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언론인 대담] "여성 방송인 연령 차별 없애야" TV 앵커 비비안 리

2021.7.1 6:41 오전
라디오
[여성 언론인 대담] "여성 방송인 연령 차별 없애야" TV 앵커 비비안 리
방송 시작 시간
This program has ended and is being processed for playback.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뉴욕의 대표적인 방송사가 여성 언론인들을 차별 대우했다는 논란에 관한 소송이 지난해 미국 언론계 전체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40대에서 60대까지 여성 앵커들을 카메라 앞에 서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소송 당사자들은 방송사 측과 합의한 뒤 이제 새로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중의 한 명이 한인 이민 2세 유명 방송인, 비비안 리 앵커인데요. 직접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비비안 리 앵커 (비비안 리 제공)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리) 네. 제 이름은 비비안 리(Vivian Lee)입니다. 뉴욕 시민이고요. 여기 산 지 20년 정도 됐네요. 뉴욕에 오게 된 계기는 지역 방송사인 WNBC 기자가 되면서였습니다. 얼마 있다가 ‘뉴욕원(NY1)’ 방송으로 옮겼고요. 거기서 주말 뉴스 앵커로 오래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고 기고하면서,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몸담은 기간은 전체적으로 25년이 넘습니다.  

기자) 작년에 큰 소송을 겪으셨잖아요. 성차별과 연령 차별에 관한 사건이었습니다. 해당 방송국 측에 연락해 입장을 들어본 결과, 회사 이름은 저희가 거론하지 않기로 했는데요. 당사자들에게 정말 많은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어떠셨어요?

리) 음…, 소송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뉴스 업계의 연령차별(ageism)에 대해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런 차별이 여성을 표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방송 화면에 어떻게 비쳐야 하는지에 대한 통념들이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젊음, 미모,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에만 여성 언론인의 가치가 맞춰져 있어요. 남성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기준입니다.

기자) 여성을 능력이 아니라, 젊음과 미모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이 미국 텔레비전 뉴스 업계에 만연해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리) 제가 스무 살 이래 근무한 모든 방송국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제가 캐나다 태생인데요. 캐나다에서 일하던 방송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이 든 남성은 계속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나이를 (경륜으로써)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여성은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seasonal) 방송에 투입되거나, 신선한(fresh) 이미지를 보여주도록 언제나 요구받습니다. 

기자) 시청자 입장에서, 그런 사실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나요?

리) 전형적인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생각해보세요. 남성 앵커는 흰머리를 자신 있게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앉은 여성 앵커는 언제나 젊은 사람이에요. 게다가 두껍게 화장을 하고 미모를 과시합니다. 대다수 방송 뉴스 화면에서 이런 장면을 크게 벗어나지 않잖아요. 그런 그림을 강요받는 겁니다. 그리고 남성 앵커는 몇 년이 지나도 그 자리를 지키면서 시청자들과 만납니다. 하지만, 옆에 앉은 여성 앵커는 주기적으로 바뀌어요. 

기자) 화면에 남성과 여성을 배치하는 기준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리) 그렇습니다. 저는 (1970년대 생으로) 1980년대에 성장기를 거쳤는데요. 성별과 나이, 인종에 관한 차별을 금지한 미국의 민권운동 관련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성별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차별받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미 인종 간 평등과 양성평등에 관한 싸움은 끝났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방송 활동을 시작한 뒤에도 ‘와아, 뉴스룸에 여성이 참 많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언론계가 평등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 들어 ‘더 이상 젊은 여성이 아닌’ 입장이 되고 보니, 사정이 달라졌어요.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연령 차별이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구글링(인터넷 검색)을 해보세요. 언론계 전반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연령 차별 소송 사례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방송이든 인쇄 매체든, 혹은 정치ㆍ경제든 스포츠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아요. 

