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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역대 미-한 정상회담, 빛과 그림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 두 정상은 다음달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 간 미-한 정상회담이 다음달 말 워싱턴에서 열립니다. 두 나라는 그동안 60여 차례 정상회담을 하며 동맹관계를 굳건히 다져왔습니다.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현안들을 살펴 보는 ‘심층취재,’ 김영권 기자가 역대 주요 미-한 정상회담을 조명해 봤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처음 정상회담을 한 것은 6.25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2년 12월입니다.

[녹취: 미 국방뉴스 아이젠하워 방문] “Half a million people..”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전 약속한 대로 한국을 방문해 이승만 대통령과 두 나라 간 사상 첫 정상회담을 열고 휴전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후 두 나라 정상들은 지난해 9월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정상회담 때까지 65년 간 적어도 63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산술적으로 보면 거의 해마다 만나 동맹관계를 다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옛 진보 정부에서 주영, 주일 대사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는 ‘VOA’에, 두 나라 정상 간 위기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라종일 전 대사] “한-미 간에 사이가 늘 좋았던 게 아닙니다. 굉장히 친미적인,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이승만 정권 때 한-미 간에 갈등이 굉장히 심했고 박정희 정권 때도 갈등이 심했죠.”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과 공산주의 강경 대응을 놓고 온건 성향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상당한 이견을 보여 미국에서 이승만 정권 교체론까지 제기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지난 1979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내외(왼쪽)를 박정희 전 한국 대통령(가운데)이 전용헬기로 안내하고 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DMZ를 방문해 하룻밤을 보냈다.
지난 1979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내외(왼쪽)를 박정희 전 한국 대통령(가운데)이 전용헬기로 안내하고 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DMZ를 방문해 하룻밤을 보냈다.

지난 2006년 펴낸 미국의 남북한 정책 관련 저서에서 역대 미-한 정상회담을 분석한 이채진 클레어몬트 맥키나대학 석좌교수는 역대 최악의 정상회담으로 1979년 서울에서 열린 지미 카터-박정희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꼽았습니다.

[녹취: 이채진 교수] “최악의 경우는 1979년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만났을 때가 최악으로 볼 수 있겠죠. 그 당시 회담록이 공개됐지만 우리가 보면 우방국가나 동맹국가들 사이의 회담이라기 보다는 마치 적국의 정상들이 만나서 논쟁하는, 우리가 보기엔 굉장히 어색한 회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진보 성향의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의 군사독재와 민주적 시위 탄압에 격노했고, 군사비 절감과 주한미군이 박 정권의 볼모가 될 수 없다며 주한미군 철수까지 추진했습니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의 조치를 `내정간섭'이라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주한미군 철수가 남북한 군사균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기밀해제된 백악관 정상회담 문서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회담에서 무려 40분 간 쉬지 않고 주한미군 철수 추진이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야기했다고 비판했고, 카터 대통령은 한국의 국방비 확충과 인권 개선을 요구하며 설전을 벌였습니다.

회담 뒤 두 나라 관리들은 두 정상 간 만남이 “재앙’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미 국방 관리들과 일본이 주한미군 철수가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깰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해 철수 기한이 연기됐고, 박 대통령의 사망과 카터 대통령의 재선 실패로 두 나라 간 긴장은 사라졌습니다.

지난 2015년 11월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왼쪽)과 노무현 한국 대통령이 한국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2015년 11월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왼쪽)과 노무현 한국 대통령이 한국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의 전직 관리들은 미 보수 정권과 한국의 진보 정권이 마주했던 부시-노무현 정상회담을 최악의 순간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대사는 퇴임 뒤 가진 한미경제연구소(KEI) 강연에서, 2005년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이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버시바우 전 대사] “it was probably the worst ever ROK-US summit meeting……”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 불안감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전쟁 종전과 평화협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취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북한 정권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 개발을 포기해야만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결국 이런 대립은 노무현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갑자기 부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압박해 부시 대통령과 미 관리들을 당혹하게 하며 관계가 크게 어색해졌습니다.

[녹취: 노무현 전 대통령] “조금 전에 말씀 하실 때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 선언에 관해서는 말씀을 빠트리신 것 같아요.(중략) 그렇죠. 매우 똑 같은 얘기인데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녹취: 부시 전 대통령] “I can’t make it any clearer, Mr. President”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더 이상 분명하게 얘기할 게 없다며 노 대통령의 요청을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일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를 없애야만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회고록에서 노 대통령의 이 발언에 “모두가 당혹스러워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그 순간이 얼마나 괴상했는지(bizarre) 모르는 것 같았다”며, 그는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인물로, 이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도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미적”, “정신 나간 인물”이라고 혹평해 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비판적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을 지내며 초기 미-한 정상회담을 조율했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두 나라 정부가 2003년 첫 정상회담 때부터 이견이 컸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이종석 전 장관] “그 때도 핵 문제와 관련해 (두 정부 사이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핵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문제를 풀고 싶어했고 그래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표현을 (공동성명에) 쓰고 싶어했고. 그 말이 군사적 제재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미국이 쓰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직전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것을 결사적으로 쓰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그러다 보니 절충해서 ‘further step’ 이란 말을 쓰게 됐습니다. 이런 게 보여주는 것처럼 그 때 상당히 북 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가 일치된 생각은 사실 갖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버시바우 전 대사는 ‘VOA’에, 당시 이견이 분명 있었지만 두 나라 실무진들의 “집중적인 협의”를 통해 공통적인 접근방식을 찾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버시바우 전 대사] “we were able to find the common approaches through intensive consultation…”

버시바우 전 대사는 한국이 현재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 교체가 됐다는 이유로 미-한 관계에 걸림돌이 많아졌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공동 전략을 어떻게 세우는지가 두 나라 간 미래관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미-한 관계가 주목을 받는 것은 문재인 현 대통령과 주요 관리들이 과거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었고, 비슷한 국정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주한대사를 지낸 크리스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 때 미국이 이미 상대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힐 전 차관보] “We worked with Moon Jae-in before when he was chief of staff of Roh Moo-hyun…”

두 나라 사이의 대북관에 분명 일부 이견이 존재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문재인 대통령과 담당자들을 긴밀히 접촉하며 어떤 생각이 있는지 경청할 것이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만 서로가 놀라게 할 언행을 자제하며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힐 전 차관보는 말했습니다.

한편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과거 클린턴-김대중 정부, 부시-이명박 정부 때의 관계를 역대 최상의 관계로 꼽았습니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갓 취임한 부시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며 너무 서두르다 관계가 오히려 불편해진 사례와, 미국에 바락 오바마 진보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명박 보수 정부와의 대북정책 충돌 우려가 있었지만 두 나라 관계가 최상으로 유지된 사례들을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미리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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