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오늘은 10월 10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은 1845년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서 해군사관학교가 문을 연 날로 돌아가 봅니다. 이어 1964년 아시아 최초의 여름 올림픽이 일본 도쿄에서 개막하고, 위성 통신 기술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올림픽 영상이 전송된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 United States Naval Academy Opens — 1845년 10월 10일
[진행자] 첫 번째 소식입니다. 1845년 10월 10일, 미국 해군사관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대표적인 군사 교육기관 가운데 하나인데, 처음에는 상당히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1845년 10월 10일,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의 세번 요새에서 해군학교가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학생은 해군 장교 후보생 약 50명, 교수는 단 7명이었습니다. 지금의 해군사관학교와 비교하면 매우 작은 규모였는데요. 당시에는 아직 ‘해군사관학교’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공식 명칭은 ‘Naval School’, 즉 해군학교였습니다. 오늘날의 미국 해군사관학교라는 이름은 1850년에 채택됐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미국은 독립전쟁 때부터 해군을 운영했잖아요. 왜 해군사관학교는 그보다 훨씬 늦게 설립된 겁니까?
[기자] 당시에는 해군 장교를 양성하는 방식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젊은 장교 후보생들은 주로 군함에 배치돼 선임 장교들에게 직접 항해술과 해군 업무를 배웠습니다. 실제 배를 타고 경험을 쌓는 방식이었지만 교육 내용과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 항해술과 포술, 증기기관 등 해군 기술이 발전하면서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도 해군 장교를 전문적으로 교육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해군사관학교 설립에 영향을 준 특별한 사건도 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1842년 미국 해군 군함 ‘서머스’호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당시 함장은 선상 반란을 계획했다는 혐의를 받은 해군 장교 후보생 필립 스펜서와 선원 2명을 군함에서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필립 스펜서는 당시 미국 전쟁부 장관 존 스펜서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고, 젊은 해군 장교 후보생에 대한 교육과 규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첫 수업에서는 어떤 내용을 가르쳤습니까?
[기자] 지금과 비교하면 교육과정이 단순했지만, 당시 해군 장교에게 필요한 과목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수학과 항해술, 포술, 증기기관, 화학, 영어, 자연철학, 프랑스어 등이었습니다. 첫 교육과정은 5년으로 구성됐는데요. 첫해와 마지막 해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사이 3년은 실제 군함에서 복무하며 경험을 쌓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 1850년 학교가 해군사관학교로 개편되면서 4년 동안 학교에서 교육받고 여름에 함정 훈련을 하는 방식이 도입됐습니다. 이 구조는 오늘날 해군사관학교 교육과정의 기초가 됐습니다.
[진행자] 처음 학교 문을 열었던 사람도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초대 학교장은 해군 장교 프랭클린 뷰캐넌이었습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는 1845년 10월 10일 오전 11시쯤 교수 7명과 장교 후보생 약 50명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학교의 개교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뷰캐넌은 이후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남부연합 해군에 합류했습니다. 1864년 모빌만 해전에서는 남부연합 해군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해군 장교를 양성하는 기관의 초대 교장이 훗날 남북전쟁에서 미국 연방군과 싸운 인물이 된 겁니다.
2. Opening Ceremony of the 1964 Tokyo Summer Olympics — 1964년 10월 10일
[진행자] 두 번째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1964년 일본 도쿄로 가 보겠습니다. 이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여름 올림픽이 열렸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1964년 10월 10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제18회 하계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아시아 국가가 여름 올림픽을 개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대회에는 93개 국가올림픽위원회 소속 선수 약 5천150명이 참가했고, 10월 24일까지 경기가 진행됐습니다. 개막식에서는 히로히토 일왕이 대회 개회를 선언했습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9년 만에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전후 재건과 경제 성장의 성과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려 했습니다.
[진행자] 일본은 원래 1964년보다 훨씬 전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도쿄는 원래 194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일본은 올림픽 개최를 포기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으로 1940년과 1944년 올림픽 자체가 열리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올림픽 유치에 나섰고, 1959년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1964년 대회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개막식에서 성화를 점화한 사람에게도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는 당시 19살이었던 일본의 육상선수 사카이 요시노리였습니다. 그는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바로 그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전쟁이 끝나던 해에 태어난 젊은 선수를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 선택했습니다. 사카이가 국립경기장 계단을 올라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당시 개막식의 상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진행자] 이번 올림픽은 스포츠뿐 아니라 방송 기술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하죠?
[기자] 맞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위성 통신을 이용해 올림픽 영상을 태평양 건너 북미 지역으로 전송한 역사적인 대회였습니다. 당시 사용된 위성은 미국이 개발한 ‘싱컴 3호’, 영어로 ‘Syncom III’였습니다. 이 위성은 1964년 8월 발사됐는데요. 지구의 자전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정지궤도 위성이어서 지상에서 볼 때 거의 같은 위치에 머무르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장거리 통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촬영한 올림픽 영상을 우주에 있는 위성을 거쳐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이 실제 방송에 활용된 겁니다.
[진행자] 그러면 당시 미국 시청자들은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던 겁니까?
[기자] 일부 영상은 실시간으로 전송됐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개막식 영상 가운데 일부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 동부 지역에 실시간으로 전달됐습니다. 다만 모든 올림픽 경기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동시에 생중계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방송사의 편성이나 기술적 여건에 따라 녹화 방송도 이뤄졌습니다. 중요한 점은 위성 통신을 통해 대륙 사이의 거리와 시간을 극복하는 새로운 방송 방식이 실제 올림픽에서 활용됐다는 겁니다.
[진행자] 그런데 당시 위성 통신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한 상태는 아니었을 텐데요. 영상 전송 과정도 상당히 복잡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촬영한 영상을 지상 송신시설에서 위성으로 보내고, 위성에서 다시 미국 캘리포니아의 수신시설로 전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미국 내 통신망을 통해 방송사로 영상을 보냈습니다. 나사 기록에 따르면 올림픽 기간에는 녹화된 경기 영상도 매일 약 3시간씩 위성을 통해 전송됐습니다. 영상은 위성을 이용했지만 음성은 별도의 통신 케이블을 통해 보내고, 두 신호의 시간을 맞추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진행자]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서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학교가 문을 연 1845년 10월 10일, 그리고 아시아 최초의 여름 올림픽이 일본 도쿄에서 개막한 1964년 10월 10일. 역사 속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