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4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외무부 청사를 방문했다.
지난 10월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에서 수석대표를 맡은 스티븐 비건(왼쪽)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외무부 청사를 떠나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북한을 향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을 촉구했지만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밝혔습니다. 북한으로선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협상력 강화를 위해 그 때까지 제한된 수준에서 대화 보다는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29일 북한에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외교의 문이 열려 있다고 밝힌 것은 일단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실무 협상 결렬 이후 장기간 멈춰 선 협상 재개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그러나 비건 부장관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 전 미-북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선 “아마도 그럴 것 같지 않다”며 성사 가능성을 낮게 전망했습니다.

북한과의 비핵화 실무 협상을 총괄하는 비건 부장관의 이런 발언은 새로운 제안이라기 보다는 북한의 도발 명분을 약화시키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비건 부장관이 “아주 견고하고 세부적인 계획을 제시했고 북한이 협상에 관여한다면 아주 빨리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미국의 협상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하노이 정상회담과 스톡홀름 실무 협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미국 측이 제시했던 구체적인 협상 로드맵을 놓고 다시 한번 협상을 해보자는 차원으로 풀이됩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하지만 하노이 회담부터 분명해진 미국과의 큰 입장차이 때문에 11월 미 대선 전엔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실무 협상에 북한이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영변 핵 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제안하고, 그 대가로 2016년 이후 유엔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외 기타시설 해제를 요구하는 이른바 ‘영변 플러스 알파’를 원해 결렬된 바 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스톡홀름 실무 협상에서 미국은 비핵화의 정의 등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전제로 상응 조치에서 보다 유연한 제안을 했지만 북한은 실현 가능한 비핵화와 상응 조치부터 우선 합의하고 이행 상황을 봐가며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는 단계별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고수하며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의 이 같은 해법은 자신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결렬 이후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면서 대화 보다는 대선 이후 대미 협상력 제고를 겨냥해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리선권(외무상)이 6월12일 기해서 얘기했잖아요.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 있어야 될지, 미국이 치적으로 삼는데 이를 계속 놔둬야 될지 모르겠다. 그게 제가 보기엔 최적인 것 같아요. 언제든지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 그러나 실제로 레드라인을 넘어버리면 미국과의 협상,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경고만 하는 거에요.”

최근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빌미로 거세게 대남공세를 펼친 것도 한국 정부를 통해 미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북 정상회담 실패로 현 단계에서 다시 대화에 나서기엔 버거운 정치적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김 위원장은 그 당시에 내가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다고 그랬는데 이는 내부 반발이 많았다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나름대로 갖고 왔는데 실패했거든요. 그러면 내부 강경파들이 옳았다는 게 이미 입증되는 상황인데 북한 내부적으론 그런데 여기서 추가적으로 양보하는 것은 선택하기 어렵죠.”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큰 입장차 말고도 북한이 단기적으로 협상에 나설 수 없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불확실성을 꼽고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인종차별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미궁에 빠지면서 북한이 협상 카드가 있어도 섣불리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설사 실무 협상에 나서 일부 진전을 이룬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정책에서 각을 세우고 있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새 대통령이 될 경우 도로아미타불이 될 공산이 큰 때문입니다.

[녹취: 박원곤 박사] “북한의 가장 큰 고민은 11월 대선이겠죠. 지금 무언가를 미국과 하기엔 대선 결과가 매우 중요한데 트럼프가 안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잖아요. 그렇다면 대화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박 교수는 북한이 스톡홀름 실무 협상 결렬 이후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것은 대선 이후 협상력 제고를 겨냥한 대미 압박을 예고한 것이라며, 비건 부장관의 발언은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한 상황관리용의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