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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인터뷰] "아시아인 외모에 짙은 미국 남부 억양" 편견을 깨부순 한국계 입양인 컨트리 가수
기자) 코디는 한국에서 태어난 뒤에 미국으로 입양돼 오클라호마 시골 농장에서 자라셨는데요. 그곳에서의 성장 과정은 어땠나요?
코디) 네, 저는 생후 13개월 때 입양되어 여기서 자랐어요. 그리고 생후 13개월부터 18살까지 거의 쭉 여기 살았죠. 졸업하고 나서…제 생각엔 졸업하고 한 2주일 뒤까지 여기에 살았죠. 그리고 어, 뭐랄까 그냥 컨트리하게 사는 삶을 살았던 거죠. 사냥하고 낚시하고 일하고 밖에서 뭔가 하고. 제 말은 어, 그냥 자연을 즐겼던 것 같아요.
기자) 음악인이 되기 전에는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가스 파이프라인 현장에서 오랜 시간 일하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힘든 육체노동 현장을 떠나 음악에 도전하게 됐나요?
코디) 어, 그러니까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였어요. 사실 저는 파이프라인 현장을 떠나서 자동 용접 회사 공장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방에서 해고가 일어나는 중이었어요. 그리고 그게 어쩐지, 신이 뛰어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일들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해고를 받아들이는 순간이 이 음악 커리어에 뛰어들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이었던 거죠. 문이 닫히는 동시에 문이 열렸던 거죠. 그런 상황이 '나도 이걸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기자) 코디의 노래에는 진솔하고 거친 노동 계층의 정서가 깊이 담긴 것 같습니다. 이전 노동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이 곡을 만드는데 직접적으로 영감을 줬나요?
코디) 그럼요. 제 노래 중에 '하이스쿨 테라피(High School Therapy – 고등학교 심리상담실) '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건 한 용접공이 늘 하던 말에서 나온 거예요. '다잉 브리드(Dying Breed – 사라지는 부류)'라는 곡도 제 친한 친구들이나 제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가진 사고 방식이 상당 부분 그런 식이죠. 하지만 뭐, 그게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고, 그게 컨트리예요. 제가 같이 자란 사람들이고, 지금도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제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제가 직접 썼든 안 썼든, 제 머리 속에서 누군가나 제 삶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들어요. 아니면 제가 그걸 소화해 내기 위해 직접 겪었거나, 봤거나, 들었다고 느껴야만 하는 그런 노래들이죠. 왜냐하면 그게 바로 컨트리 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생각에 컨트리는, 뭐랄까, 실제 삶을 다룬 깊은 뿌리와 무거운 가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노래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기자)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셨나요,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해 줬나요?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코디) 자라면서 제 목소리가 좋다고 말해준 사람은 사실 엄마가 유일했어요. 뭐,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겠지만요. 하지만 제 안에 음악적 성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음악적 재능이 있는지는 몰라도, 합창단에 들어가거나,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죠. 네, 노래하는 걸 즐겼어요. 특히 인구가 겨우 600명밖에 안 되는 이런 곳에서 자라면서는, 꿈을 너무 크게 꾸지 않게 되거든요. 물론 큰 꿈을 꾸긴 하지만, 그것을 좇아가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해요. 그리고 제 마음에 꼭 해야겠다고 품었던 일도 아니었어요. 저는 해군사관학교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목표와 꿈, 그리고 직업으로서 그게 훨씬 더 달성 가능하고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네, 역시나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정말 정신없는 여정이 되었죠.
기자) 전국적으로 방영된 TV 음악 경연에 참가해 큰 주목을 받기도 하셨는데요. 그 경험은 어땠고,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코디) 확실히 눈이 뜨이는 경험이었어요. 재미있기도 했고, 확실히 도전적이기도 했어요. 그건 인정해요. 음, 쇼를 녹화할 때 제작진들도 그 쇼에 대해 정확히 뭘 해야 할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물론 뭘 하는지 알긴 했지만 첫 시즌에 쇼가 어떻게 될지 정확히는 몰랐던 거죠. 저희 같은 출연자들은 캐스팅되자마자 곧바로 촬영에 투입되었고, 그냥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확실히 도전이었고요죠. 저는 다른 사람의 노래를 많이 안 부르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가장 큰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커버 곡 1분 반짜리를 2일, 길어야 3일 안에 익혀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비즈니스의 그 이면을 보고, 또 [CBS 더 로드(The Road) 제작에 관여한] 키스 어번, 그레첸 윌슨, 블레이크 쉘튼, 그리고 테일러 셰리던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을 듣고, 그들이 데려온 모든 게스트들을 보면서 그들이 그 레벨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보는 건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저는 늘 이렇게 말하곤 해요. 제가 이 음악 산업에서 이룬 모든 것들은 그냥 어리석은 시골 백인 노동자의 관점에서 비롯된 거라고요. '이게 맞는 것 같은데, 그냥 가서 하자' 이런 식이죠. 그래서 그 거대한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볼 수 있었던 건 멋진 경험이었어요.
