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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국 “북한 부채, 남북통일 후 회수 위해 탕감 취소”


영국 런던의 외교부 건물.
영국 런던의 외교부 건물.

영국 정부가 40년 넘은 북한의 빚을 탕감해줄 계획을 세웠다가 남북한 통일 뒤 회수를 기대하고 이를 취소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영국이 1970년대 북한의 석유화학공장에 투자한 뒤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도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김영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영국 정부가 북한의 채무를 변제해줄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남북 통일 후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 탕감 방침을 취소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VOA’가 영국 정보공개법(FOIA)을 통해 단독 입수한 영국수출금융청(UKEF) 자료에 따르면 UKEF는 2013년 5월 북한의 부채 회수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부채를 인정했으며 국제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상환 등)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었지만 어떤 행동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UKEF는 그러나 2013년 6월 작성된 내부 이메일 내용을 소개하며 영국 정부가 부채 회수 시도를 멈추지 않기로 했으며 지금도 같은 입장이라고 ‘VOA’에 밝혔습니다.

폴 래드포드 UKE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6월 10일 니겔 스미스 재무국장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이 부채를 상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결국엔 회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된다면 부채 전액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동독과 서독, 북예멘과 남예멘과 같은 실례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과 같은) 버림받은(pariah) 국가가 독재적 경제를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적었습니다.

스미스 재무국장은 같은 날 보낸 답장에서 래드포드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지금은 북한의 부채 회수를 멈출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당시 보도되던 남북 대화 관련 소식들을 언젠가 (북한이) 전세계 다른 국가들과 함께 하게 될 수 있다는 신호로 풀이했습니다.

UKEF는 ‘VOA’에 북한의 부채가 1975년 기준 586만 (5,864,356) 파운드에 달하며 아직까지 상환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정부는 현재 기준 금액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물가상승률을 배제한 최근 환율로 환산할 시 이는 약 793만 달러 수준입니다.

해당 부채는 1972년 영국의 GKN사가 북한의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에 투자하면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영국 GKN이 투자한 금액은 786만 파운드였으며 북한 측은 총액의 20%와 반년치 할부금만을 상환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UKEF가 자국 GKN사의 무역 피해액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해 부채가 발생하게 됐습니다.

UKEF가 공개한 자료에 담긴 '2008년 북한 부채 상환 전략 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오랫동안 상환 관련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북한 조선무역은행은 2000년 5월 영국의 부채 상환 요구에 부채를 인지하고 있다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에 부채 탕감이나 변제를 요구했었습니다.

영국은 이듬해인 2001년 북한에 대사관을 설치한 뒤 대리대사를 통해 부채 상환을 위한 협상에 나섰습니다.

2002년 당시 평양주재 영국 대리대사는 조선무역은행 측과 만났지만 조선무역은행은 또 한 번 부채 면제와 탕감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북한은 부채를 상환할 자금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후 평양주재 영국대사관 측은 본국에 이른 시일 안에는 부채를 돌려받을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했습니다.

‘VOA’가 입수한 해당 자료는 영국 정보공개법이 규정한 기간보다 늦게 공개됐습니다. 앞서 UKEF 측은 지난달 12일 ‘VOA’에 해당 문건 공개가 비밀 사안과 교역 기밀, 국제 관계와 연관돼 있다며 지연 이유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한편 국가 채무 전문가들은 남북이 통일이 된다면 한국이 빚을 떠안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개발도상국 부채관련 전문가인 하미드 장게네 미국 와이드너 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이 부채를 떠안는 부분에 있어선 논쟁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하미드 장게네 교수] “I don’t think there will be any argument. West Germany took over assets and liabilities of East Germany, and that was the end of it. Same thing will happen for the unification of South Korea and North Korea.”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이 동독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물려 받았고 별다른 논쟁 없이 그렇게 문제가 해결됐다는 겁니다.

장게네 교수는 남북한 통일 시에도 같은 전례를 밟을 것이라면서, 베트남 통일 당시에도 상황은 같았다고 소개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부채는 한국에 큰 부담을 안기지 않을 규모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하미드 장게네 교수] “First of all, it is not a big deal. I don’t think it is more than few billions. I don’t think it is even a $1 billion, which is a chump change for South Korea.”

북한의 부채는 10억 달러에도 못 미칠 것이고, 이는 한국에게는 매우 적은 금액이라는 설명입니다.

데인 롤랜드 캐나다 칼튼대학교 교수도 독일 사례를 들며 통일이 된다면 한국이 채무를 이행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채권국들과 부채 규모를 줄이기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부채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한국은 부채 전액을 인정하고 채권국들의 요구를 들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영국 외에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체코, 핀란드, 루마니아 등도 북한으로부터 30년 넘게 빚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VOA’에 현재로선 빚을 탕감해줄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폴란드의 경우는 지난 2012년 북한으로부터 전체 채무 중 39%만 돌려받고 남은 빚을 청산해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VOA’ 취재로 확인된 북한의 부채 규모는 최소 5억 달러가 넘습니다. 스위스가 2억875만 달러로 확인된 국가 중 가장 많았고 오스트리아가 1억6천888만 달러로 뒤를 이었습니다.

VOA 뉴스 김영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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