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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북한 억류 미국인 처우 악화…영사 접견 차단 최장기화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오토 윔비어 씨가 지난 2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오토 윔비어 씨가 지난 2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들여다보는 ‘뉴스 인사이드’입니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들에 대한 처우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수 년 동안 억류 미국인들과 평양주재 스웨덴 공관과의 면담에 제약을 가해왔던 북한은 최근 들어 국제법에 명시된 영사 접견 권리를 1년 가까이 허용하지 않는 등 더욱 가혹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24 시간 감시 속에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채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억류 미국인들에게 낯선 땅에서의 영사 접견은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구입니다.

2009년 3월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중 체포돼 북한에 142일 간 억류됐던 유나 리 전 ‘커런트 TV’ 기자는 평양주재 스웨덴대사와의 첫 대면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녹취: 유나 리 기자] “그 때 위안이란 말로 표현을 못하죠. 처음에 감히 상상도 못했던, 누군가가 와서 저희를 봐 줄 거라는. 그 분이 미국을 대신해서 와 주신 분이잖아요.”

북한에서 곤경에 처한 미국인들에게 유럽 국가인 스웨덴 외교관이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건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미국을 대신해 스웨덴대사관이 현지 미국 시민에 대한 영사보호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양주재 스웨덴대사와 1등 서기관은 북한의 수감 시설, 병원, 수용소 등에 수감된 미국인들을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가족들의 편지와 책, 그리고 건강이 악화된 이들에겐 의약품까지 전달합니다.

2년이라는 최장기 억류 기간 내내 요통과 당뇨 등 여러 질환에 시달렸던 케네스 배 씨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북한 당국에 요양을 요청하면서 처방약을 전달했던 창구도 역시 영사 접견이었습니다.

케네스 배 씨의 어머니 배명희 씨 입니다.

[녹취: 배명희 씨, 케네스 배 씨 모친] “스웨덴 영사께서 만나서, 면회를 허락해서 병원에 가서 만나서 얘기하고 온 걸로 전해 들었으니까…(아들이) 원래 허리가 많이 아팠어요…한국에 주치의가 있어서 한국에서 약을 지어서 3개월 한 번 씩 북경 대사관으로 해서 또 스웨덴 영사로 해서 보냈어요, 늘.”

북한에서 풀려난 미국인들이 귀환 직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미국 정부와 정치인들 뿐아니라 반드시 스웨덴 당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2009년 3월 17일 북한에 억류됐던 유나 리, 로라 링 기자는 같은 해 8월 4일 석방될 때까지 평양주재 스웨덴대사와 4차례 만났습니다. 늘 예고 없이 이뤄진 짧은 만남이었지만 유나 리 씨에게는 5개월의 억류 생활을 견디게 해 준 가장 큰 위안이자 힘이 됐습니다.

[녹취: 유나 리 기자] “그 분하고 만나고 오면 아, 앞으로 한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다, 물론 그게 이틀도 안 갔지만, 누군가 우리를 봐 주고 있구나, 누군가가 우리 상황을 알고 있구나 라는 게 굉장히 위안이 됐었어요.”

다음해 1월 25일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북한 당국에 체포됐던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는 8월27일 귀환하기 전까지 최소 5차례 스웨덴대사관과 접촉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미-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따라 미국인 인질들의 영사 접견을 불규칙하게 허용하고 수시로 차단해왔습니다.

2014년 4월 10일 북한 입국 과정에서 억류된 매튜 토드 밀러 씨는 11월 8일까지 8개월 간의 수감 기간 동안 5월 9일과 6월 21일 두 차례만 스웨덴대사관 측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또 같은 해 5월 7일 성경책 유포 혐의로 체포된 제프리 파울 씨에게는 10월 21일 석방일 까지 5개월 반 동안, 6월 20일 단 한 차례의 영사 접견만 허용됐습니다.

당시 국무부의 한 관리는 ‘VOA’에, 드물게 이뤄진 밀러 씨와 파울 씨의 영사 접견 소식을 전하며, 스웨덴대사관 관리가 밀러 씨의 재판 과정도 지켜볼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1963년 체결된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는 체포, 구금된 외국인이 자국 영사의 면담을 요구할 경우 즉시 해당국 정부에 이를 통보하고 영사 접견을 보장하도록 돼 있습니다.

국제법 전문가인 한국 한동대 법률대학원의 원재천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원재천 한동대 교수] “일반적으로 국제 관례가 있고 영사 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을 보면 특히 형사 사건의 경우에는 본국에서 (영사) 접근권이 있어야 합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조사와 협박, 혹은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미국인 수감자들은 그러나 북한에서 국제법에 보장된 이런 권리를 누리기 어렵습니다.

외국인 가운데 북한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735일 동안 억류됐던 케네스 배 씨는 노동교화소와 병원 등에서 12차례 영사 면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배 씨 억류 기간 내내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최대 4개월까지 영사 접견을 막았을 뿐아니라 변호인 접견이나 스웨덴대사의 재판 참관 역시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케네스 배 씨의 증언 입니다.

[녹취: 케네스 배 씨] “(스웨덴대사가) 재판에 참여하겠다고 저에게 말씀도 주셨는데 재판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된다면 그 누구도 참여할 수 없다, 이렇게 됐는데 그래도 요청을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오시지 못했습니다.”

억류 미국인들의 영사 접견 문제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는 이후 더욱 완강해졌습니다.

스웨덴 대사관은 올해 1월2일부터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를 지난 3월 2일 마지막으로 접견했고, 지난해 10월 2일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체포된 김동철 씨는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애나 리치-앨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5일 ‘VOA’에 3월 접견 외에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가 웜비어 씨 재판을 참관했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애나 리치-앨런 대변인] “A representative from the Swedish Embassy in Pyongyang, which serves as the Protecting Power for U.S. citizens in North Korea, was present at the sentencing. A representative from the Swedish Embassy has had one visit with Mr. Warmbier on March 2, 2016.”

리치-앨런 대변인은 북한에 억류된 또 다른 미국인 김동철 씨와 관련해서는 김 씨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은 채 “미국 시민이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는 언론보도를 알고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지난 1974년 제정된 미국의 ‘개인정보보호법 (Privacy Act)’에 따라 미국 정부는 억류 미국인들이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 관계자와 만나 이 권리를 포기한다는 서명을 하지 않는 한 이들의 신원과 구금 현황을 언론 등에 공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무부가 김동철 씨 상황을 공개하지 못하는 건 억류 10개월이 넘도록 북한이 김 씨의 영사 접견을 차단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케네스 배 씨에 대한 스웨덴 대사관 측의 방문이 허용되지 않았던 4개월을 훨씬 뛰어넘는 최장기 공백으로 억류 미국인, 특히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처우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북한 당국이 억류 중인 미국 시민을 정치적 선전을 위한 볼모로 삼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지적은 이런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미 국무부는 억류 미국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며, 미국인을 즉각 사면 석방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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