기자)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가 143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편집국장을 발탁했잖아요. AP통신에서 일하던 샐리 버즈비 신임 국장이 취임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리) 훌륭한 발전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여성 편집ㆍ보도 책임자들이 나와야 해요. ABC 방송도 얼마 전, 여성(킴벌리 갓윈)을 보도 부문 사장에 임명했잖아요. 미국 언론계 양성평등에 커다란 걸음을 내디딘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슬픈 현실이기도 해요. 지금이 2021년 아닙니까? 20세기가 아닌 21세기란 말입니다. 2021년 오늘날, 단지 여성 몇 명이 고위직에 올랐다고 주목받는 일은 역설적으로 아직 양성평등이 멀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기자) 리 앵커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가죠. 25년 전에, 언론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뭔가요?

리) 음…, 25년 경력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초등학교 때였는데요. 어떤 정보를 연구하고 조사해서 지식을 확립한 뒤, 그걸 발표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딱 기자들이 하는 일이 그거잖아요. 정보를 실체화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일이요. 그래서 언론인이 된 뒤에도 주변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받으니, 난 정말 행운아야’라고요. 

기자) 그렇게 좋아하는 기자 일을 하면서 ‘최고의 순간’은 뭐였나요?

리) 탐사 보도 한 건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보도 때문에 뉴욕 시청의 주거 정책을 크게 바꾸게 됐는데요. SRO(Single Room Occupancy: 공동주택 입주자가 방은 각각 따로 쓰면서, 주방과 욕실 등을 공유하는 형태)라는 뉴욕의 독특한 주거 방식이 있습니다. 뉴욕은 워낙 땅값도 비싸고 인구 집중도가 높아서, 그런 게 많은데요. 그런데,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형편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임대인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일이 잦았습니다. 많은 정치인이 그런 현실을 알고 있었지만, 정책을 개선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문제들을 집중 취재해서 보도한 뒤, 관련 피해가 크게 줄었습니다. 

비비안 리 앵커가 CNN 방송에 출연해, 성ㆍ연령차별 소송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CNN 제공)

기자) 아까 잠깐 이야기 나왔습니다만, 캐나다에서 태어나셨죠? 그런데 한인 가정 출신이십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일하는 동안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신 걸로 압니다. 말하자면 ‘한국-캐나다계 미국인’이시잖아요. 이렇게 세 나라에 걸쳐있는 정체성을 본인은 어떻게 규정하십니까?

리) 하하하! 그게 참 재밌는 게요, 만일 그런 질문을 한 30년 전에 받았다면,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면, 답하기 참 어려웠을 거예요. 그때는 제 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확실해요. 저는 한가지 구성 요소(ingredient)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케이크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케이크를 입에 베어 물고, 구성 요소를 일일이 따집니까? ‘아, 이 케이크에는 밀가루 몇 숟갈, 크림 몇 그램, 설탕 얼만큼이 들어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나요? 아니잖아요. 케이크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전체적인 맛을 음미하는 겁니다. 저라는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구성 요소가 여러 개일지라도, 온전한 인격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겁니다. 

기자) 미국인이다, 한국인이다, 혹은 캐나다인이다, 이런 것으로 규정할 게 아니라, 사람 자체를 봐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와서 시민권까지 취득하신 계기는 뭔가요?

리) 캐나다는 경제, 사회, 문화, 군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언론 보도에도 미국 뉴스가 항상 비중 있게 나와요. 그래서 캐나다 사람 누구나 미국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저는 언론인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더 미국 사회가 궁금했습니다. 젊은 시절 제가 보기에 미국은 캐나다보다 ‘더 크고, 더 꽉 찬’ 사회였어요. 그리고 세계적인 위상도 캐나다보다 미국이 훨씬 높았죠. 국제 사회 주요 의제를 선도하는 나라니까요. 그래서, 언론인으로서 미국에 직접 들어와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계속 살 생각이 없었어요. 몇 년만 머물 생각이었는데, 뉴욕에 정이 들고, 시청자들께서 저를 사랑해주시면서 떠나지 못했어요. 하하하. 무엇보다 뉴욕에 살면서 저와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 모두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이 된 거예요. 

기자) 한인 사회를 위한 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시잖아요? 뉴욕 일대 한인 단체 행사에도 관여하시고, 젊은 세대를 위한 강연도 하시고요. 

