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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미 정부의 단둥은행 제재, BDA 사태 재현될까?


미국 정부가 북한의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해 자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킨 중국 단둥은행의 선양분행.
미국 정부가 북한의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해 자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킨 중국 단둥은행의 선양분행.

미국 정부가 중국의 금융기관에 대해 전격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지난 2005년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가 재현될지 주목됩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북한은 물론 중국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매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주요 현안들을 살펴 보는 심층취재,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 재무부가 최근 중국 단둥은행에 취한 조치는 엄밀히 따지면 제재는 아닙니다.

재무부는 발표문을 통해 중국인 2명과 중국 기업 1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하면서, 단둥은행에 대해선 ‘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들에게 조치를 취한 주체도 달랐습니다. 제재 대상 개인과 기업은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맡았지만, 단둥은행에 대한 조치는 재무부의 법 집행기관인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이 취한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둥은행에 대한 조치가 제재 보다 파급력이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무엇보다 지난 2005년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제재 때와 같은 효과를 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단둥은행에 대한 이번 조치가 BDA 때와 사실상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돈 세탁 등을 방조한 혐의로 미 재무부의 ‘주의대상’이 됐던 BDA는, 당시 이 조치 이후 북한 자금 2천5백만 달러를 동결했습니다. 이어 중국 내 24개 다른 은행들이 일제히 북한과의 거래를 끊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추가 조치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북한의 반발은 물론, 이에 따른 파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재무부는 이번 조치가 BDA 때와 마찬가지로 미 애국법 311조에 근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미국 금융기관과 연계된 은행들은 단둥은행과 관련된 해외계좌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단둥은행은 이번 조치로 미국 달러화 거래를 할 수 없게 됐으며, 미국은 이로써 해외 은행을 통한 단둥은행의 미 금융시스템 간접 접근도 차단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는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국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하는 등 BDA 때의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they are prohibited from dealing with the U.S. financial institutions, which is a very powerful message to other financial institutions around the world ...”

미국 금융기관들과의 거래가 금지된다는 사실 자체가 전세계 다른 금융기관들에겐 매우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가 “매우 중대한 발전”이라고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밝혔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전세계 금융시스템이 달러화 거래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북한과 거래를 하는 은행 입장에선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클링너 선임연구원] “It precludes the bank from being able to access the U.S. financial system and the vast majority of all international transactions in the world are denominated in dollars...”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2005년 BDA 제재가 북한에 충격을 가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서, 당시 북한 관리가 백악관 관리에게 ‘당신들이 드디어 우리를 아프게 할 방법을 찾았다’고 했던 발언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스테판 해거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이번 조치의 효과가 직간접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은행들이 중국 고객들에게 북한과 관련된 어떤 사업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조치가 중국 지도부를 겨냥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이 12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금융기관을 상대로 조치를 취한 것은 중국에 대한 압박이 본격화됐다는 신호라는 분석입니다.

미 재무부에서 오랫동안 금융 제재를 담당했던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진흥재단 연구원은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제재는 북한의 제재 회피 활동을 막아야 하는 중국 지도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어 “중국의 은행 관계자들은 미국 금융시스템으로의 접근을 차단 당할 수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고, 동시에 중국 지도부의 지시 없이도 북한과의 거래를 회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이번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앞으로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놓은 것이라고 루지에로 연구원은 밝혔습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미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중국의 은행도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클링너 선임연구원] “The U.S. has taken action against European banks for money laundering for Iran, imposing $12 billion in fines, but still has not yet imposed ...”

미국은 이란의 돈 세탁을 이유로 유럽의 은행들에 12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지만, 지금까지 중국 은행에는 어떤 벌금도 매기지 않았다고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단둥은행에 대한 조치는 미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고, 미국 법을 집행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의미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이번 조치가 단순히 중국 은행과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녹취: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 “I think these are secondary sanctions…”

이번 제재가 ‘세컨더리 보이콧’ 즉, 북한과 거래한 제 3국의 개인과 기관을 겨냥하는 조치라는 겁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지칭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인 북한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의 설명입니다.

중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을 포함한 미국의 독자 제재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 왔습니다.

실제로 단둥은행에 대한 조치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즉시 이번 실수를 바로잡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이로 인해 관련 사안에 대한 양자 협력관계에 영향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정부는 북한의 도발 중단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므누신 재무장관] “North Korea’s provocative, destabilizing, and inhumane behavior will not be tolerated.We are committed to targeting North Korea’s external enablers in maximizing economic pressure on the regime until it ceases its nuclear and ballistic missile programs.”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29일 북한의 도발적이고 불안정하며, 비인도적인 행동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이 중단될 때까지 북한 정권에 대한 경제적 압박 극대화와 함께, 북한의 외부 지원세력을 겨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번 조치가 유엔 제재를 보완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활동을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전문가들도 새로운 BDA 식 제재가 북한의 불법 활동을 어느 정도 막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북한이 여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다른 기관을 통해 이를 회피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단둥은행과 같은 기관들이 더 이상 북한과 거래를 할 수 없게 된 만큼,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이번 사안이 북한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겪으면서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망을 피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한경제라는 게 과거 BDA 사건 때와는 달리 회피 수단이 많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또 위험이 많이 분산돼 있는 상황이어서 BDA와 같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별로 높지도 않고....”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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