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오늘은 10월 21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에서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세계적인 노벨상의 토대를 마련한 알프레드 노벨의 탄생을 돌아봅니다. 또 미국 뉴욕의 대표적인 문화 명소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 건물이 문을 연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Birth of Alfred Nobel — 1833년 10월 21일
[진행자] 첫 번째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상 가운데 하나인 노벨상과 관련이 있군요. 1833년 오늘,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 태어났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알프레드 노벨이 태어났습니다. 노벨은 발명가이자 화학자, 사업가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평생 355건의 특허를 보유했고, 폭발물과 관련한 사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이름은 발명품인 다이너마이트보다 노벨상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노벨이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재산을 인류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데 사용하도록 유언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노벨은 어떻게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게 된 겁니까?
[기자] 당시 유럽에서는 철도와 도로, 터널, 광산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대규모 공사에는 강력한 폭발물이 필요했는데요. 당시 사용되던 니트로글리세린은 폭발력이 강했지만, 충격에 매우 민감해 취급하기에 위험했습니다.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보다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다 1866년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라는 흡수성 물질에 스며들게 해 취급과 운반을 쉽게 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 폭발물에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듬해인 1867년 영국과 스웨덴에서 특허를 받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는 광산과 터널, 철도 건설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널리 사용됐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는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사용되지 않았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다이너마이트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가능하게 하는 데 기여했지만, 폭발물이라는 특성상 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노벨은 폭발물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큰 부를 얻었습니다. 동시에 폭발물의 파괴적인 용도를 둘러싼 문제도 존재했습니다. 노벨의 삶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런 양면성입니다. 다만 노벨이 전쟁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노벨상을 만들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노벨 자신이 유언에서 그런 이유를 명확하게 밝힌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노벨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재산으로 상을 만들기로 한 겁니까?
[기자] 노벨은 1895년 1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마지막 유언장에 서명했습니다. 유언에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기금으로 조성하고, 그 기금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인류에 가장 큰 이익을 준 사람들에게 상으로 수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분야는 물리학과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등 다섯 가지였습니다. 특히 평화상은 국가 간 우호 증진과 군비 축소,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수여하도록 했습니다. 노벨은 1896년 12월 10일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사망했고, 그의 유언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노벨상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첫 번째 노벨상은 언제 수여됐고, 현재는 어떤 분야에 수여되고 있습니까?
[기자] 첫 노벨상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 지 5년 뒤인 1901년 12월 10일에 열렸습니다. 물리학상은 엑스선을 발견한 빌헬름 뢴트겐이 받았고, 첫 평화상은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에 기여한 앙리 뒤낭과 평화운동가 프레데리크 파시가 공동 수상했습니다. 현재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등 모두 6개 분야에서 수여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에 포함되지 않았던 분야로,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제정해 1969년부터 수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식 명칭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입니다.
2. Solomon R. Guggenheim Museum Opens — 1959년 10월 21일
[진행자] 두 번째 이야기는 미국 뉴욕으로 가보겠습니다. 독특한 나선형 건물로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 건물이 1959년 오늘 문을 열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날 미국 뉴욕 맨해튼의 5번가에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로운 건물이 공식 개관했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원통형 건물의 바깥쪽을 나선형 곡선이 감싸고 있는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합니다. 내부에도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경사로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인물은 미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입니다. 개관 당시부터 건축물 자체가 전시된 미술품만큼 큰 관심을 받았고, 지금도 뉴욕을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진행자] 그런데 구겐하임 미술관은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겁니까?
[기자] 아닙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역사는 현재의 건물이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미술관의 이름은 미국의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솔로몬 R. 구겐하임에서 따왔습니다. 그는 20세기 초 유럽의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특히 추상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37년에는 자신의 미술품 수집과 전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1939년에는 뉴욕에 '비구상회화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을 열었습니다. 이후 소장품이 늘어나면서 좀 더 큰 상설 미술관이 필요해졌고, 1943년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새로운 건물의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진행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왜 일반적인 미술관과 전혀 다른 형태의 건물을 설계한 겁니까?
[기자] 라이트는 전통적인 사각형 전시실 대신, 중앙의 넓은 공간을 중심으로 나선형 경사로가 이어지는 독특한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관람객들은 이 경사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벽에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는 높은 천장과 유리 돔이 있어 자연광이 내부로 들어오도록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를 두고 논란도 있었습니다. 곡선으로 된 벽에 그림을 전시하기 어렵고, 독특한 건축물이 오히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을 빼앗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건축물 자체의 예술성과 미술품 전시 공간으로서의 실용성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던 겁니다.
[진행자] 설계가 시작된 것은 1943년인데, 실제 개관은 1959년 10월이니까 완공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군요.
[기자] 맞습니다. 라이트가 설계를 의뢰받은 뒤 건물이 문을 열기까지 16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건물의 위치와 설계, 뉴욕시의 건축 규정 등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있었고, 설계도 수차례 수정됐습니다. 본격적인 건설 공사는 1950년대 후반에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미술관의 설립자인 솔로몬 구겐하임은 1949년에 사망했고, 설계자인 라이트도 1959년 4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완성된 미술관을 보지 못했습니다.
[진행자] 지금은 건축물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기자]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술관 건축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전통적인 미술관이 개별 전시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면, 구겐하임 미술관은 관람객의 이동 경로와 건물 전체의 공간을 하나의 연속된 경험으로 만들었습니다. 개관 당시에는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미국의 주요 건축물 8곳 가운데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진행자]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이자 노벨상의 창설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태어난 1833년 10월 21일, 그리고 미국 현대 건축의 대표작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 건물이 공식 개관한 1959년 10월 21일. 역사 속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