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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소련 북한 유학생 집단망명 생존자 “6.25전쟁 진실 안 뒤 반감 싹터”


지난 1958년 북한 유학생으로 모스크바에 있다가 망명한 김종훈(오른쪽 2번째) 씨가 망명 2년 전 소련 전연맹국립영화대학 기숙사 앞에서 다른 북한 유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제공: 김종훈.

1958년 8월 북한 정권을 충격에 빠트린 모스크바 북한 유학생들의 집단 망명 사건이 발생한 지 꼭 59년이 됐습니다. 당시 북한 유학생들은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해 사상투쟁을 벌이다 망명을 선택했는데요. 이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김종훈 씨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먼저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진실을 안 뒤부터 유학생들 사이에 반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사안들을 살펴보는 ‘심층취재,’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김종훈 씨] “첫째는 일본 공민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두 번째는 북조선 공민이었지요. 북한 공민! 러시아에 와서는 무국적 공민, 그 다음에는 러시아 공민이 됐지, 소련 공민. 지금은 카자흐스탄 공민이 됐습니다. 이렇게 사실상 공민권이 다섯 번이 변경됐습니다. 하여튼 제일 불행한 역사에서 희생된 인물이죠”

노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립니다.

[녹취: 김종훈 씨] “나는 거기(북한) 가면 제일 먼저 잡혀서 죽어요. ‘아직도’ 가 아니라 영원하죠. 김일성을 건드린 놈인데. 김일성을 살인방조자, 전쟁을 일으켰다고. 가짜 김일성이란 것을 중앙당에 편지를 쓴 게 다 남아 있는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공개서한’ 이라고 해서 김일성이 왜 그런 놈인가 하는 것을 다 적어서 거기 보냈어요.”

노인에게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통일이 되지 않으면 조국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그의 이름은 김종훈. 한반도에서 4천 km나 떨어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살고 있습니다.

[녹취: 김종훈 씨] “1932년 정월 초하루이니까 31년생이나 다름없죠”

황해남도 해주 출신인 김 씨는 지난 1958년 평양을 충격에 빠트렸던 모스크바 북한 유학생 집단망명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녹취: 김종훈 씨] “58년에 망명을 했으니까 58년! 반세기가 훨씬 넘었고 이젠 인간으로서 (웃음소리)”

당시 소련 전연맹국립영화대학에 유학 중이던 북한 학생 10명 가운데 8명은 북한의 김일성 개인숭배와 독재 움직임에 반대해 소련에 남아 투쟁하기로 결정합니다.

[녹취: 김종훈 씨] “소련 20차 당 대회라는 게 있었어요.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는 당 대회가 있었지. 그래서 우리도 스탈린을 막 비판했지. 그와 관련해서 조선에서는 김일성을 비판하기 시작했지. 연안파가 그래서 몽땅 망했지. 김일성 비판하다가.”

1956년 2월 니키다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소련 공산당 20차 대회에서 스탈린 우상화와 공포정치를 강하게 비난한 이 역사적 사건은 북한 유학생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녹취: 안찬일] “거기(소련)서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니까 북한에 있던 연안파 최창익, 김두봉 이런 사람들, 그 당시 러시아주재 북한대사가 이상조라고 연안파의 대표적 인물이죠. 이 사람들이 조선노동당도 개인 숭배하지 말아야 한다! 연안파를 중심으로 소련파랑 같이 그런 요구를 하니까 김일성이가 이들을 치는 거죠. 그 게 8월 종파 사건이죠”

김종훈 씨는 같은 학교 유학생이던 허웅배 씨의 아버지가 연안파 핵심 인물로 숙청되자 허 씨가 우상화 비판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쉬쉬하던 다른 유학생들도 적극 동참했습니다.

[녹취: 김종훈 씨] “북조선에는 민주주의가 없고 개인독재이고 하면서 김일성 정권을 비판했지. 김일성 너 나쁜 놈이다. 왜 그렇게 막 숙청하는가? 이게 동기가 돼서 싸움이 시작됐지. 그래서 영화대학이 몽땅 일어나서 허웅배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지. 이제 말할 때가 됐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자. 김일성이가 어떤 사람이며 전쟁을 시작한 놈이고 자기가 살기 위해 사람들을 잡아 죽인다고 폭로하기 시작했지. 김일성도 가짜 김일성이란 것을 그러니까 조선에 나가긴 다 틀렸지”

