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무용론' 겨냥한 제재 효력 재평가…"북 핵 능력 제한할 유일 수단"

지난 2016년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지도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 한국 정부 등이 대북 제재의 효용성에 거듭 의문을 제기하고 제재 해제를 과제로 내세우면서 워싱턴에서는 제재의 근본적인 목적과 성과에 대한 재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제재 전문가와 미 전직 관리, 외교·안보 분석가들은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늦추는 데 큰 효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북 제재의 효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제재법, 안보, 핵기술 등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엔 등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거듭 촉구해온 중국과 러시아 외교 당국자들뿐 아니라 한국 정부 관리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미국에 ‘제재 재검토’를 거듭 요구하는 데 대한 워싱턴의 우려가 갈렸습니다.

[차덕철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 “제재가 한반도 비핵화에 어떠한 효과가 있었느냐? 그리고 제재의 목적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러한 점들은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런 점들은 분명히 평가하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 됐다….”

VOA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이달 중순까지 분석을 의뢰했던 각 부문 전문가들은 제재가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른바 ‘제재 무용론’을 일축하면서, 제재는 애초에 비핵화 목적으로 부과된 게 아니며 대신 북 핵 프로그램 진전을 막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대북 제재 체제를 구축하고 이행 현황을 점검했던 인사들은 제재가 북한의 해외 커넥션과 자금줄을 차단해 불균형한 경제 구조와 체제의 약점을 극대화함으로써 핵·미사일 프로그램 진전을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위원은 “제재가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거나 북한을 핵 포기와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시키는 외교 협상으로 유도하진 못했다”면서도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시스템 개발 속도를 늦추고 비용을 높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미국 재무부 분석관.

[윌리엄 뉴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Probably slowed and certainly raised the cost of developing WMD and ballistic missile systems but obviously sanctions did not derail programs or induce DPRK to return to diplomatic negotiations about giving up these efforts and returning to NPT as called for in UNSC resolutions.”

미 재무부 선임 경제자문관을 지낸 뉴콤 전 위원은 제재 효용성에 대한 일각의 의문과 해제 주장과 관련해 “무엇을 대가로 제재를 해제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재가 북한을 협상으로 유도하는 데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유력하게 지목되는 중국, 러시아 등이 제재를 엉성하게 적용하고 이행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Lifted in favor of what? In my view one of the major reasons sanctions have failed to induce DPRK to negotiate is slipshod adoption and enforcement, including by nations in addition to the usual suspects—China and Russia.”

특히 “북한에 암묵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하고 제재를 유예하거나 면제해 줄 경우 다른 나라들의 핵 보유 시도를 촉발할 것”이라며 “이란뿐 아니라 일본, 타이완,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이 그렇게 할 것이고, 핵확산금지조약에 작별을 고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Moreover, should the DPRK be given tacit recognition as a nuclear power and penalties be suspended, withdrawn or waved, other nations may well be encourages to attempt their own nuclear breakout—think beyond Iran to include Japan, Taiwan, ROK, Saudi Arabia, Brazil...—and kiss the NPT goodbye.”

뉴콤 전 위원은 “국제적 조정을 거친 대북 제재 압박을 가하고, 제재 회피를 돕는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를 적용해야 한다”며 “많이 늦었지만,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So, in my view it is way past time but not too late to put real, internationally coordinated sanctions pressure on North Korea and make aggressive use of secondary sanctions to dissuade those who would collaborate in helping with evasion.”

뉴콤 전 위원과 함께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로 활동한 후루카와 가쓰히사 전 위원은 앞서 VOA에 “북한이 제재 속에서도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전시킨 건 맞지만, 핵·미사일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 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후루카와 가쓰히사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Despite the sanctions, the DPRK has successfully advanced it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However, acquisition of the technologies is one thing. A mass production of the new nuclear weapons and missiles is another thing.”

후루카와 가쓰히사 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위원.

후루카와 전 위원은 “북한이 새 대량살상무기 시스템을 대량 생산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제재야말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가용 수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후루카와 가쓰히사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It is important to prevent the DPRK’s mass production of the new WMD systems. In the absence of the country’s intention to stop its WMD program, the sanctions are the only available means to constraint the DPRK’s WMD capabilities.”

이처럼 제도권 안에서 북한의 불법 활동과 제재 회피를 주시했던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넘어선 확산 활동을 크게 우려하며 대북 제재의 지속적인 적용과 보강을 촉구했습니다.

뉴콤 전 위원은 “북한이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게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북한은 핵과 화학전, 미사일 기술과 장비를 상습적으로 확산시키는 주범”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최근 리비아, 시리아, 이란 등과 협력하고 과거엔 이집트 등과 함께 일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At stake is more than just DPRK possession of peace threatening WMD and ballistic missile systems. The DPRK is a serial proliferator of nuclear, chemical warfare and missile technology and equipment, as shown by its recent collaboration with Libya, Syria, Iran, and past dealings with Egypt and others.”

