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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장승길 전 북한대사 미국 망명 20년...계속된 침묵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전 이집트주재 북한대사가 망명 전 카이로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난 1997년 8월 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와 그 가족이 미국으로 망명한 지 20년이 됐습니다. 장 대사의 망명은 북한 최고위급 외교관의 첫 서방세계 망명이어서 큰 파장과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에 망명한 뒤 공개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와 달리 장 전 대사는 계속 침묵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보내드리는 '심층취재' 오늘은 김영권 기자가 장 전 대사의 망명 당시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였던 임성준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회고를 통해 당시 상황을 되돌아 봤습니다.

1997년 8월 22일. 이집트 카이로의 북한대사관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수선했습니다. 대사관 수장인 장승길 대사 부부가 연락을 끊고 잠적했기 때문입니다.

장 대사는 40대 초반에 북한 외무성 부부장을 지낸 유력 외교관이자 중동 전문가로 카이로에서 3년을 보낸 뒤 평양 복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장 대사 부부의 잠적이 카이로 외교가에 빠르게 퍼지자 임성준 당시 한국대사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니까 대사가 망명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CNN 등 외신들이 우리 대사관에도 찾아왔고. 저도 이집트 외무성에 접촉을 해서 관심을 표명했고 거기에 있는 미국대사관과도 접촉했고 그런 후속 조치들을 했죠.”

장 대사가 잠적하기 직전, 프랑스에 있던 장 대사의 형인 장승호 북한 무역대표부 참사관도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장 대사가 미국으로 갔다는 소문이 확산됐지만 미국대사관은 물론 이집트 정부도 확인 중이란 답변만 한 채 침묵했습니다.

북한 고위급 외교관 가족이 잠적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취재진이 북한대사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직원들은 취재를 막으며 일부 외신기자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매우 거칠게 대응했습니다.

[녹취: 북한대사관과 취재진이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

북한대사관의 한 참사관은 취재진에 장 대사가 잠적한 게 아니라 북한에 있다고 거짓말을 해 혼란을 더 부추겼습니다.

잠적 사흘 뒤인 8월 25일, 한국 관리들이 언론에 장 대사 가족이 미국으로 갔다고 처음으로 확인하자 미 국무부는 26일 특별브리핑을 열어 장 대사의 망명 사실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녹취: 제임스 루빈 국무부 대변인] “Ambassador Chang Sung Gil and his brother, Chang Sung Ho, diplomat in Paris, along with Ambassador Chang Sung Gil’s wife, have sought and been given asylum……”

제임스 루빈 당시 국무부 대변인은 장 대사 부부와 형의 가족이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장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북한의 최고 관리라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녹취: 제임스 루빈 국무부 대변인] “I think it’s clearly the highest-ranking case.”

루빈 대변인은 그러나 사안이 매우 민감하다는 이유로 장 대사 가족의 구체적인 망명 이유와 이동경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다음날 여러 관리들을 인용해 장 대사가 망명 신청 다음날인 23~24일 사이에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입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신문은 CIA가 가짜 이름과 미국인 여행증명서를 이용해 이집트 정부도 모르게 `카이로 탈출작전'을 펼쳤다고 전했습니다.

임성준 전 대사는 미 정부가 이렇게 속전속결로 장 대사 가족의 망명을 수용한 것은 그의 정보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여러 가지 북한 내부 기밀이라든가 상황에 대해 정보적 이용가치가 있을 때 보통 망명도 수락하고 그러는데, 장 대사는 북한에서 고위직을 거쳤기 때문에 상당히 정보적 가치가 많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절차가 다 쉽게 진행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 전 대사는 특히 카이로가 북한이 중동 지역에 무기를 수출하는 주요 거점이란 배경을 미국이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이집트 북한대사관은 중동에 대한 북한의 소위 미사일 판매라든가 기술 제공 면에서 협력이 많았었고 상당히 거점 공관이었기 때문에 그런 측면의 정보들이 많이 장 대사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장 대사의 망명 전 주에 북한의 미사일 기술 확산 활동을 이유로 북한 회사 두 곳을 제재했고, 별도로 북한과 뉴욕에서 미사일 확산 관련 3차 대화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미 관리들은 당시 ‘뉴욕타임스’ 신문에 북한이 이집트와 시리아, 이란에 미사일과 다른 무기들을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는 이스라엘 등 역내 동맹과 미국의 우려사안이란 점을 지적하며 장 대사의 정보 가치를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장 대사 가족이 망명을 결단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는 장 대사 형제의 망명이 확인되자 두 형제가 공금 유용과 비밀누설 혐의로 이미 7월 말에 자격이 정지됐고, 이들을 복귀시켜 조사를 진행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가 엘리트 출신 탈북 인사들에게 범죄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게 거의 일반화된 상황에서 북한 측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는 지적입니다.

