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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부터 시신 송환까지 45일…수사 미궁 빠질 듯


29일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 전경.
29일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대사관 전경.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의 시신을 북한으로 송환하기로 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양국의 이번 합의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사태 진전과 앞으로의 수사 전망에 대해 알아봅니다.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30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된 김정남 씨 시신을 북한에 보내기로 했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사건 발생 45일만이자, 북한과 말레이시아 정부가 상대국 국민을 억류하는 초강수를 둔 지 약 한 달만입니다.

이번 결정으로 두 나라의 갈등은 사실상 일단락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북한 국적자들에 대한 체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심증만 남을 뿐,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김정남 씨의 사망 소식이 처음 전해진 건 사건 발생 다음날인 지난달 14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말레이시아 방문을 마치고 거주지인 마카오로 돌아가기 위해 2월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찾았던 김정남 씨가 여성 2명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온 겁니다.

사건 발생 초기만 해도 북한이 연루됐다는 추정만 있을 뿐 결정적인 물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건 발생 이틀과 사흘 뒤 체포된 용의자들이 각각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으로 드러나면서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은 잠시나마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경찰이 CCTV 분석 등을 통해 17일 북한 국적자 리정철을 체포하고, 이어 19일엔 북한 국적자인 리지현과 홍송학, 오종길, 리재남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북한 배후설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리지현 등이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등을 거쳐 이미 평양으로 되돌아간 사실을 확인하고, 이후 인터폴에 이들의 수배를 요청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국적 용의자는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인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등 3명이 추가되면서 총 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추방 조치를 당한 강철 주말레이 북한대사가 지난 4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추방 조치를 당한 강철 주말레이 북한대사가 지난 4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수사의 방향이 북한을 정조준하자, 이번엔 강철 말레이시아주재 북한대사가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살인 사건으로 촉발된 문제가 외교 분쟁으로 확대된 겁니다.

강철 대사는 기자회견과 언론성명 등을 통해 말레이시아 정부가 한국과 결탁해 이번 사건에 대해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 강 대사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등 이례적으로 주재국 정부를 비난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그러자 말레이시아 고위 당국자들 역시 북한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습니다. 나집 라작 총리 등 고위급 인사들이 잇달아 북한과의 단교 가능성까지 내비친 겁니다.

결국 말레이시아 정부는 강 대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목해 추방했고, 북한과 맺은 무비자협정까지 폐기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지난 40여 년 간 비교적 무난했던 두 나라의 외교관계가 한 순간에 틀어진 겁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화학청이 김정남 암살에 쓰인 화학물질을 분석해 VX신경가스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말레이시아 화학청 전경.
지난 2월 말레이시아 화학청이 김정남 암살에 쓰인 화학물질을 분석해 VX신경가스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말레이시아 화학청 전경.

이런 가운데 김정남 씨 살해에 쓰인 화학물질이 ‘VX’로 밝혀지면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유엔이 화학무기금지협약을 통해 금지한 이 물질이 자국 공항에서 사용됐다는 사실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물론, 국제사회의 우려는 더욱 커졌습니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김정남 씨 시신의 향방을 놓고도 갈등 국면을 이어갔습니다.

북한은 자국민의 사망인 만큼, 북한으로 시신을 인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말레이시아는 가족에게 시신을 넘기겠다며 맞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정남 씨의 자녀인 김한솔, 솔희 남매가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DNA를 통한 신원 확인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신 말레이시아 경찰이 직접 김정남 씨의 아들이 있는 곳에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나라의 갈등 국면에서 변화가 감지된 건, 북한이 말레이시아인들에 대한 출국 금지를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평양에 남아 있는 말레이시아인은 9명으로 알려졌는데, 북한의 조치가 나온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의 발언이 급속도로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고위직들은 말을 아꼈고, 단교 가능성을 내비쳤던 나집 총리는 ‘단교까진 아니’라는 발언으로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그렇게 두 나라는 김정남 씨 시신 인도와 말레이시아인 9명 문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협상을 시작, 결국 30일인 이날 최종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일부 한국 언론들은 이번 합의가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의 ‘인질 외교’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김정남 씨 시신에 대한 재부검을 실시해, 기존 말레이시아의 부검 결과를 뒤집는 발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또 북한 국적 용의자들이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지만, 북한이 인터폴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체포는 물론, 사건 해결이 어려워졌다고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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