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정원장 "미한 정상회담 전후 남북간 의미 있는 소통"

박지원 한국 국가정보원장.

미국과 한국의 대화 제의에 냉랭한 반응을 보여 온 북한이 지난달 미-한 정상회담을 전후해 한국 측과 모종의 소통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과 미-한간 조율된 구체적인 대화 재개 방안 등에 대한 북한 측의 관심이 반영된 행보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박지원 한국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21일 열렸던 미-한 정상회담을 전후해 남북간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졌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 원장은 북한 측과의 소통 시기와 내용, 연락 방법, 북한의 반응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남북 양측간 소통이 있었다는 점을 보고했다고 정보위 참석자들이 전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에 따르면 박 원장은 미-한 정상회담 결과에 북한이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배경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식 발표 없이 미국의 대북정책이나 미-한 정상회담에 대해 평가·분석을 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전했습니다.

박 원장은 또 “당 전원회의를 통해서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혹은 외무성을 통해 타이완해협, 미사일, 인권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는 공격적인 평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는 통과의례로서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하는 순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남북한 소통채널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는 국가정보원-통일전선부 라인을 통해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앞서 김여정 당 부부장이 지난해 6월 한국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대남 비난담화를 낸 직후 남북 통신선을 차단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북한쪽 서해상 한국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 전통문이 국정원- 통전부 라인을 통해 한국 측에 전달되면서 이 소통채널이 살아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의 대화 재개 제의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의 세부내용이나 후속 조치 등에 대해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든가 지금 후속 조치를 준비하는 내용 이런 것들은 북한이 상당히 궁금하게 여길 부분이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봐야겠죠.”

한국 정부의 미-북 협상 재개를 중재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불신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미-북 협상 재개를 위한 사전 조율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미국과 북한이 협상의 의지는 있는 상황에서 지금 협상의 패키지, 컴비네이션을 만드는 게 중요하거든요. 북한은 뭘 내놓고 미국은 뭘 내놓고. 그런데 이게 양측이 직접적으로 협상하기 보다는 한국 정부를 중간에 두고 협상을 하면 협상 파기의 부담이나 협상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직접 만나지 않는 상태에서 의사를 조율을 하고 어느 정도 조율이 되면 직접 만나겠죠 실무적으로. 지금 그 단계라고 봅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그러나 현 단계에서 북한의 대남 접촉은 한국 정부의 설득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상황 판단을 위한 정보수집 차원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접촉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끄는 효과를 내기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다만 북한의 도발을 자제시키는 긍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게 신 센터장의 평가입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북한이 정부 성명을 내지 않고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원 수준으로 비난의 수준을 낮췄다는 것은 한국 정부의 소통이 유의미하다 그렇게 봐요. 물론 북한을 대화로 끌어오는 역할까지 하지 않지만 북한이 부정적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막아가면서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려나가고 있다, 이 점은 평가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박지원 원장이 미-한 정상 성명에서 거론된 미-한 미사일 지침 종료나 북한 인권과 관련해 북한 측의 공격적 평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 발언으로 미뤄 북한이 당분간 대화 보다는 버티기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바이든 대북정책 검토나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부인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화에 당분간은 북한이 임할 생각이 없다라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당분간은 대화국면은 아니고 버티기로 좀 더 갈 국면이지 않을까 라는 게 조심스런 예측이겠죠.”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이달 상순으로 예고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나 미-한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직접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예상했습니다.

버티기 전략을 고수할 경우 김 위원장이 섣부른 직접 대응에 나서면 자칫 향후 대미 협상에서 전술적인 유연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조한범 박사는 설사 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관련 언급이 있다고 해도 바이든 행정부를 직접 겨냥한 높은 수위의 반발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편 박지원 원장은 정보위에서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자리에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거론되는 데 대해 “관련 첩보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박 원장은 다만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대미·민생·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관련 실질적 2인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용원이 제1비서가 되더라도 김 부부장에게 2인자 역할이 부여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