익명의 한국 관리는 당시 카이로의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이집트에 시계를 밀반입하다 경찰에 체포돼 평양에서 격노한 게 장 대사의 망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뉴욕타임스’ 신문에,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시기에 장 대사가 우방인 이집트의 대규모 식량원조를 끌어내지 못해 처벌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 대사에 앞서 한국에 망명한 일부 북한 외교관들은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북한체제의 붕괴 가능성, 이로 인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한국에 망명한 사건이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임성준 전 대사는 서방세계에 1년 앞서 망명한 아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장 대사 아들이 장철민으로 기억이 되는데 제가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10대 후반인데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다닌다는 소문이 많았고 심지어 한국 교민들과도 접촉하면서 스스럼없이 대화도 나누고 여러 가지 소문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버지 속을 좀 썩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 1996년 어느 날 철민 씨가 불쑥 임 대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너 누구냐? 그랬더니 제가 장 대사의 아들 장철민입니다 하고 설명하면서 대뜸 서울로 가겠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건 좀 중요한 일이구나 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한국 정부에 보고도 하고 내부 논의도 했는데, 이럴 경우 망명으로 받아줘야 하는데 얘가 아직 나이가 자기의 생각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망명을 받아들인다는 게 상당히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얘를 받아들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죠”

임 전 대사는 철민 씨가 다시 전화해 한국행 결정 여부를 묻자 아버지처럼 따끔하게 혼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너 아버지 속 썩이지 말고 빨리 부모에게 돌아가라. 그렇게 제가 타이르고 저도 부모로서 자식을 둔 입장에서 장 대사가 비록 북한대사이지만 부모로서 충분히 이해가 가서 타일렀죠. 그러니까 전화를 뚝 끊더군요”

장 대사의 아들 철민 씨는 통화 2~3주 뒤 잠적해 이스라엘을 거쳐 캐나다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성준 전 대사는 장 대사가 평양에 들어가 몇 달 동안 보이지 않자 아들 때문에 소환된 것으로 추측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2~3달인가 상당히 오랜 기간 평양에 갔다가 다시 (카이로에) 나타난 거에요. 그래서 아들 문제가 잘 해명이 됐거나 그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소위 정치적 백그라운드가 있거나 이런 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죠.”

장 대사는 북한 외교가에서도 잘 나가는 외교관이었고 부인 최해옥은 가극 ‘꽃파는 처녀’의 주연배우를 맡아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유명 인사였습니다. 게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부인 김영숙의 집안과 동생 김경희와도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 전 대사는 장 대사의 망명 일주일 전쯤 이집트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만나 얘기를 하자고 했더니 그가 굉장히 당황스러워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구석으로 가서 얘기 좀 합시다, 했더니 굉장히 당황하면서 일단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아들 얘기를 해줬죠. 아들에게 아버지 속 썩이지 말고 잘 가라고 했다고 했더니 당황하면서도 듣고 제게 고맙다고 말을 했었죠. 그 이후 장 대사도 잠적을 했는데 제 짐작에 자기의 망명 계획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서 걱정했던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얘기가 아니라 아들 얘기를 하니까 안도를 한 게 아닌가 그런 추측을 해 봤습니다."

그 것이 장 대사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임 전 대사는 장 대사가 체제선전에 열을 올리는 북한 외교관들과 달리 점잖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아들과 형 등 가족 때문에 망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더라도 망명은 잘한 선택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성준 전 대사]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나라를 버리고 떠난다는 게 어려웠겠지만 역시 인간은 자유와 평등이 하나의 기본권인데, 이런 권리를 되찾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아마 상당히 좋은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디 행복하고 건강하고, 또 북한의 김정은체제가 무너져서 자기들도 자유로운 북한이 되면 고향에 가고 싶겠죠. 그래서 그런 날이 빨리 오길 저는 염원합니다.”

VOA는 미 정보당국에 장승길 전 대사의 소재를 물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미 정부는 정치적으로 국내에 망명한 외국 인사들의 신변보호와 개인의 권리 등을 이유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ykk@vo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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