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합니다. 최 기자,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습니까?
기자) 오늘은 한국은행의 최신 보고서를 바탕으로 북한의 소득 불평등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소득 불평등에 대한 얘기군요. 그렇다면 북한의 장마당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기자) 네, 전문가들은 장마당을 북한 소득 불평등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북한은 극심한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배급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결과 주민들이 너도나도 물건을 사고팔면서 장마당이 시작됐는데요. 탈북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가가 주는 월급은 별 의미가 없고, 주민들은 소득의 70%~80%를 장마당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장마당에서도 돈을 많이 버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이 뚜렷하게 나뉘게 되었다고 봐야겠죠?
기자) 네, 처음 장마당이 생길 때는 집에서 쓰던 물건이나 남는 채소를 내다 파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마당 판이 점점 커지면서 장사를 크게 벌리려면 밑천, 즉 '초기 자본'이 필요해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물건을 떼올 수 있는 정보나 연줄, 그리고 불법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당 간부들과 인맥을 가진 상인들이 엄청난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북한의 신흥 자본가, '돈주'입니다. 돈주들은 그 후 무역, 고리대금업, 부동산 투자, 광산이나 버스 운수업까지 손을 대었습니다. 반면, 밑천이 없는 일반 주민들은 장마당 매대를 운영하거나 매일 리어카를 끌고 나가 풀빵을 팔았고, 단속을 피해 다니는 메뚜기 장사, 그리고 짐을 나르는 일용직 노동자가 됐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한국은행이 이런 장마당 계층 변화를 분석한 것이군요?
기자) 네, 한국은행은 탈북민들의 증언과 설문 자료를 바탕으로 2014~2015년 경제충격이 장마당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상당한 경제난을 겪었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고, 수력발전이 멈춰 전력난이 극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대중국 수출까지 15% 가까이 곤두박질치면서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1.1% 뒷걸음질 쳤습니다. 문제는 이 '경제충격'이 모든 장마당 상인들에게 똑같이 닥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장마당 소득 양극화가 뚜렷해졌습니다. 장마당에서 하루벌이로 버티던 '중하위계층'이 외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소득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면서 극빈층으로 전락했다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진행자) 장마당의 '중하위계층'이 왜 극빈층이 됐을까요?
기자)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당시 곡물 가격 변동이나 단속 강화 등이 발생했을 때, '돈주'들은 축적된 달러와 위안화의 자본력으로 버텼습니다. 반면 작은 밑천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소상인들은 한두 번의 손실만으로도 밑천을 전부 탕진했습니다. 또 밑천을 잃은 상인들은 장마당의 매대 사용료(장세)를 내지 못해 정식 매대에서 쫓겨나고 결국 길거리 '메뚜기 장사꾼'으로 전락했습니다. 또 돈 없는 장사꾼들은 돈주가 빌려주는 고리의 사채에 의존하다가 결국 빈털터리가 되는 원인이 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평범한 장마당 상인들이 경제난의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은 셈인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기자) 보고서는 그 원인을 북한 특유의 '준시장화 (Quasi-marketization)'에서 찾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정상적인 시장경제 국가에는 공정한 경쟁을 돕는 법이 있고, 사유재산도 보호받습니다. 하지만 북한 장마당은 그런 제도가 없는 '반쪽짜리 시장'입니다. 법과 제도가 없으니 오직 '힘'과 '뒷배'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당 간부들과 결탁한 이른바 '돈주'들은 위기가 닥쳐도 끄떡없었습니다. 오히려 든든한 자본과 권력의 보호막을 이용해 상품을 매점매석하고 이익을 남깁니다. 반면, 매대 하나, 리어카 하나에 의존하던 중하위계층 장사꾼들은 가뭄과 물가 폭등이라는 충격파를 맨몸으로 맞아야 했습니다. 결국 밑천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으며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겁니다.
진행자) 그러면 2014~2015년 경제난이 지난 후 상황은 좀 개선됐나요?
기자)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한번 벌어진 소득 격차가 고착화되어 버렸습니다.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가뭄이 끝나고 북한 경제가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인 2016년 이후에도, 한 번 무너져 내린 소득 격차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이렇게 빈부격차, 양극화가 고착되면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양극화가 장차 북한 체제를 뒤흔드는 사회·정치적 폭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반 주민 입장에서 보면 장마당이 권력과 뇌물, 자본을 쥔 자들만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또 돈주들과 당·정·군 간부들의 밀착이 강화되면서 부정부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에서는 돈과 권력이 없으면 생존이 힘든 극단적인 신계급 사회가 돼 가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최근 장마당을 강하게 통제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양극화가 불러올 주민들의 불만과 체제 균열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동서남북, 오늘은 북한의 소득 불평등 문제를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