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혁신과 문화, 경제와 스포츠까지 미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는 ‘구석구석 USA’입니다. 오늘은 미국의 스포츠 이야기를 만나보는 시간인데요. 조상진 기자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습니까?
기자) 미국에서 가을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날씨가 선선해지고 나뭇잎 색깔이 바뀌는 것도 있지만요. 미국 스포츠 팬들에게는 또 하나 확실한 신호가 있습니다. 바로 미식축구, 풋볼이 돌아오는 겁니다. 이번 주 2026년 미국 프로풋볼(NFL) 정규시즌이 시작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경기 자체보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풋볼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풋볼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미국의 가을과 겨울을 대표하는 문화가 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정말 미국에서는 풋볼의 인기가 대단하죠. 어느 정도입니까?
기자) 숫자 하나만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올해 2월 열린 슈퍼볼을 미국에서 평균 약 1억2천560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역대 슈퍼볼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시청자였는데요.
미국 인구가 약 3억 4천만 명인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숫자죠. 미국인 3명 중 1명이 봤다는 얘기니까요. 게다가 슈퍼볼만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NFL 시즌이 시작되면 일요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여러 경기가 이어지고, 일요일 밤에는 ‘Sunday Night Football’, 월요일 밤에는 ‘Monday Night Football’이 있습니다. 목요일 밤에도 경기가 있고요.
그러니까 가을이 되면 미국의 한 주 일정 곳곳에 풋볼이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미국에도 야구와 농구, 아이스하키처럼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가 많잖아요. 풋볼은 어떻게 그중에서도 이렇게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겁니까?
기자)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오랫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프로스포츠라고 하면 야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NFL의 뿌리가 되는 프로풋볼 리그는 1920년에 출범했지만 초기에는 지금과 같은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텔레비전이었습니다. 1951년 NFL 챔피언십 경기가 처음으로 미국 전역에 TV로 중계됐고요. 1950년대 중반부터는 정규시즌 경기들도 TV를 통해 더 넓은 지역으로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58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볼티모어 콜츠와 뉴욕 자이언츠의 NFL 챔피언십 경기가 특히 중요한 경기로 꼽힙니다. 연장전까지 이어진 극적인 승부였는데요. 전국의 시청자들이 이 경기를 TV로 지켜봤고, 이후 프로풋볼의 인기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이 경기는 지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TV와 풋볼의 궁합이 상당히 좋았던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풋볼은 공격과 공격 사이에 자연스럽게 멈추는 시간이 있고요. 그 사이에 해설과 리플레이를 보여주기도 좋습니다. 경기장 전체를 TV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도 좋고요. 그리고 NFL은 TV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전국 단위의 TV 중계 계약이 본격화됐고, 1970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바로 ‘Monday Night Football’이 시작된 겁니다.
진행자) 월요일 밤에 풋볼 한 경기를 전국에 보여주는 거죠? 그게 왜 중요한 변화로 꼽힐까요?
기자) 지금은 너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스포츠 경기를 매주 평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편성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첫 ‘Monday Night Football’은 1970년 9월 뉴욕 제츠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경기였는데요. 이후 월요일 밤 풋볼은 단순한 스포츠 중계를 넘어 미국 TV 문화의 일부가 됐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NFL은 야구나 농구에 비해 정규시즌 경기 수가 훨씬 적습니다. 한 팀이 일주일에 보통 한 경기만 하죠.
진행자) 그러니까 한 경기, 한 경기의 무게가 더 클 수 밖에 없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야구팀이 오늘 지더라도 내일 또 경기가 있지만 풋볼은 다음 경기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팬들도 한 경기에 더 집중하게 되고, ‘이번 일요일에는 누구와 경기한다’는 식으로 한 주를 기다리는 문화가 생긴 겁니다. 특히 일요일 오후가 NFL의 중심인데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가을이 되면 일요일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만나 음식을 준비하고 TV 앞에 모여 풋볼을 보는 풍경이 아주 익숙합니다.
진행자) 경기장에 직접 가는 사람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상당히 즐긴다고 하던데, 어떤 모습인가요?