또한 “북한은 테러 단체에 재래식 무기를 대는 중요한 공급자”였다며 “비국가 단체에 대량살상무기를 확산하는 것은 악몽 같은 잠재적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 “It has also been a significant supplier of conventional arms to terrorist groups. Proliferation of WMD to non-State groups poses a nightmarish potential problem.”

북한 핵 사찰과 협상에 참여해 북 핵 프로그램의 기술적 측면을 다뤘던 핵 과학자들은 특히 제재가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품목들의 북한 유입을 저지했다는 데 의미를 뒀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이달 초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에 따라 북한이 들여올 수 있는 품목이 제한되면서 자체 조달할 수 없는 기술과 최신 장비, 강철과 탄소 섬유 등 원료 수입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 “So it will have an impact on imports of technology, up to date equipment, some raw materials, which they cannot produce themselves, like some special steel, carbon fiber.”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제재가 없었다면 북한이 훨씬 빨리 핵 무력을 완성했거나 진전시켰을 것이라는 지적에 동의하면서 “제재는 조정이 필요한 것이지, 만약 없앤다면 북한은 자유를 줘서 매우 고맙다고 하면서 핵 개발 절차를 계속 밟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 “Just removing them? Well, they may say ‘Thank you very much. Now we can continue our program and thanks for giving this freedom and now we proceed.’”

2012년 미-북 간 2.29 합의에 참여했던 핵 전문가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도 “제재는 북한의 핵무기 관련 노력에 타격을 입혀왔다”며 “북한의 자금을 옥좨 해외에서 핵심 장비와 재료를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 “I think the sanctions have hurt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efforts in a couple of ways. One is reducing the amount of money that they have and making it harder for them to get vital equipment and materials overseas.”

특히 제재를 “그물”에 비유하면서 “북한이 그물에 구멍을 내고 그 사이로 뭔가 거래할 수 있지만, 제재가 없는 상황과 비교할 때 북한의 노력을 분명히 저해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

[녹취: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 “Now these things are like a net. They're not a wall. So North Korea can manage to cut holes in the net. Some things can slip through the net. So it's not ironclad but it has hurt their effort, compared to if the sanctions have not had not been in place.”

올브라이트 소장은 제재가 해제되면 북한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파키스탄의 핵무력 증강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라며, 북한과 거래해 온 중국 은행과 다국적 기업을 더욱 압박하고 북한과 중국에 거점을 둔 북한 해킹 세력을 겨냥해 막강한 사이버 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VOA가 인터뷰한 미 전직 관리들은 무엇보다 대북 제재가 비핵화를 목표로 고안된 수단이 아니라 북한의 불법 행위에 책임을 물리는 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대북제재가 비핵화에 기여하지 못했으니 이를 재검토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제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입니다.

아울러 대북제재의 효과를 비핵화 여부로 판단하는 대신 북한 무기 프로그램의 양적·질적 진전을 막는 유일무이한 장치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제재는 미국과 한국 등이 이행하는 종합적인 정책의 한 요소일 뿐”이라며 “북한이 국제 의무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기 때문에 부과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Sanctions are only one element of the overall policy being implemented by the United States, the ROK, and others. Sanctions have been put in place for a number of reasons, including Pyongyang's violation of its international obligations and its failure to abide by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실제로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한 2006년 1718호를 시작으로 2009년 1874호, 2013년 2087호·2094호, 2016년 2270호·2321호, 2017년 2356호·2371호·2375호·2397호에 이르기까지 10개의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은 모두 북한의 불법 행동에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채택됐습니다. 이 가운데 8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채택됐으며, 특히 2017년에 부과된 4개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등이 원인이 됐습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평화 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해도 김정은은 유독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며 “이는 제재가 미국의 중요한 레버리지라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나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제재를 맞바꾸거나 해제해선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녹취: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The United States was ready to give them a peace declaration, to exchange liaison officers, but Kim really asked for sanctions to be lifted. So this is clearly what the regime desires...And I think this is one important leverage that the United States have so that it shouldn't be traded away or given away without any kind of return from North Korea in terms of them taking some efforts, some steps towards denuclearization.”

전문가들은 또한 제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주의적 위기를 불러온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북한 주민을 어려움에 빠뜨린 원인으로 제재 등 외부 요인만을 열거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실정을 언급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어떤 제재도 인도적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현 경제 위기는 제재 때문이 아니라 형편없는 경제 계획과 관리상의 무능함이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I am not aware of any sanctions that are preventing humanitarian assistance from reaching the people of North Korea. Much of the current economic crisis in North Korea today is caused by poor economic planning and managerial incompetence, the self-imposed isolation and lockdown the regime has implemented because of the coronavirus pandemic, crop failures and bad weather, and the collapse of China-North Korea trade caused by Pyongyang's closure of the border.”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자체적 고립과 봉쇄, 흉작과 악천후, 국경 차단에 따라 붕괴된 북-중 무역 등도 북한 주민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 역시 모두 북한 정권이 자초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도 “주민들이 식량난을 겪는 와중에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등 군비 확충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북한”이라며 “북한인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한, 김정은의 정책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