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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특별인터뷰] 북한 태권도 시범단 원용남 감독, 김순희 선수


북한 태권도 시범단 원용남 감독(좌)과 김순희 선수(우)
북한 태권도 시범단 원용남 감독(좌)과 김순희 선수(우)

4년 만에 미국을 다시 찾은 북한 ‘조선태권도 시범단’이 가는 곳마다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시범단과 동행하면서 북한 선수들의 움직임을 밀착 취재해 보내드리는 특집 방송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조선 태권도 시범단 원용남 감독과 김순희 선수로부터 미국 방문 소감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보겠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단독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감독님 (이하 ‘원’) 그리고 김순희 선수 (이하 ‘김’) 안녕하세요?

원) 안녕하십니까?

김) 안녕하십니까?

기자) 먼저 두 분 소개부터 부탁 드리겠습니다.

원) 예, 저는 태권도 6단 감독 원용남입니다.

김) 4단 김순희입니다.

기자) 먼저 원용남 감독님, 미국은 지난 2007년에 이어서 두 번째가 맞으시죠?

원) 예, 맞습니다.


기자) 지난번에는 서부에서 시범을 보이셨고, 또 미 동부는 이번이 처음이신데, 감회라고 할까요, 소감을 좀 말씀해주신다면요?

원) 2007년도에 서부에서 시범 했습니다. 그때는 일정이 긴장해서 느껴 볼 수도 없고 그랬는데, 별반 다른 소감은 없습니다. 시범을 잘해서 미국사람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여줘서 두 나라간에 태권도뿐 아니라 체육 분야에서도 호상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게…

기자) 자, 이번에는 김순희 선수께 여쭤보겠습니다. 시범 하시는 걸 보니까 굉장히 위험한 동작도 많고, 그리고 또 격파할 때, 넘어질 때 목도 그렇고, 허리도 그렇고 막 꺾이던데,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셨어요?

김) 없습니다.

기자) 김순희 선수껜 특히 이것을 안 여쭈어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2007년도에 미국에 와서 격파 시범을 보이다가 팔이 부러졌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 때는 정말 아무도 몰랐어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시도를 해서 격파에 성공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팔이 부러진 상태였다고 하던데, 그 때 속으로는 사실 굉장히 많이 아프셨죠?

김) 네, 아팠습니다. 바늘로 손끝만 다쳐도 아픈데 팔뼈가 꺾어졌는데 안 아플 수가 있겠습니까? 시범할 때는 정말 아픈 것도 참고 하면서 탁 보니 우리 공화국 별을 봤단 말입니다. 공화국 별을 보는 순간 우리 장군님 영상이 떠오르고, 장군님께서 우리 시범을 보아주신다고 생각하니까 아픈 게 하나도 없고 장군님께서 주신 배짱과 신념이 생겼습니다.

기자) 그렇게 다치신 뒤에는 어떻게 치료를 받으셨어요?

김) 조국에 들어가서 김일성 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기자) 그리고 나서 그 때 다친 것 때문에 태권도를 하시는데 전혀 지장은 없으셨어요?

김) 예, 하나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기자) 뒤에 후유증은 없으시다고 하시니까 참 다행인데요, 원용남 감독님께 여쭈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거친 동작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선수들의 부상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원) 예, 훈련 과정에 부상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특히 무릎, 발목 부상들이 운동하는 과정에 생기는데 이 때마다 치료도 해서 적극적으로 해서 완쾌가 되어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병원에 가서 치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자) 원 감독님, 선수들을 보니까 2007년에 미국에 왔었던 낯익은 얼굴들이 있는데 선수들 선발은 어떻게 합니까?

원) 제 17차 태권도 세계 선수권 대회가 평양에서 진행이 됩니다. 거기서 개막 시범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도 말에 시범을 학교 사범들, 여느 수련생들로 해서 시범팀을 하나 조직했습니다.

기자) 그렇게 해서 선발이 되고 나면 어떤 식으로 훈련을 받는지 궁금한데요, 특히 이번 미국 시범 공연을 위해서 참 많은 연습을 거쳤을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를 하셨는지 그 과정을 좀 소개 해주시죠.

원) 많은 연습을 했습니다. 우리 시범단은 세계에서 제일 유력한 시범단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또 긍지도 가지고. 요새 시범조 사람들은 기술이나 육체적 훈련이나 그거와 함께 정신적으로나 준비하기 위해서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기자) 열심히 하고 계시다고 하셨구요, 그렇게 땀 흘린 만큼 이번에 실력 발휘를 하셨는지 특히 어제 시범 공연에 만족을 하시나요?

원) 어제 시범을 놓고 보면 정말 잘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기술적으로나 힘, 이런 것을 멋있게 보여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자) 예, 그렇게 위험한 동작을 하시면서 안 다치시고 잘 하신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은데요. 김순희 선수는 태권도를 몇 살 때부터 시작하셨어요?

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하셔서, 내가 여기에 정말 소질이 있구나, 이 길로 나가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그게 언제세요?

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내가 태권도의 기상과 넋을 그거 해가지고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 조국의 공화국 깃발을 날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더욱 더 심장이 비틀어댔습니다.