기자) 아시아인의 외모와 특유의 짙은 남부 억양 사이의 반전에 대해 유쾌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오셨는데요. 컨트리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아티스트로서 내슈빌과 텍사스 음악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코디) 하하. 네. 저는 그 점에 대해 약간 유머를 섞어 말하곤 해요. 왜냐하면 자랄 때 저는 여기에서 아시아인으로서 거의 혼자였거든요. 저랑 제 여동생, 그리고 다른 작은 가족 한두 팀 정도를 빼면요. 하지만 그건 결국 네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다는 마인드를 갖게 만드는 그런 일들 중 하나예요. 목소리가 어떠하든 상관없죠.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역할에 제가 덜컥 떠밀려 들어오게 된 셈인데요. 얼마 전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흑인 컨트리 가수인] 찰리 프라이드처럼 아시아계 컨트리 아티스트 중에서 그런 존재야. 우리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길을 닦고 있는 셈이지"라고요. 확실히 도전이었죠. 정말 그랬어요. 너무 세부 내용까지 파고들지 않고 말하자면, 제 외모 때문에 미국이 아시아계 컨트리 아티스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저를 거절한 음반사도 있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농담을 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팬들만이 유일하게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팬들은 상식적이거든요. 들여다 보고는 "야, 이거 대단한데" 하죠. 처음에는 이런 일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 장난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어 제 이야기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 "아 이 친구 진짜네, 노래 할 줄 아네"라고 생각하게 되죠. 아무도 뻣뻣하고 꽉 막힌 사람을 원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텍사스 쪽은 별로 그렇진 않지만 내슈빌에서 제가 겪었던 일들은, 그들이 너무 수치적으로,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우리가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다른 아티스트들을 밀어줘야 해" 이런 식인 거죠.
제 말은, 왜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해 그렇게 꽉 막힌 기준을 들이대며 강요해야 하는지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제가 그 문제에 대해 농담을 섞어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결국 깊이 들어가 보면 우리는 모두 똑같거든요. 뛰는 심장이 있고, 그 심장에서 손끝과 발끝까지 피가 뿜어져 나오니까요. 그리고 저는 다시 말하지만, 그냥 삶에 대해 노래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컨트리 음악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거기에 비즈니스를 얹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 이건 이래야 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 이렇게 생겨야 해, 이렇게 소리 내야 해"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요. 하지만 제 생각엔, 컨트리 음악은 그냥 노래와 얼마나 공감되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노래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은 다 어디 갔죠?
기자)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습니다.
코디) 네, 아니에요. 제 말은, 그게 바로 컨트리라는 거예요. 솔직해지는 것, 사람들에게 정말 진솔하게 대하는 것. 저는 포장하지 않아요. 결국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물론 조금 더 힘들 수도 있지만, 내가 틀렸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저 같은 경우는, 제 매니저한테 물어보면 알겠지만, 늘 전화해서 "내가 이건 잘 모른다"거나 "내가 이 부분은 틀렸어"라고 말하곤 해요. 그 두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그 두 가지를 할 수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어요. 하지만 본인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책임을 다하도록 잡아줄 수 있어야죠.
기자) 네. 좋은 이야기네요. 남들과 다른 경로로 음악 산업에 자리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을 버티게 해준 것은 무엇일까요?
코디) 음, 저는 뭔가를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날씨가 어떻든 현장 관리자가 어떻든 그냥 악으로 버텨내야 했던 파이프라인 일들을 해본 적이 있거든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제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그냥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했죠. 하지만 거짓말은 안 할게요, 이 업계는 또 너무 짜증 나는 순간들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문을 닫아버리곤 해요. 몇 주 동안 소셜 미디어에 제 소식이 안 올라오기도 하죠. 물론 그게 제가 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는 걸 100% 잘 알고 있어요.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저한테 있는 거죠.
하지만 제가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원동력은, 팬들이고, 제 가족이고, 그리고 정말 쉴 틈 없이 일하는 제 매니저예요. 여전히 제 음악을 믿어주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래서 저는 제 좁은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해요. "야, 너는 너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이걸 하고 있는 거야"라고요. 세상에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저한테 있거든요. 이 소셜 미디어라는 멍청한 공간에서 다른 뭔가가 화제거리가 돼서 제 목소리가 묻혀버린다 할지라도 말이에요. 결국 다시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고 그냥 해"라고 다독이게 되는 거죠. 결코 포기하지 않는 마인드셋, 그리고 팬들과 가족, 우리 팀이 바로 그런 원동력이에요.
