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문재인 대통령 비난 담화…한국 “몰상식한 행위, 더 이상 감내 않을 것”

지난 2018년 2월 한국을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겨냥해 미-한 동맹을 우선시한 사대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며 막말 섞인 담화를 내놨습니다. 한국 청와대가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위라며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경고하면서 남북관계가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17일 담화를 내고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 발언을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혹평하면서 거센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자기 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됐다”며 한국 측이 지난 2년 간 미-한 동맹 만을 우선시해왔다고 비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지난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북한이 최근 군사 도발을 시사하며 남북관계 긴장감을 고조시킨 데 대해 자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천만 겨레 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 없다며, 북한에 소통을 통해 주체적으로 협력사업을 찾아나가자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 등 남북 합의가 한 걸음도 이행되지 못했다며 이는 한국 측이 스스로 제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 올가미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 합의 위반으로 이어진 사례로 미-한 워킹그룹 출범, 미-한 연합훈련들을 열거했습니다.

남북 갈등의 직접적인 단초가 된 탈북민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의 메시지엔 이에 대한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에 대한 다짐”이 아닌 “변명과 술수로 범벅된 미사여구”만 있었다고 매도했습니다.

이와 함께 김 제1부부장은 한국 측의 최근 대북 특사 파견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2018년 3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북한 대외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한국 측이 지난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김 제1부부장이 이를 거절했다고 17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제1부부장은 한국 측이 특사 제안을 담은 통지문을 발송한 데 대해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김 제1부부장은 특사 파견 같은 비현실적인 제안을 하면서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시늉만 하지 말고 올바른 실천으로 보상하라고 압박했습니다.

북한이 한국 내 탈북민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지난 9일 남북 간 모든 연락 통신채널을 단절한 상황에서 이번 특사 제안은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간 ‘핫라인’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며 이토록 비굴한 상대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한국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에 대한 김 제1부부장의 원색적인 비난 담화에 대해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7일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윤도한 수석] “이는 그간 남북 정상 간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며 북측에 이런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청와대는 그동안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 행위에서 비롯된 잇단 대남 비난에 최대한 자제해왔지만 문 대통령을 모독하는 행태에까지 이르자 강경 대응으로 기조를 바꿨다는 관측입니다.

윤 수석은 특히 한국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했던 것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며 대북 특사 파견 제안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에도 도움 안 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김연철 한국 통일부 장관은 최근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17일 청와대에 사의를 전달했다.

이런 가운데 김연철 한국 통일부 장관은 최근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17일 청와대에 사의를 전달했습니다.

김 장관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많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남북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김 제1부부장의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 담화가 남북관계를 대결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에서 북한이 한국을 거칠게 압박하는 이유가 보다 선명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윤도한 수석] “한-미 실무그룹까지 문제 제기를 하면서 결국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 때문에 국제 공조와 한-미 공조를 중시해서 남북 간 협의를 지키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거기서 나와서 남북한이 우리민족끼리 가자,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당장 개성공단, 금강산 같은 것 주변 눈치보지 말고 해라 딱 그 얘기네요.”

박 교수는 북한이 이번 공세를 통해 미-한 동맹을 깰 순 없더라도 양국 관계를 흐트려 놓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를 통해 북한이 예고한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취할 것임을 확인했다며 문제는 남북 간 갈등이 깊어질 경우 북한이 추가 조치를 내놓을 지 여부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은 남북관계에 대해서 자기들이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그러니까 자기들의 불만을 표출해야 될 때라고 판단한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예고된 수순까지는 다 할 거에요. 그러나 그 다음 단계는 어디까지 갈 지는 좀 두고 봐야죠. 지금 김여정 담화에서 추가적인 조치는 아직 안 나왔거든요.”

조 박사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며 미-한 관계와 북한 요구, 한국 국민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평화프로세스 동력을 되살리려는 문재인 정부로선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