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을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김여정 노동장 제1부부장이 교환하고 있다.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을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김여정 노동장 제1부부장이 교환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연내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선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10일 담화를 내고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 “미-북 수뇌회담이 올해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마이크 폼페오 미국 국무장관이 현지 시간으로 9일 북한과 비핵화 대화를 매우 원한다면서 ‘고위 지도자들’이 다시 만날 가능성을 거론한 지 6시간 만에 나온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7일 미국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3차 미-북 정상회담에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연내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부정적인 이유로 미국에 필요한 것이지 북한에 무익하다는 점, 그나마 유지돼 온 정상 간 특별한 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예언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 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며,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선 자신들의 행동과 병행해 미국도 불가역적 중대 조치들을 동시에 취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또 미국에 요구하는 변화가 자신들에 대한 제재 해제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며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라는 지난 기간 미-북 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미-북 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2월 결렬됐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영변 핵 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맞바꾸는 문제로 재논의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향후 북한의 군사행동 가능성에 대해서 미국이 대선 전야에 이른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지 여부는 미국이 처신하기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미-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생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특별한 친분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는 자신의 인사를 전하라고 했다”고 밝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기대하는 김 위원장의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사실상 김 위원장의 의중을 담아 3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최근 미국 측이 발신한 메시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대선 승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사실상 대선 이후를 준비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미-북 두 정상 간 관계가 굳건하고 훌륭하다면서도 자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이 미-북 간 새로운 기본의제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철회와 미-북 협상 재개’라는 무리한 방안을 제시한 것도 미국의 차기 정권을 염두에 둔 기싸움 차원의 포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일단 트럼프가 대선에서 좀 어렵겠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고, 바이든 같은 경우는 협상 차원에서 보면 어렵죠. 그러니까 틀을 바꾸면서 협상판을 키우는 거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이벤트성 만남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하면서도 미국이 입장을 바꾸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의사도 이번 담화에 짙게 깔려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조 박사는 ‘적대시 철회 대 미-북 협상 재개’라는 새로운 협상 기본주제를 제시하면서 정상 간 친분을 여러 차례 강조한 대목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김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미국의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얻으려 한다는 파격적이고 우호적인 언급은 미국과의 접촉을 바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구체적인 성과물을 도출하기 위해서 영변 폐기 이상의 양보안을 제시하고 미국 측으로부터도 기존 안에서 더 나아간 양보안을 얻어내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계속 얘기하는 게 두 정상 간 친분을 더 강조하잖아요 김여정이. 그 얘기는 트럼프와 협상을 하고 싶다는 의중으로 보여집니다. 트럼프하고 협상이 더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고. 그러니까 은근한 메시지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대선 캠페인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그러니까 다시 협상을 하자, 그러나 이번엔 상응 조치를 분명히 내놔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이 자신들이 바라는 미국의 입장 변화 가능성을 크게 보진 않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판도에서 불리한 형세를 뒤집기 위해 파격적 대북 카드를 꺼낼 가능성에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여전히 북한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자기들이 시급하고 다급하니까 가능성을 계속 열어서 좀 계속 찔러 보는 형태로 가지 않을까, 민주당이 되면 확실히 어렵다는 게 있으니까 혹시 트럼프가 그전에라도 결정적으로 변화를 준다면 북한 입장에선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자신들에게 유리하니까 그 여지는 열어놓는 거죠.”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를 통해 미 대선 전 미-북 협상에 문을 닫았다기 보다는 새로운 제안을 기대하며 미국에 공을 넘긴 형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