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메클링 주니어 전 대령 Rt Col. Eugene B. Mechling, Jr
유진 메클링 주니어 전 대령의 과거와 2017년 한국을 방문해 공군 주력기 F-15에 오른 모습(한국 공군 제공)

오늘(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1년이 되는 날입니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한국전쟁이 남긴 값진 유산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며,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은 전쟁에서 누가 승리했는지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공산 독재정권 치하에 있는 모든 북한 주민이 한국인들처럼 속히 자유와 번영을 누리길 기원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후 한국을 방문했던 미군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희생자와 상흔을 남겼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한국인들을 돕기 위해 파병된 미군 등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당시의 참혹한 상황과 대비되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룬 오늘의 한국을 보며 참전의 의미를 재확인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1951년부터 이듬해 말까지 F-84 전투기를 몰고 100회 이상 출격해 한국전쟁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던 유진 메클링 주니어 전 대령도 그중 한 명입니다. 

미국 공군 제 49 폭격 비행단 소속으로 수많은 공중전을 치르고 공산군의 주요 시설을 폭격해 ‘불사조’란 별명까지 얻어 수훈비행십자훈장까지 받았던 그는 전후 64년만인 2017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참전에 대해 큰 자긍심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메클링 전 대령] “I think South Korean people have done a marvelous job in developing their own democracy. I'm very, very proud of the fact that I served there to help get you started and keep you free of communism.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놀라운 일을 했으며, 자신은 한국인들이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겁니다.

1925년생으로 올해 96세인 메클링 전 대령은 1997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공군의 주력기인 F-15 전투기에 오른 뒤 전사한 전우들에 대한 기억과 한국의 발전상에 감격해 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메클링 전 대령은 22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지금도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민들을 보면 누가 한국전쟁에서 승리했는지는 아주 명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 중 미국에 있는 아내가 첫 아기를 출산했을 때도 돌아가지 않고 전선을 지켰던 보람을 느낀다며, 한국인들이 이런 자유를 굳건하게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메클링 전 대령] “Stay strong! Stay free! And stay with the other nations like the US and Japan, Australia and the other free nations. Stay strong against the communist efforts wherever they rise up,”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한국은 미국과 일본, 호주 등 다른 자유 국가들과 함께 자유를 굳건하게 지키며 공산주의자들이 봉기하는 곳마다 강하게 맞서야한다는 겁니다. 

한국전쟁 발발 두 달여 만에 부산에 도착해 낙동강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를 겪은 워렌 위드한 전 미군 해병대 대령은 지도에서 찾기도 힘들었던 어제의 한국이 오늘날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에 큰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위드한 전 대령] “My friend said where is Korea? My point is that Korea was not on the world map. I landed on August 2 1950 in Korea. And at that time Korea was a very desolate country very very poor. I have now been back several times and I have very, very, very impressed with the energy, enthusiasm, intelligence of the Korean people. Very impressed.”

1950년 8월 2일 한국에 도착했을 때 한국은 매우 황량하고 몹시 가난한 나라였지만, 그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인들의 에너지와 열정, 지성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겁니다.

워렌 위드한 전 미군 해병대 대령(오른쪽)이 2013년 해병대 사령부를 방문해 지휘관과 촬영한 사진(미 해병대 제공)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 등 34년 동안 미 해병대에 복무한 이 백전노장은 영하 30~40도의 엄청난 추위 속에 중공군과 싸웠던 장진호 전투와 기독교인 등 북한 피난민들의 탈출을 도왔던 흥남철수가 군인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많은 북한 피란민들은 자신의 친구였다며, 이런 멋진 북한 주민들이 여전히 공산주의 치하에 있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위드한 전 대령은 말했습니다.

[녹취: 위드한 전 대령] “it's very sad because there are so many wonderful Koreans in North Korea, which is subjected to this communist domination,”

올해 92세인 위드한 전 대령은 자신이 죽기 전에 남북한이 통일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미국에 그들의 친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미 육군 제3보병사단 소속 포병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1952년부터 9개월 동안 38선에서 중공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래리 카이나드 전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장(KWVA)은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닌 잊혀진 승리”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카이나드 전 회장] “Our legacy and my feeling are, it needs to be spread broadly across the United States that we did something good, that Korean War is not the forgotten who you are, it's the Forgotten victory.”

“우리가 선한 일을 했다는 것과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라는 것을 미국 전역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래리 카이나드 전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장(KWVA)이 한국전쟁 중 카투사 병사들과 촬영한 사진(카이나드 회장 제공)

올해 92세인 카이나드 전 회장은 전쟁의 참혹함과 폐허가 된 한국의 모습을 뒤로하고 떠났기 때문에 오랫동안 한국을 잊고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은퇴 후1997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한 뒤 참전용사들의 기여와 한국인들이 이룬 것에 대해 놀라움과 자긍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카이나드 전 회장] “Well, the surprise is one word I remember. I still remember very vividly, what it was like when I left, but surprised and proud of what we had done and what the Korean people have done…. But I couldn't imagine that Korea would look good is when I went back 

1952년 11월부터 1954년 2월까지 7보병사단 병사로 참전했던 밥 나이절 씨는 수년 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합니다.

한국전쟁 중 14개월 동안 건물에서 한 번도 지내지 못한 채 벙커나 텐트 등 야외에서 생활해야 했고,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 두 번의 겨울을 보냈던 나이절 씨는 한국을 떠날 때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나이절 씨] “I said I'm never, never going back to this damn place again. I had spent two winters there are 20 below zero, and all the time…”

나무가 없는 민둥산, 폐허가 된 채 텅 빈 서울, 수천 명의 고아들이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모습만 한반도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는 겁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밥 나이절 씨 (사진 작가 라미 현/ 수전 기 씨 제공)

나이절 씨는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한반도를 잊고 살다가 참전용사들을 돕는 한국계 미국인 수전 기 씨를 통해 수년 전 서울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나이절 씨] “I was totally amazed by South Korea. I was totally blown away with South Korea for Seoul from when I was there because it went from, like I said complete devastation, until one of the most modern cities in the world that I've ever visited,”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완전히 놀랐으며, 특히 완전히 폐허가 됐던 도시가 지금까지 자신이 방문한 세계 도시들 가운데 가장 현대화된 도시 중 하나가 됐기 때문에 서울에 완전히 매료됐다는 겁니다.

나이절 씨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한국인들을 구했고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에 새삼 보람을 느낀다며, 그러나 전쟁 당시 상황과 지금도 비슷한 북한의 상황에 동정심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전쟁 당시 흥남철수를 통해 북한 주민들을 구하고 고아들을 돌본 것처럼 번영 속에 사는 한국인들도 북한의 독재자가 아닌 열악한 환경 속에 사는 북한 주민들에게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유엔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사상 처음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캐나다, 터키, 호주 등 16개국이 직접 전투병력을 파견했고, 스웨덴과 인도, 덴마크 등 5개국은 병참과 의료지원 등  비전투 지원병력을 파견했습니다.

미 국방부와 보훈부에 따르면 미군은 연인원 178만 9천 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이 가운데 3만 6천 명 이상이 숨졌고, 10만 3천 명 이상 다쳤으며, 7천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종됐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