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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는 미국용" 북한 주장, 적화통일 의도 배제 못 해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기자들에게 북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기자들에게 북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한 고위관리가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핵·미사일이 동족인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최근 들어 ‘조국통일 3대헌장’과 ‘미군 철수’ 주장을 자주 제기하는 것을 볼 때 미국의 개입을 막고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앞당기려는 의도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먼저 핵·미사일이 동족인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발언이 어떻게 나왔는지 소개해 주시죠

기자) 남북 고위급 회담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매체들은 리 위원장이 9일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종결회의에서 한국의 비핵화 논의 재개 요청을 일축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등 전략 무기는 철두철미하게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동족인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리 위원장이 말했다는 겁니다.

진행자)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니까 한국은 안심해도 되고 남북 간 핵 논의도 필요 없다는 얘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리 위원장은 “북남 사이 관계 아닌 이 (핵) 문제를 왜 북남 사이에 박아 넣느냐”며 불편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이런 주장이 근거가 있는 건가요?

기자)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외세 위협으로부터 체제 보호를 위한 자위용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과거 핵을 대남 무력 협박용으로 사용했던 전례도 있습니다. 가령 지난 2009년 6월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 제공 등 확장억제를 약속하자 “우리의 핵 보복의 불소나기가 남조선에까지 들씌워지게 되는 참혹한 사태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었습니다.

진행자) 미군 철수와 적화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떤 근거로 나오는 건가요?

기자) 과거 북한의 핵 개발에 관여했거나 이 사안에 잘 알고 있는 고위 탈북민들이 증언에서 그런 지적을 해 왔습니다. 북한 영변 핵시설의 우라늄 폐기 등 핵 개발에 깊이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대호 씨는 저서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에서 김일성 주석이 자신들에게 내린 교시에 “조국통일을 위해서 핵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인 이정연 씨는 저서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개발에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고 강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그럼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주장인가요?

기자) 당장 공격하기보다는 적화통일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해 11월 미 하원 청문회 증언에서 북한 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을 완료한 뒤 미국과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 적화 통일의 베트남식 이정표를 구상하고 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He also believes that if he has this nuclear weapons he can successfully compel Washington to pull its troops…”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 무력을 완성하면 주한미군을 성공적으로 철수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겁니다. 태 전 공사는 또 한국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에 대해 김 위원장은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실제로 핵 무력을 통한 미군 철수 압박이나 적화 통일 의도를 내비친 적이 있습니까?

기자) 여러 번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뒤 북한은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은 대세의 흐름 등을 보고 “남조선에 있는 저들의 고용병(주한미군)들의 운명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 한다”고 경고했었습니다. 특히 한국 국민들에게 주한미군에 매달릴 경우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신문 역시 핵무력을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평화 보장은 “철두철미 남조선에서 미군을 몰아내는 데 그 근본 열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선군절 4주년을 맞아 북한 특수부대를 방문해 “오직 총대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었습니다. 북한은 지난 몇 년 동안 부쩍 핵·미사일 강국을 강조하면서 이런 미군 철수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핵무기가 자위적 수단뿐 아니라 대미 공격용, 나아가 대남 공격과 적화통일 수단이란 포괄적 의도가 담겨있다는 의미인가요?

기자) 북한 정권이 핵을 적화 통일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주장은 이미 2016년에 공개적으로 공포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북한이 36년 만에 개최한 7차 당 대회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느닷없이 다시 꺼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은 1972년의 7·4 공동성명, 1980년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그리고 1993년의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을 말하는데 모두 김일성 주석 주도로 사실상 한국을 혁명화해 적화통일을 한다는 이정표를 갖고 있습니다. 북한 군대는 이 헌장에 기초해 ‘한라산 마루에 공화국기를 꼽고 통일의 광장에 수령님을 높이 모시자”는 전투 구호를 외쳤었습니다.

진행자) 그 ‘조국통일 3대 헌장’이 핵무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건가요?

기자) 북한은 1989년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한국의 흡수 통일을 우려해 ‘조국통일 3대 헌장’의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느슨한 연방제를 꺼내 들며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내부 간섭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체제 불안정을 피하기 위해 이런 행보를 밟았다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분석이었습니다. 그런데 36년 만에 당 대회를 개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일관되게 틀어쥐고 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겁니다. 정세현 전 한국 통일부 장관은 7차 당대회 뒤 한 매체 인터뷰에서 이런 움직임은 “좋지 않은 조짐”이라며 북한이 “통일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1990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국통일3대 헌장’의 핵심 내용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강조한 신년사 핵심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는 겁니다.

진행자) 무엇이 비슷한가요?

기자) 3대 헌장 가운데 북한이 제안해 합의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은 외세의 개입 없이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또 이를 위해서 민족이 우선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남북한 2개의 체제를 용납하는 조건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반공법 철폐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민족’을 19번이나 언급하며 북남 관계는 모두 우리민족끼리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북남관계는 언제까지나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이며 북과 남이 주인이 되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북남 사이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는 우리민족끼리 원칙에서 풀어나가려는 확고한 입장과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김 위원장은 또 한국 정부가 “북남관계의 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청탁하여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외세에게 간섭할 구실을 주고 문제 해결의 복잡성만 조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국통일의 새 역사를 써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죠.

진행자) 그러니까 적화 통일의 기조였던 ‘조국통일 3대 헌장’의 핵심인 ‘우리민족끼리’를 재강조한 것은 핵 무력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란 지적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민족끼리’에 관한 정의도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이란 말은 사전적으로 오랜 세월 공동생활을 하면서 같은 문화와 역사를 가진 인간 집단의 최대 단위를 말합니다. 남한이 이런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과 달리 북한은 ‘민족’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말하는 ‘민족’은 ‘김일성 민족’이라고 정의합니다. 고영환 전 북한 외교관은 과거 기고에서 북한 내 사전과 인쇄물은 일관적으로 ‘조선 민족은 김일성 민족’이라고 선전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일성의 탄생으로 조선의 역사와 정체성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란 겁니다. 따라서 북한이 말하는 민족 통일은 이를 지지하는 세력과의 통일이지 김일성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자유 민주주의 세력은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대북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핵무기는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 수단이란 겁니다.

진행자) 그럼 한국 정부는 핵무기 개발이 동족인 남한이 아닌 미국용이란 북한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 핵무기 개발의 최대 목적은 적화통일 등 군사적 위협용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경대수 의원] “북한이 이게 단순히 체제 안전 보장용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견해에 동의를 하시는 겁니까?”
[녹취: 송영무 장관] “그것은 핵 개발 하려고 하는 의도에 한 10%밖에 안 되고 저는 볼 때 90% 이상은 군사적 위협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민민국에 적화통일 목적도 있다고 보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많은 전문가는 북한의 핵 개발이 한 가지 목적보다 전통적인 북한 자위 억제용, 대미협박용뿐 아니라 대남 적화통일용 등 다목적 계산이 담긴 것으로 분석합니다. 하지만 ‘조국통일 3대 원칙’과 핵 무력 완성을 부쩍 강조하는 것을 볼 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정권 자멸을 자초할 수 있는 미국과의 핵무기 전쟁보다는 미국의 개입을 막고 북한 주도로 대남 갑질을 강화하며 무력 통일을 앞당기려는 의도가 높다는 분석도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와 함께 핵무기가 한국이 아닌 미국용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의도와 배경에 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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