기자) 네. 바로 ‘테일게이팅’ 문화인데요. NFL 경기장에 가보면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주차장이 북적입니다. 팬들이 차를 세워 두고 트렁크를 열어 놓은 채 그릴에 햄버거나 핫도그, 고기를 굽고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팀 유니폼을 입고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다른 팬들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표를 사서 경기장에 들어가 3시간 동안 경기를 보는 것만이 NFL 관람의 전부가 아닌 거죠. 어떤 팬들에게는 아침부터 경기장에 가서 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응원하다가 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하루 전체가 하나의 행사입니다.
미국 스포츠에서 테일게이팅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게 되는데요. 특히 풋볼과 아주 강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진행자) 프로풋볼뿐 아니라 대학 풋볼에서도 중요한 문화죠?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는 NFL 말고도 풋볼을 다양하게 접합니다. 금요일 밤에는 지역 고등학교 풋볼 경기를 보고, 토요일에는 대학 풋볼, 일요일에는 NFL을 보는 식이죠.
지역에 따라서는 고등학교 풋볼 경기가 지역사회 전체의 큰 행사이고, 대학 풋볼팀에 대한 충성심도 프로팀에 못지않습니다. 결국 풋볼이라는 스포츠가 학교와 지역사회, 대학, 프로스포츠까지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는 겁니다.
진행자) 그런데 요즘에는 그냥 자기 팀만 응원하는 게 아니라 선수 개개인까지 아주 열심히 챙겨 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기자) 맞습니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한 게 ‘판타지 풋볼’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실제 NFL 선수들로 나만의 가상 팀을 만드는 게임인데요. 시즌 전에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리그를 만들고 각자 선수를 뽑습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그 선수가 패스를 얼마나 했는지, 터치다운을 몇 번 했는지 같은 기록에 따라 내 판타지팀의 점수가 결정됩니다.
진행자) 그러면 내가 응원하는 NFL 팀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까지 관심을 갖게 되겠네요.
기자) 바로 그겁니다. 예를 들어 저는 워싱턴 커맨더스를 응원하는데 제 판타지팀에는 라이벌 팀인 댈러스 카우보이스 선수가 있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러면 원래라면 관심 없었을 다른 지역의 경기까지 보게 됩니다. 판타지 풋볼의 시작은 196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당시에는 참가자들이 신문에 나온 선수 기록을 직접 찾아서 종이에 점수를 계산했습니다. 이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훨씬 쉽고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됐고요. 이제는 NFL을 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됐습니다.
진행자) 풋볼이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장치가 여러 개 있는 것 같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가장 크게 폭발하는 날이 바로 슈퍼볼입니다. 슈퍼볼은 NFL의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지만 미국에서는 사실상 하나의 비공식적인 국민 행사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풋볼 팬이 아니어도 슈퍼볼 파티에 가고요. 어떤 사람은 경기를 보기 위해, 어떤 사람은 하프타임 공연을 보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광고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습니다.
기업들도 슈퍼볼에 맞춰 특별한 광고를 준비하고, 집에서는 피자나 치킨, 간식을 잔뜩 준비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경기를 봅니다. 그래서 슈퍼볼은 스포츠와 음악, 광고, 음식, 소비가 한꺼번에 만나는 미국 대중문화의 큰 행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미국에서 이렇게 인기 있는 풋볼이 세계적으로 보면 축구만큼 널리 퍼진 스포츠는 아니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것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미국에서는 ‘football’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식축구를 뜻하지만,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는 축구를 먼저 떠올리죠. NFL도 최근에는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넓히고 있습니다. 미국 밖에서 정규시즌 경기를 열고 있는데요. 그리고 이번 2026 시즌에도 국제경기가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점차 미식축구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진행자) 미국인들의 가을과 겨울을 책임지는 풋볼, 이번 주부터 그 일상이 다시 시작되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2026년 NFL 정규시즌이 이번 주 시작됩니다. 첫 경기는 9일 수요일 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지난해 슈퍼볼 우승팀 시애틀 시호크스의 경기인데요. 지난 2월 슈퍼볼에서 맞붙었던 두 팀의 재대결입니다. 이어서 주말에는 본격적으로 일요일 경기들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앞으로 미국의 식당이나 바에 갔는데 사람들이 TV를 보면서 갑자기 환호하거나, 일요일 오후에 이웃집에서 여러 사람이 팀 유니폼을 입고 모여 있는 모습을 보신다면요. 단순히 풋볼 경기 하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미국의 가을이 다시 시작됐다고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 네. 오늘은 NFL 새 시즌 개막을 맞아 풋볼이 어떻게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이자 가을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았는지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조상진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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