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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최룡해, 북한 평창대표단 이끌까?


지난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왼쪽),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운데),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북한 선수단에 손을 흔들고 있다.
지난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왼쪽),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운데),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북한 선수단에 손을 흔들고 있다.

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 입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 선수단을 파견하는 것은 평창올림픽이 5번째인데요. 냉전과 핵, 미사일 위기 속에서도 계속돼 온 남북 간 스포츠 교류 사례를 최원기 기자가 정리해 드립니다.

북한은 지난 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기로 합의했습니다. 북한 측 회담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입니다.

[녹취: 리선권 위원장]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 및 장애인올림픽 경기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어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하여 북측은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기로 하고 남측은 필요한 편의를 보장하기로 했다.”

북한이 파견할 대표단은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전망입니다. 과거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보낸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예술단과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까지 파견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참관단을 몇 명으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은 그리 많지 않을 전망입니다. 북한이 출전권을 따낸 종목은 단 한 종목, 피겨스케이팅 페어의 김주식, 염대옥 조입니다. 그러나 이 마저 등록시한 내에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아 출전권이 사라졌습니다.

이에 대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참가 신청을 연장하기로 해 김주식과 염대옥 선수의 참가가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선수 외에 코치와 감독 등 임원진을 감안하면 선수단 규모는 10-20명 안팎이 될 전망입니다.

북한 대표단을 누가 이끌지도 관심사입니다. 이번 남북 고위급 회담을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주도했기 때문에 회담 수석대표였던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단장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리선권 위원장은 판문점에서 한국 기자에게 “그 때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대표단을 이끌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황병서는 숙청됐고, 김양건은 사망했습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한의 단일팀 구성과 개막식 공동입장 여부도 관심사입니다. 남북한은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과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9차례 종합대회 개회식에서 공동입장 했었습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6월 전라북도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남북한이 평창올림픽 단일팀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바라건대 최초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여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남북한이 스포츠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입니다. 당시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통일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이어 남북한은 1991년 3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했습니다. 당시 남한에서는 현정화, 북한에서는 리분희 선수가 단일팀을 이뤄 중국을 누르고 우승했습니다.

남북 단일팀이 우승하자 남북한 선수들과 임원들은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당시 북측 황건동 감독의 말입니다.

[녹취: 황건동 감독] ”우리 코리아 팀이 합치면 이 세상에 당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남북한은 같은 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출전해 8강까지 진출했습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이 때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국제적인 스포츠대회 개회식 공동입장으로 남북 체육교류가 이어졌습니다.

2000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됐습니다. 남북한은 그 해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한반도 깃발을 들고 공동 입장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특히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은 280여명의 여성 응원단을 보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KBS' 방송입니다.

[녹취:KBS] ”(오늘 소감 좀 부탁 드릴게요?) 기쁩니다. 대단히 기쁩니다.”

또 2005년 9월 인천아시아육상대회 때는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북측 응원단의 일원으로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 직전에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설치를 문제 삼았습니다.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와 대조를 이루는 건 2014년 10월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이었습니다. 당시 응원단 파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던 북한은 개막을 2주 앞두고 대회 참가를 전격 선언합니다.

놀라운 일은 폐막식 당일 벌어졌습니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의 최고위 3인방이 전격적으로 인천을 방문했습니다. 최룡해 비서의 목소리입니다.

[녹취: 최룡해 비서] “통일 구호도 부르고 통일기(한반도기)도 다 흔들면서 응원하는 것을 보고 체육이 조국통일을 위한 데서 앞서 있구나..”

이처럼 스포츠는 지난 30년 간 남북한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왔습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한반도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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