기자) 이 태권도를 할 때 특히 가장 자신 있는 동작은 뭔지 좀 소개를 해주시죠. 시범을 보일 때 보니까 남자 선수들 여럿을 다 때려눕히시던데 어떤 동작에 특히 자신 있으신가요?

김) 높은 목표에 있는 것을 차는 동작, 투기 동작이라고 합니다. 반대 돌려차기도 할 수 있고, 한 번 떠가지고 높이 앞차고 주먹 지르고 찰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그게 다 호신술이겠죠?

김) 예.

기자) 원용남 코치님, 지금 김순희 선수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12명의 선수가 태권도 시범에 나섰는데 10명이 남자 선수네요. 여자 선수는 김순희 선수와 리순금 선수 두 명뿐인데, 여자 선수들이 좀 더 많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웃음)

김) 많으면 더 좋지만 시범 과정이 많이 좀 힘듭니다. 낙법도 그렇고, 위력적인 측면도 그래, 투기 동작도 그래, 여러 가지가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기술적, 육체적, 동작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많이 포함돼서 여성들을 더 데려 오고프지만, 남자들이 할 거리여서.

기자) 그 말씀은 곧 김순희 선수와 리순금 선수는 남자만큼, 아니 남자 이상으로 더 강한 여자 선수라고 봐도 되겠네요?

원) 네 남자만큼 잘합니다.

기자) 원 감독님께서도 선수들 지도하시기 전에 태권도 시범단, 혹은 공화국 대표 선수 생활을 거치신 거겠죠?

원) 예, 거쳤습니다.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하고.

기자) 선수 생활은 얼마나 하셨습니까?

원) 한 10년 했습니다.

기자) 미국 방문은 두 번째 이신데, 다른 나라들도 많이 다녀 보신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어느 나라 방문하셨어요?

원) 한 15개의 많은 나라를 방문했습니다. 러시아, 불가리아, 벨지크, 도이칠란드, 남아프리카, 오스트리아 등등 다녀왔습니다.

기자) 기억에 남는 나라라든지, 혹은 기억에 남는 시합들 어떤 것이 있을까요?

원)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서 9차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 참가 했을 때가 제일 인상에 남습니다. 저로서는 처음으로 참가하는 선수권 대회여서 기억에 가장 남습니다.

기자) 그 때 좋은 성적을 거두셔서 더 기억에 남는 건 아닐까요?

원) 네 맞습니다. 그때 제가 참가해서 남자 개인 기술상을 수여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인상이 깊습니다.

기자) 네, 그거 못지 않게 또 경력도 화려하실 것 같습니다.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 거두고 입상했던 경력, 자랑을 한 번 해주신다면요? (웃음)

원)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9차 선수권 대회와 10차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1등한 저를 인민 체육인으로 키워주셨습니다. 인민 체육인 칭호를 수여해주시고, 저에게 사랑의 집도 한 개 주셨습니다.

기자) 자 이제, 감독님 옆에서 계속해서 얌전하게 저를 쳐다보고 계신 김순희 선수께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운동하고 나면 특히 보통 때보다도 배도 더 고프고 한데, 미국 음식 처음에는 맛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 조국 음식 막 생각나고 그렇지 않습니까?

김) 네 생각납니다.

기자) 지금 제일 먹고 싶은 음식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김치하고 평양 냉면이 먹고 싶습니다. 옥류관에 가면 시원한 게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게 막 생각납니다. 지금도 빨리 가서 옥류관 국수를 먹고픕니다.

기자) 같이 온 여자선수 리순금 선수와는 몇 년이나 같이 알고 지낸 사이죠?

김) 10년입니다.

기자) 10년 동안이요? 누가 언니예요?

김) 순금 동지가 언니입니다.

기자) 사이 좋게 두 분이 잘 지내시나요?

김) 사이가 참 좋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순금 동지가 친 언니가 되어서 잘 돌봐줍니다.

기자) 그럼 10년 동안 한번도 안 싸우셨어요?

김) 네, 안 싸웠습니다.

기자) 두 분이 싸우시면 아주 무서운 광경이 연출이 될 것 같은데 절대 싸우시면 안 될 것 같구요. 기회가 된다면 또 미국에 와서 태권도 실력을 발휘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세요?

김) 다시 한번 있다면 우리 전통 무술인 태권도의 기상과 넋을 다시 힘있게 과시하고 싶습니다.

기자) 조국의 부모님 보고 싶으시죠? 부모님께 지금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김) 부모님께 할 말이 있다면, 부모님께 효도하기 전에 조국 앞에 먼저 충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기자) 두 분 다 조선에 돌아가시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도 끝으로 여쭤 보겠습니다.

원) 네 이번에 돌아가서 우리는 17차 세계 선수권 대회의 개막 시범을 성과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준비를 위해서 가자마자 다시 훈련에 들어가야 됩니다.

기자) 이번에 온 선수들이 전부 다 참가하게 되겠죠?

원) 네, 기본 선수들 다합니다.

기자) 네, 김순희 선수의 계획은요?

김) 저도 제 17차 태권도 세계 선수권 대회를 위하여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조국의 영예를 더욱 떨칠 것입니다.

기자) 두 분 모두 참 멀리까지 오셔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시느라 많이들 피곤하실 텐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원, 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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