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변화시킨 혁신: 5MB에서 클라우드까지…데이터 저장 기술 70년

컴퓨터용 내·외장 하드 드라이브 이미지

진행자) 미국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구석구석 USA’입니다. 월요일은 미국을 변화시킨 혁신을 만나보는 시간인데요. 오늘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핵심 기술을 살펴봅니다. 조상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기자) 오늘의 키워드는 ‘데이터 저장’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검색 엔진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데이터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기술이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 9월 14일은 미국 IBM이 세계 최초로 하드디스크를 탑재한 컴퓨터 시스템, ‘RAMAC(래맥)’을 발표한 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방 하나를 차지하던 장치에서 손톱만 한 반도체와 클라우드로 이어진 데이터 저장 기술의 발전을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70년 전 처음 등장한 RAMAC, 어떤 장치였습니까?

기자) RAMAC은 ‘회계와 통제를 위한 임의 접근 방식(Random Access Method of Accounting and Control)’이라는 뜻의 영어 표현을 줄인 이름입니다. IBM이 1956년 9월 14일 공식 발표했는데요. 데이터를 자기 디스크에 기록해 보관하고, 필요한 정보를 곧바로 찾아낼 수 있도록 만든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시스템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데이터를 구멍이 뚫린 종이 카드, 이른바 천공카드에 저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하는 정보를 찾으려면 수많은 카드를 정해진 순서로 읽고 분류해야 했는데요. 정보를 한 번 찾는 데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RAMAC은 이런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모든 정보를 처음부터 차례로 훑지 않고도 원하는 위치로 이동해 필요한 데이터를 몇 초 만에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를 처음부터 감아 원하는 노래를 찾던 방식에서, 화면을 눌러 곧바로 원하는 곡을 재생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과 비슷합니다.

진행자) 지금의 하드디스크와 작동 원리도 비슷했나요?

기자) 기본 원리는 비슷합니다. RAMAC의 저장장치에는 자성 물질을 입힌 여러 장의 알루미늄 원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원판을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읽기와 쓰기를 담당하는 장치가 원하는 위치로 이동해 데이터를 기록하거나 읽었는데요. IBM 연구진은 회전하는 원판과 장치가 직접 부딪치지 않도록 압축 공기를 이용해 읽기 장치가 원판 표면 위에 떠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원리가 이후 하드디스크 기술의 토대가 됐습니다.

진행자) 초기 컴퓨터를 보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잖아요. 하드디스크도 왠지 처음에는 크기가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기자) 네. 저장장치만 대형 냉장고 두 대 정도의 크기였고, 무게는 1톤이 넘었습니다. 전체 컴퓨터 시스템은 방 하나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요. 그렇게 큰 장치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는 약 500만 자였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흔히 약 5메가바이트 정도로 소개됩니다. 5메가바이트면 요즘 스마트폰 사진 몇 장을 저장하기에도 부족할 수 있는 용량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많은 종이 문서와 카드를 하나의 장치에 저장하고, 원하는 내용을 바로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IBM이 당시 이 장치를 ‘기적의 기억장치’라고 소개했을 정도입니다.

진행자) 처음에는 어떤 분야에서 사용됐습니까?

기자) 기업의 회계와 재고 관리, 주문 처리처럼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확인해야 하는 업무에 활용됐습니다. 제약회사 화이자와 유나이티드항공, 뉴욕대학교, 미 해군 조선소 등이 초기 사용자였는데요. 196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쿼밸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는 경기 결과를 집계하는 데 RAMAC이 사용됐습니다. 이전에는 점수를 계산하고 순위를 발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컴퓨터에 기록된 데이터를 불러오면서 결과를 훨씬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종이 대신 디스크를 사용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과 기관이 필요한 순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수정하고, 다시 저장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진행자) 데이터가 단순한 기록에서 실제 업무에 활용되는 정보로 바뀐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과거의 데이터가 서류함에 넣어 두는 기록에 가까웠다면, 하드디스크의 등장 이후에는 현재 상황을 판단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항공사는 남은 좌석을 확인해 예약을 처리할 수 있게 됐고, 기업은 어느 제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파악해 재고를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와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도 필요한 고객 정보를 신속하게 불러오는 저장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드디스크의 크기는 계속 작아지고 용량은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방 하나를 차지하던 저장장치가 기업용 컴퓨터 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개인용 컴퓨터와 노트북에 탑재됐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요즘 컴퓨터에서는 하드디스크라는 말을 잘 안 쓰잖아요. 보통 SSD라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되는데, 두 장치는 어떻게 다른가요?

기자) 하드디스크는 원판을 물리적으로 회전시키면서 데이터를 읽고 씁니다. 반면 SSD는 움직이는 부품 없이 낸드플래시라는 반도체에 데이터를 저장합니다. 회전하는 원판과 읽기 장치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SSD가 훨씬 빠르고 소음도 적습니다. 충격에도 비교적 강하고 크기를 작게 만들 수 있는데요. 컴퓨터를 켜거나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도 SSD가 널리 보급된 영향입니다. 스마트폰에도 이와 같은 계열의 플래시 저장 기술이 사용됩니다. 70년 전에는 1톤이 넘는 장치가 맡았던 일을 이제는 손톱만 한 반도체가 처리하는 셈입니다.

진행자) 최근에는 NVMe(Non-Volatile Memory Express)라는 용어도 자주 나오는데요. 이것도 새로운 저장장치입니까?

기자) NVMe는 저장 매체의 종류라기보다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식을 정한 통신 규격입니다. 기존 하드디스크에 맞춰 만들어진, 오래된 연결 방식 대신, SSD의 빠른 성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고 데이터가 이동하는 경로를 단순하게 만들어 대기 시간을 줄였는데요. 그래서 고성능 컴퓨터와 서버, 인공지능 시스템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요즘은 파일을 컴퓨터보다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클라우드는 하드디스크나 SSD와 전혀 다른 기술인가요?

기자) 클라우드는 새로운 형태의 물리적 저장장치라기보다, 멀리 떨어진 데이터센터의 저장공간을 인터넷을 통해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클라우드에 올리면 사진이 공중 어딘가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의 하드디스크나 SSD에 실제로 기록됩니다. 이용자는 저장장치가 어디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인터넷만 연결되면 필요한 자료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클라우드 업체들은 데이터가 사라지거나 서비스가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같은 정보를 여러 장치나 지역에 나누어 저장하기도 합니다.

진행자) 데이터 저장 기술이 미국 산업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데이터를 모아 두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필요할 때 즉시 찾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검색 엔진은 방대한 웹 문서를 저장해 두고 이용자의 질문과 관련된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야 합니다. 전자상거래 업체도 상품 정보와 재고, 결제 내역, 배송 상황을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데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동영상 서비스, 소셜미디어, 인공지능 역시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고 불러오는 기술 없이는 운영되기 어렵습니다. 1956년 RAMAC이 처음 보여준 ‘필요한 정보에 바로 접근한다’는 개념이 오늘날 디지털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가 된 것입니다.

진행자) 앞으로 데이터 저장 기술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까요?

기자) 더 많은 정보를 더 작은 공간에 저장하면서도, 필요한 데이터를 더 빠르게 꺼내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답변을 생성하려면 막대한 데이터를 계속 읽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저장장치의 속도와 전력 효율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은 70년 전과 같습니다. 정보를 어디에 보관할 것인지, 그리고 필요할 때 얼마나 빠르게 찾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진행자) 오늘은 IBM의 RAMAC 발표 70주년을 맞아 미국 컴퓨터 데이터 저장 기술의 발전을 살펴봤습니다. 조상진 기자였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