료 지원과 경수로 건설 등을 요청했지만 북한의 합의 준수가 증명되지 않아 이를 위한 예산을 의회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죠.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여 비용을 대도록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현재 상황으로선 다른 나라가 대신 북한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미국의 대북 제재법만 있는 게 아니라 유엔 대북 제재도 있으니까요.

기자)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른 대북제재도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수정할 수 있는 건가요?

스탠튼 변호사)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이 시행되기 전 발효된 행정명령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는 행정명령은 제외하고 얘기하겠습니다.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이 시행된 이후 발효된 행정명령에 따른 대북 제재는 완화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발동된 대북 제재 행정명령 13722호와 13810호가 여기에 해당되는데요, 미국이 북한에 부과한 역대 제재 중 가장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건의 행정명령에 의해 부과된 제재가 완화되려면 북한이 특정 조건을 충족했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합니다. 행정명령에 따라 지정된 대북 제재 대상 개인과 단체는 이 법이 발효된 2016년 2월 중순 전까지 40~50개였고 이후 70~90개가 추가됐습니다. 따라서 모두는 아니지만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대부분이 제재법에 명시된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해제될 수 있는 것이죠.

기자) 최근 러시아의 사례처럼 대통령이 의회가 제정한 제재법을 이행하지 않을 권한도 있는 건가요?

스탠튼 변호사)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은 2016년 의회를 통과하고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됐는데요, 이듬해인 2017년 의회는 이 법에 대한 강화, 수정 형태인 일명 ‘킴스 액트(대북 차단과 제재 현대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 실험을 하자 의회는 급하게 킴스 액트를 다른 법안에 포함시켜 통과시킨 뒤 대통령에게 넘겼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법안이 지금 시행되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 북한에 대한 제재법입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이 법에 서명할 때 ‘서명 선언(signing statement)’이라는 문서에도 동시에 서명했습니다.

기자) 그게 어떤 문서입니까?

스탠튼 변호사)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긴 하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을 남겨두는 문서가 서명 선언입니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에 명시된 러시아 관련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될 경우 이를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문제는 이후 대법원으로 넘겨졌죠. 그런데 중요한 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선언에서 러시아만 언급했지 북한 관련 조항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관련 제재는 법에 명시된 대로 이행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을 한 것이죠.

기자) 그렇다면 대통령이 대북 제재 완화를 위해 의회에 증명해야 사항들은 무엇이 있나요?

스탠튼 변호사)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에 따르면 북한이 총 6가지 조건과 관련해 ‘진전(progress)’을 보였다는 점을 의회에 증명해야 대통령은 제재를 최대 1년까지 유예해줄 수 있습니다. 단, 미 화폐 위조 활동을 검증 가능하게 중단하고 위조에 쓰이거나 전문화된 장비를 폐기하거나 포기하는 것과 관련해선 진전이 아니라 완료했음이 증명돼야 합니다. 나머지 돈세탁 활동 중단과 예방에 관한 일반적인 규약을 준수하기 위한 조치,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 검증을 위한 조치, 불법 억류 해외 국민들에 대한 해명과 송환 조치, 인도적 지원 분배와 감독에 관한 국제적 규약 인정과 준수 조건에선 진전을 보여야 합니다. 또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검증된 조치를 취하는 데 진전을 보여야 합니다.

기자) 그렇게 해도 제재가 1년 유예되는 것이지 완전히 해제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스탠튼 변호사) 제재를 완전히 해제하려면 여기에 더해 추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핵, 생화학, 방사능 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이런 무기의 운반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 개발에 관한 모든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보여야 합니다. 또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억류된 수감자를 모두 석방시키고 평화적 활동에 대한 검열을 중단하며, 억류 미국인에 대한 해명과 송환을 위해 상당한 진전을 보여야 합니다.

기자) 대북 정책과 제재 강화법이 발효되기 이전에 발동된 행정명령에 따른 제재를 완화하는 조건은 다른가요?

스탠튼 변호사)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에 명시된 ‘적용 가능한 행정명령’은 2005년 발동된 행정명령 13382호부터 해당됩니다. 그렇다고 13382호 이후 최근까지 발동된 모든 행정명령에 따라 부과된 제재가 해제되기 위해선 앞서 말한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이 부분은 다소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이 발효된 이후 발동된 행정명령에 따른 제재를 완화하려면 해당 조건들이 충족돼야 하는 건 확실합니다.

기자) 가령 북한, 한국, 미국 등이 참여하는 특수경제지구를 지정해 투자 기업들을 유치하는 시나리오라면, 현재 제재법이 어떻게 작용하나요?

스탠튼 변호사) 먼저 유엔의 승인이 필요할 텐데, 미국의 지지를 얻은 것이라면 유엔 승인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의회가 반대할 겁니다. 의회가 반대할 경우 부딪힐 첫 번째 문제는 대북 외환거래 서비스에 관한 겁니다. 대북 제재법은 북한 은행에 대한 외환거래 서비스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해외 차관이 불가능하죠. 단, 대통령이 대북 투자 금지 조치를 해제할 순 있습니다. 자신이 발동한 행정명령을 무효화하는 것이죠. 그러나 의회가 제정한 대북 제재법에 명시된 북한 투자 관련 조항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난관을 겪게 될 겁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문제를 겪을 것이고요.

대북제재 전문가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로부터 제재 운용과 관련한 대통령의 재량권과 의회의 권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이조은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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