김 씨는 특히 6.25 전쟁에 관해 얘기할 때 목소리가 커졌습니다.인민군 포병부대 소대장으로 3년 간 참전해 사단장 부관까지 지낸 그는 소련에 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종훈 씨] “몰랐어요. 몰랐어요. 우리는 정의의 전쟁! 무고한 나라를 국방군이 갑자기 쳐들어 왔고 나중에 16개 외래무장 간첩자들까지 우리를 쳤다. 그렇기 때문에 난 소대장으로서 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외래무장 간첩자들에게 죽으면 죽었지 우리나라를 그냥 내 줄 없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는 3년 동안 투쟁을 했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 김일성 정권에 대한 강한 배신감은 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녹취: 김종훈 씨] “러시아에 와서 이런저런 문헌을 조사해 보고 참전자들과 얘기해 보고 다 얘기한 결과 결국은 전쟁을 북한이 먼저 시작했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 때 격분했습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속였는가? 자기네가 전쟁을 도발하고선 왜 남이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가 말이야. 그래가지고 김일성이 나중에 자기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남노파, 소련파, 연안파, 갑산파 이런 사람들을 다 잡아 없앴습니다.”

당에 대한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아 유학길에 올랐던 김 씨와 친구들. 하지만, 진실을 알아가면서 김일성 우상화 반대투쟁에 나섰고, 결국 반당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조국에 갈 수 없는 운명을 맞습니다.

안찬일 소장은 이들의 투쟁이 김일성 독재정권에 대항한 사실상 최초의 청년·학생 저항운동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안찬일 소장] “그 사람들은 북한 밖에 있었으니까 나름대로 저항을 한 겁니다. 최초의 청년학생들의 저항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원조 내지 시조이지요”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유학생들은 소련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붉은 광장에서 분신자살하겠다며 버텼습니다. 소련 정부는 유학생들의 우상화 반대에 공감했지만 공산 동맹인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공식 망명대신 거주권만을 허가했습니다.

또 김 씨 일행이 김일성 정권에 대항해 반정부 투쟁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을 동서남북 각지로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녹취: 김종훈 씨] “망명을 해서 같은 곳에 남아 함께 투쟁을 계속하려 했는데 소련정 부가 우리를 어떻게 배치한지 알아요? 한 사람은 이르쿠츠크 저 동쪽, 두 번째 사람은 스탈린그라드 저 서방, 나는 북극 무르만스크…이렇게 우리가 모이지 못하도록 여러 군데로 배치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모일래야 모일 수 없고 갈래야 갈 수 없고 볼래야 볼 수 없고. 그렇게 일생 동안 다 흩어져 없어지고 늙어 죽고 말았어요”

동무들과 가끔 서신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했지만, 대륙의 삶은 고독했습니다.

[녹취: 김종훈 씨] “1년에 열 달 이상이 겨울이고 나머지가 봄입니다. 6개월은 낮이고 6개월이 밤이고. 별난 생활을 다 해 봤습니다. 외롭고 고향 생각이 많이 나고 부모 생각도 많이 나고 부모님도 다 떠나시고…”

영화촬영사로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닌 끝에 머리가 희어져서야 카자흐스탄에 정착했습니다. 다행히 이 곳에 일부 동료들이 먼저 살고 있어 가족처럼 지냈고 고려인 부인 사이에 아들도 낳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망명한 유학생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이제 김 씨 홀로 남았습니다.

냉전 이후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해 눈부신 발전상에 놀랐고 21세기에도 3대 세습을 하는 북한의 모습에 분노한다는 백발의 노인. 그래도 “조국통일”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를 높입니다.

[녹취: 김종훈 씨] “(남한이) 조국통일을 하는 방침(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래요. 민간단체를 동원해서 고무풍선에 신라면을 실어 북한에 보내는 것! 두 번째는 38선에다가 확성기 있잖아요. 그걸 크게 틀어서 대북방송을 자꾸 하는 것! 그 거 두 가지 밖에 더 있어요?”

90을 바라보는 이 노인의 마지막 소원은 통일입니다. 북한에 사상의 자유, 나라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는 세상이 오면 조국에 돌아가 동료들의 숭고한 뜻을 꼭 알리고 싶다는 김종훈 씨.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사는 그는 “고향이 너무 그립다” 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종훈 씨] “어찌 조국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부모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고 어린 시절에 같이 자란 친구들이 있는 고향이 어찌 그립지 않겠어요…”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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