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을 전해 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입니다. 조진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기자: 미국 문화라고 하면 보통 할리우드 영화나 팝 음악, 브로드웨이 같은 것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그런데 미국인의 식탁이나 동네 축제, 가족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와 노래도 미국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입니다. 이런 ‘평범한 미국인의 일상’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가 워싱턴 D.C. 의회도서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유명한 예술가나 스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문화로 보는 전시인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의회도서관의 ‘미국 민속생활센터(American Folklife Center)’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Alive in Many Hands’라는 전시입니다. ‘수많은 손길이 만든 미국의 문화’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문화를 만들어 왔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9월 18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됐고, 2028년 1월 8일까지 열립니다. 전시에서는 음악과 춤, 음식, 공예, 놀이, 직업과 관련된 전통 등 미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들고 이어온 다양한 문화를 보여줍니다.
진행자: 그런데 ‘민속문화’라고 하면 오래된 전통이나 옛날 물건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어떤 것들을 볼 수 있습니까?
기자: 상당히 다양한데요. 예를 들어 미국 남부에서 전해 내려온 음악부터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 이민자들의 음식과 생활문화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그중에는 조금 특별한 물건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때 흑인 여행객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행 안내서, ‘그린 북(Green Book)’입니다.
진행자: 그린 북이라면 과거 흑인 여행객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데 사용했던 책이죠?
기자: 맞습니다.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절, 흑인 여행객들이 어디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주유를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안내서였습니다. 전시에서는 이 그린 북에 등장했던 사업가들의 이야기와 당시 미국인들의 경험을 구술 기록을 통해 보여줍니다. 특히 뉴올리언스의 유명한 요리사였던 리아 체이스(Leah Chase)와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리아 체이스가 운영했던 식당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 흑인들이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는 장소이자 지역사회의 중요한 만남의 공간이었는데요. 그린 북은 이런 장소들을 흑인 여행객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그린 북은 당시 흑인 여행객들에게 단순한 여행 안내서 이상의 의미가 있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미국 남부 등지에는 해가 지면 흑인이 거리 다니는 것조차 금지되던 일명 '일몰 도시(Sundown Town)'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린 북은 단순히 맛집을 찾는 책이 아니라, 일종의 '안전 지도'였습니다. 차별의 아픔 속에서도 서로 정보를 나누며 생존하고 공동체를 지켜낸 미국인들의 지혜가 담긴 유물인 셈입니다.
진행자: 단순한 옛날 책 한 권에서도 당시 미국인의 삶을 읽을 수 있는 거군요.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고요?
기자: 네.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934년 민속음악 연구자인 존 로맥스(John A. Lomax)와 그의 아들 앨런 로맥스(Alan Lomax)는 당시로서는 매우 크고 무거운 녹음 장비를 들고 루이지애나주를 찾았습니다. 노예제에서 해방된 뒤에도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두 흑인 여성, 베키 엘지(Becky Elzy)와 앨버타 브래드포드(Alberta Bradford)의 영가, 즉 흑인 공동체에서 전해 내려온 종교적인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노래를 불렀고, 당시 녹음된 자료 가운데에는 영가 10곡이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뒤 의회도서관이 이 녹음을 공개하면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두 여성의 후손들이 그 녹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겁니다. 한 세대의 목소리를 기록해 놓은 것이 수십 년 뒤 가족들에게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진행자: 이 전시는 과거의 생활문화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변화하는 문화까지 보여준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남서부에 거주했던 나바호족, 즉 ‘디네(Diné)’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을 보여주는 직물 작품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전통적인 주거 형태만 있는 게 아닙니다. 20세기 이후 자동차와 트럭, 버스 정류장, 도시의 모습도 함께 표현돼 있습니다. 전통문화를 그대로 보존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시대가 바뀌면서 문화도 함께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결국 미국의 민속문화는 과거에 만들어져 박물관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금도 살아가면서 계속 만들어 가는 문화인 셈입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민속문화’라는 게 꼭 옛날에 만들어진 문화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군요.
기자: 네. 바로 그 점이 이 전시가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이 가족에게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전하고, 지역의 노래를 부르고, 축제에 참여하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들려주는 순간에도 문화는 만들어집니다. 미국 민속생활센터가 지난 50년 동안 기록해 온 것도 바로 이런 일상의 모습입니다.
진행자: 건국 250주년을 맞은 미국에서 ‘미국 문화’를 아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전시인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반드시 유명한 영화나 음악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지역과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고, 노래하고, 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 온 수많은 전통이 모여 미국의 문화가 된 겁니다. 그리고 의회도서관은 그 평범한 순간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돌아본 미국인의 일상과 문화, ‘Alive in Many Hands’ 전시 이야기였습니다. 조진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