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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강제 북송의 악몽


서울에서 중국 내 탈북자들의 보호와 강제 북송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자료사진)
서울에서 중국 내 탈북자들의 보호와 강제 북송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자료사진)

많은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에서도 항상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현안들을 살펴보는 ‘심층취재,’ 이연철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녹취: 박지현] “애가 거의 돌 되기 전인데 저희 마을에 여자 다섯 명이 다 잡혔어요. 현 공안에 잡혔는데, 저는 애까지 업고 갔거든요. 애가 돌도 안 됐을 때니까.”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8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한 박지현 씨는 2000년에 중국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중국으로 건너온 직후 중국 돈 5천 위안, 미화 약 700 달러에 헤이룽장성 시골마을의 조선족 남성에게 팔려간 지 2년 만이었습니다.

박 씨는 다행히 북한으로 송환되지 않고 5천 위안의 벌금을 내는 조건으로 풀려났지만, 이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시골마을을 떠나 도시로 도망쳤습니다.

이후 무단장과 하얼빈에서 장사를 하고, 북한에 있을 때 교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조선족 아이들에게 과외도 하면서 삶을 꾸려갔지만, 또 다시 중국 공안에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녹취: 박지현] “밤에는 바람소리에도 잠이 깨거든요. 언제 한 번 푹 잤다, 이런 게 없어요. 조그만 소소한 소리에도 일어나고 일어나고 하거든요. 항상 불안했거든요. 특히 밤에 제일 무서운 거예요.”

결국 하얼빈에 살던 2004년 어느 날 밤에 남자 10명이 집에 들이닥쳐 박 씨와 아들을 끌고 갔습니다. 박 씨는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탈북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중국 당국자들은 신고를 받았기 때문에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제북송을 피할 수 없게 된 박 씨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선택은 아들을 데리고 북한으로 끌려 갈 것인가, 아니면 혼자 북한으로 끌려갈 것인가 뿐이었습니다.

[녹취: 박지현]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고, 온 몸의 피가 꺼꾸로 솟고 말라버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그 방법 밖에 없어가지고 애를 두고 갈 거라고 얘기했거든요.”

이렇게 강제북송된 박 씨는 중국에서 한국행을 모색하거나 기독교를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시골의 농장으로 보내져 강제노동과 끔찍한 가혹 행위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혹독한 강제노동으로 두 달 만에 다리에 심각한 상처가 생겼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다리의 감각을 잃었고,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북한 당국은 서둘러 박 씨를 석방했습니다.

풀려난 뒤 다행히 상태가 호전된 박 씨는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곧바로 탈북 브로커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신매매를 스스로 자처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그래도 중국 땅에 가야 아들을 찾을 수 있잖아요. 일단은 떠나야 되는 게 우선이더라고요. 아마 제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을 것 같아요.”

다시 중국으로 나온 박 씨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될 위기에 있던 탈북 브로커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러자 이 브로커는 박 씨를 인신매매하지 않고 아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렇게 아들을 다시 만난 박 씨는 더 이상 중국에 살며 체포와 강제북송의 두려움에 떨면서 살 수는 없겠다고 판단해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2008년에 난민 자격을 얻어 아들과 함께 영국에 정착했습니다.

지난 2006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살고 있던 탈북자 김정아 씨도 3년 만에 한국행을 택한 이유로 강제북송의 공포를 꼽았습니다.

중국에 간 지 두 달 만에 공안에 체포된 김 씨는 극적으로 풀려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공안의 감시에 시달렸습니다.

[녹취: 김정아] “거짓말 안하고 밤에 잠 한 숨 못잤어요. 그 트라우마를 견디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는데 그게 안 돼서 한국으로 들어온 거예요. 여기에서 북송된다는 위험과 공포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김 씨는 중국에서 10년 넘게 잘 살던 탈북자들도 단 한 번 북송 위험을 겪게 되면 그 공포를 절대 잊지 못하고, 서둘러 한국행을 택한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구출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는 중국 내 탈북자들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날마다 가슴을 졸이고 사는 거죠. 혼자가 아니고 아이가 하나 둘 있는 사람들은 더군다나 잡힌다는 것은 아이하고 헤어져야 한다는 거잖아요.”

김 목사는 최근에는 중국 당국이 탈북자들뿐 아니라 선교사와 브로커들에 대한 단속도 강화해 탈북자 구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최근, 중국에 38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구금돼 있다며, 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임박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단체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은 중국 당국에 이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녹취: 로버트슨 부국장] "We are demanding that the government of China give assurances that they allow these people…"

중국 정부가 구금된 탈북자들을 석방해서 원하는 나라로 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은 1982년에 유엔 난민지위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했지만, 탈북 난민에 대해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탈북자들을 경제적 유민으로 간주해 북한으로 강제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COI는 최종보고서에서 강제북송된 탈북자들이 조직적인 학대와 고문을 당하고, 장기적이고 자의적인 구금을 당하며, 특히, 한국 국적 인사나 기독교인과 접촉한 것이 발각되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고, 경우에 따라 즉결 처형되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COI는 탈북자들이 학대를 피해 탈출한 난민이나 현장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탈북자들을 강제북송하는 중국은 국제난민법과 인권법에 명시돼 있는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을 준수할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의 민간단체인 `행복한 통일로'의 도희윤 대표는 중국 정부가 한 때 변화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도희윤 대표] “상당 기간 동안 강제북송이라든지 탈북인들의 체포 구금 이런 소식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중국 당국의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를 했는데, 요즘 들어 그런 기대가 다 물거품이 되는 상황입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자유연합의 수전 숄티 대표는 국제사회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숄티 대표] "The international community needs to pressure China to abide by the international treaty obligations…"

중국이 국제협약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고, 유엔난민기구의 탈북자 구출 활동을 허용하도록 국제사회가 중국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두 번의 체포와 한 번의 강제북송을 경험한 박지현 씨는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박지현] “자다가도 중국 공안에 잡히는 꿈, 북한에서 강제노동 하는 꿈, 또 쫓기는 꿈 계속 꾸거든요. 저희가 한 평생 갖고 가야 되는 마음의 짐인 것 같아요.”

박 씨는 모든 중국 내 탈북자들이 자신과 똑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강제로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를 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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