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는 미국 역사 이야기, ‘역사 속 아메리카 250’입니다. 조진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역대 대통령을 알아보는 시간이죠?
기자: 네, 오늘은 19대 미국 대통령, 러더퍼드 B. 헤이스에 관해 전해 드리겠습니다. 헤이스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컸던 대통령 선거 가운데 하나를 통해 백악관에 입성한 인물인데요. 남북전쟁 이후 미국 사회를 다시 통합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대통령직을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가장 논란이 컸던 대통령 선거 가운데 하나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기자: 1876년 대통령 선거에서 러더퍼드 헤이스 공화당 후보와 새뮤얼 틸던 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는데요. 개표 결과 틸던이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앞섰지만, 여러 주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놓고 심각한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연방 의회가 구성한 특별 선거위원회가 논란이 된 선거인단 표를 헤이스에게 인정하면서, 헤이스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 과정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마무리됐지만, 그 대가도 있었습니다. 당시 남부에는 남북전쟁 이후 흑인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요. 헤이스 정부는 남부의 정치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연방군을 철수시켰습니다. 이 조치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 정부가 남부 사회를 재편하고 흑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려 했던 정책이 사실상 막을 내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진행자: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쪽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기자: 일반투표에서 이기고도 백악관을 놓친 민주당 진영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헤이스의 당선을 비꼬며 그의 이름인 러더퍼드(Rutherford)와 사기를 뜻하는 ‘fraud’를 합쳐 '러더프로드(Rutherfraud)'라는 멸칭으로 불렀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취임 초기부터 정당성 시비에 시달려야 했고,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진행자: 앞서 연방군을 철수시켰다고 했는데, 국가를 다시 통합하려는 선택이었지만, 흑인 시민의 권리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연방군 철수 이후 남부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세력의 영향력이 커졌고, 흑인 시민의 투표권과 시민권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헤이스의 대통령직은 남북전쟁 이후 국가 통합을 추진한 시기인 동시에, 흑인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시기로 평가됩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헤이스 대통령은 어떤 정책을 추진했습니까?
기자: 헤이스 대통령은 정부의 부패를 줄이고 공직 인사 제도를 개혁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당시에는 공무원 자리를 정당에 대한 충성이나 정치적 인맥에 따라 나누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헤이스는 능력과 자격을 바탕으로 공무원을 선발하는 제도를 지지했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정부 운영을 좌우하지 않도록 공직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다만 이런 개혁이 헤이스 재임 기간에 완전히 정착한 것은 아닙니다. 이후 체스터 A. 아서 대통령 시기에 1883년 ‘펜들턴 공무원 개혁법’이 제정되면서 능력 중심의 공직 인사 제도가 본격적으로 확대됐습니다.
진행자: 공직 사회의 청렴을 강조한 셈인데, 백악관 행사에서도 독특한 원칙을 고수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맞습니다. 헤이스 대통령의 아내인 루시 헤이스 여사는 독실한 금주론자였는데요. 백악관 만찬이나 공식 행사에서 일절 술을 내지 않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외교관들을 위한 연회에서도 와인 대신 물이나 레모네이드만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레모네이드 루시’란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요. 이 때문에 워싱턴의 정치가들과 외교가에서는 백악관 만찬이 너무 지루하다며 거센 불만을 터뜨렸고, 헤이스 대통령 부부를 향해 농담 섞인 원성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루시 헤이스 여사에게 ‘레모네이드 루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죠.
진행자: 헤이스 대통령은 한 번만 대통령을 지냈죠?
기자: 맞습니다. 헤이스는 취임할 때 ‘단임(4년 임기 한 번)’만 수행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대선 결과의 정당성 논란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재선 욕심을 버림으로써 정실 인사 개혁이나 남부 정책 등의 과제를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추진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4년 임기를 마친 뒤 정계를 떠났습니다.
진행자: 대통령으로서의 무거운 과제와는 별개로, 백악관에서 시작된 재미있는 전통도 있다고요?
기자: 네. 지금도 매년 열리는 백악관의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 ‘이스터 에그 롤(Easter Egg Roll)’입니다. 1870년대에는 어린이들이 부활절 월요일에 미국 의사당 잔디밭에서 달걀을 굴리며 놀았는데요. 잔디밭이 훼손된다는 우려로 의사당 부지에서 이 놀이가 제한됐습니다. 그러자 1878년 헤이스 대통령이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어린이들에게 개방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백악관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가 연례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린이와 가족들이 참여하는 백악관의 대표적인 봄철 행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행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기자: 헤이스는 1881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오하이오주로 돌아갔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교육 기회 확대와 사회 개혁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헤이스의 대통령직은 선거의 정당성, 남북전쟁 이후의 국가 통합, 그리고 시민의 권리를 둘러싼 어려운 질문을 미국 역사에 남겼습니다.
진행자: 논란의 선거로 대통령이 된 뒤 국가 통합과 공직 개혁을 추진했지만, 남부의 흑인 시민 권리 보호라는 과제도 남긴 19대 대통령 러더퍼드 B. 헤이스 이야기, 조진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