기자) 남은 하반기에도 코디의 공연 일정이 많던데요. 주로 어디에서 공연을 하나요?
코디) 텍사스 공연이 많아요. 사람들은 늘 저희가 텍사스 밖으로 나가서 다른 곳에서도 공연해 주기를 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새로운 지역에서의 티켓 판매 추이와 그곳까지 이동하는 비용을 맞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게 좀 까다로운 일이죠. 텍사스에서만 활동하는 일부 아티스트들이 얼마나 버는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새로운 지역을 뚫고 들어가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아마 이해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분명히 노력하고 있고,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일들도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투어의 대부분은 텍사스에서 이루어질 겁니다. 그래도 뉴멕시코나 콜로라도처럼 저희가 가본 적 없는 몇몇 지역들도 돌 예정이에요. 네브래스카는... 아주 오래전에 딱 한 번 가봤나,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캔자스에도 다시 가고요. 그래서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어요. 오클라호마, 아칸소, 미주리 전부 다요. 미주리는 아마 딱 한 번 공연해 봤을 거예요. 그래서 여기저기 몇 군데 지역을 돌 예정이고, 저희도 아주 기대하고 있어요.
기자) 조금 다른 질문인데요. 입양되신 이후에 한국을 방문해 보신 적이 있나요?
코디) 없어요. 제 여동생은 여러 번 다녀왔는데요. 와, 저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여행을 안 가요. 제가 졸업하고 독립한 이후로 인생에서 딱 한 번 휴가를 가봤나 봐요. 그런 면에서는 저는 정말 완전히 최악이죠. 저는 일종의 '워커홀릭'인 것 같아요. 그게 저를 표현하는 가장 쉬운 단어겠네요. 늘 주변 사람들한테 "아, 끝내야 할 일이 산더미야, 끝내야 할 일이 산더미야"라고 말하고 다녀요. 이 인터뷰가 끝나면 또 끝내야 할 일이 수백만 개는 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인생에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요.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늘 여기서 끝내야 할 일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거든요. 하지만 꼭 돌아가 보고 싶어요. 아직 머릿속에서 그걸 어떻게 조율하고 떠날 채비를 해야 할지 스위치를 켜지 못했을 뿐이죠.
기자) 마지막으로, 앞으로 미국 컨트리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으신지, 또 자기 분야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도전하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요?
코디: 마지막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고정관념에 대해서 말이에요. 어렸을 때 자라면서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제 머릿속에는 오히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왜 내가 그걸 못 하지?", "이런 말을 도대체 누가 하는 거지?" 하고요. 나이가 들고, 백인들이 거의 전부인 용접이라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했을 때도... 물론 그 사람들은 제 친구들이고 아무도 저한테 못 한다고 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저를 믿어준다는 사실에서 큰 자신감을 얻었죠. 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는데도 말이에요.
인간의 삶은 짧아지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저는 더 어린 친구들이나, 아니면 60대인 분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요. "가서 하세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인데, 정말 열정을 가진 일이라면 왜 안 하겠어요?"라고요. "아, 그때 그거 했어야 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며 방구석에서 투덜거리기만 할 건가요? 그냥 가서 부딪히세요. 저는 '행동하는 사람'이에요. 그 누구도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못 합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그게 나쁜 성향일 수도 있지만, 또 많은 영역에서는 엄청난 장점이에요. 제게 주어진, 축복받은 이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겁니다. 저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에요. 솔직히 사람들의 99%는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제 시간에 나타나서, 민폐 안 끼치고, 자기 맡은 일 최선을 다해 해낸다면 말이죠. 그러면 당신의 외모가 가졌던 부정적인 시선이 오히려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뀐다고 느껴요.
그리고 컨트리 음악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는요. 여전히 업계에 시골 감성을 가진 이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에요. 저는 진짜 스토리텔링과 진짜 진솔한... 뭐라고 해야 할까요? 누구를 비판하지 않고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요즘 컨트리 음악에서는 진짜 컨트리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아요. 사운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죠. 저는 컨트리 음악에 진짜 시골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진솔한 가사를 보고 싶고… 누군가 컨트리 팝을 하든 컨트리 록을 하든 상관없어요. 저도 음악 팬이니까요. 하지만 결국엔 진짜 컨트리 사람들, 진짜 진솔한 사람들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그런 흐름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