리) 네. 제가 한국계라는 점에 감사합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하는 큰 결단을 실천하신 것처럼, 저는 그 핏줄을 이어받고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거예요. 부모님께서 삶에 큰 변화를 겪는 과정을 성장 기간 내내 지켜봐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익숙한 환경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면 어떤 긍정적 변화가 있는지, 또는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같은 언어(한국어)를 쓰고,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미국 내 한인들에게 제 경험을 공유하고, 도와드릴 수 있는 점이 있으면 도와드리고 있는 거예요. 

기자) 그렇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게 언론인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장점입니까, 단점입니까?

리) 아, 분명히 도움이 되죠. 특히 뉴욕은 미국 최대 도시이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정말 복잡하고 난해한 뉴스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제 출신 배경이 큰 장점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못 보는 것을 저 같은 사람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민 가정 구성원들은 주류 언론이 인터뷰를 시도하면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언어 장벽 때문인데요.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더라도,  발음이 어색하거나 하면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지 의심하는 심정이 있거든요. 

기자) 그런 경우가 많습니까?

리) 네. (이민자 출신) 시민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죄송합니다. 제 영어가 짧아서요.’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럼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녜요,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제가 잘 이해합니다. 보도에 정확히 반영할 테니 걱정 마시고 말씀해주세요’라고요. ‘악센트(외국어 억양)는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안심 시켜 드립니다. 그러면 한결 표정이 밝아지면서 편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으로서, 그럴 때 참 보람이 커요.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리) 음…, 제가 ‘언론 자유’에 전반적으로 점수를 매길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경험 안에서만 말씀드리면요. 뉴욕처럼 복잡한 지역 사회에서는 매체들이 내세우는 ‘언론 자유’와 ‘공공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냐 하면요. 예를 들어, 어떤 인물에 관한 큰 뉴스가 터졌어요. 방송과 신문에서 수많은 기자가 그 사람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기자들이 공유지인 보행로 위에 서서, 사유지인 주택을 촬영한다고 칩시다. 그럼, 기자들은 공유지에서 ‘언론 자유’에 따른 권리를 수행하지만, 촬영 대상 인물은 사유지인 집에서 사생활을 침해받는 겁니다. 언론이 자유를 내세워 시민의 자유를 침범하는 거예요. 그 정도로 자유가 만개해있습니다. 시청자들께서 쉽게 인식 못 하는 사항이지만,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기자) 얼마 전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탄핵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언론이 관저 앞에 몰려가서 망원렌즈로 촬영했던 걸 기억합니다. 

리) 네, 아무튼 미국의 언론 자유는 공적인 영역에서는 제한이 없는 수준입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이나 (북한의) 평양,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취재 활동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언론 자유도가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비교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에 비춰 볼 때, 미국의 언론 자유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계 없이 강력(robust)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자) 비비안 리 앵커처럼 되고 싶은 젊은 여성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딱 한 가지 조언을 하신다면, 뭐가 될까요?

리) 아, 그거 좋은 질문이네요. ‘미래에 시선을 맞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절대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 만족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길게 봐야 해요. 누구나 나이가 들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이가 드는 데 뒤따르는 부담은 여성 쪽이 훨씬 큰 게 현실이에요. 하나 덧붙이자면, 이런 현실을 바꿀 필요성에도 눈을 떠야 합니다. ‘여자니까 이 정도면 됐지’하고 거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양성평등을 향한 변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여성 각자가 경각심을 갖고 실력을 키우면서, 목소리를 내야 발전하는 겁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리) 우선, ‘여성미디어센터(Women’s Media Center-WMC)’라는 국제적 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나라마다 다른 ‘언론 자유’ 현황을 증진하는 작업이에요. 여성의 시각에서 활동합니다. 이런 단체들이 더 많은 곳에 들어가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두 나라에서만 살아봤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요.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모든 자유와 평등이 그냥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부자유를 발견하고 불평등을 찾아낸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 결과가 사회의 진보로 이어진 겁니다. 시위를 하고 행진을 하면서, 문제점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런 것들이 공동체의 공감을 얻으면 되면 변화가 생겼던 것이고요. 그러니까, 세계 어디서나 먼저 해야 할 일은 ‘목소리를 높이는 일’입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비비안 리 앵커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