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혁신과 문화, 경제와 스포츠까지 미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는 '구석구석 USA'입니다. 오늘은 미국을 변화시킨 혁신을 만나보는 시간인데요. 조상진 기자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습니까?
기자) 집에서 청소하다가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게 조금 떨어져 있으면 큰 청소기를 꺼내시나요? 아니면 작은 무선청소기를 쓰시나요?
진행자) 요즘은 아무래도 무선청소기가 편하죠.
기자) 그렇죠. 충전해뒀다가 필요할 때 바로 들고 와서 쓸 수 있으니까 이제는 너무 익숙한 물건인데요. 그런데 이런 무선 제품의 발전에 1960년대 미국의 우주개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달의 암석을 채취하기 위해 개발한 특별한 드릴에서 시작해 미국 가정의 무선청소기와 전동공구, 심지어 병원의 수술 도구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진행자) 달에서 쓰던 드릴 기술이 무선청소기로 이어졌다고요? 어떻게 연결되는 겁니까?
기자) 이 이야기는 미국이 사람을 달에 보내기 위해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달에 간 우주비행사들에게는 여러 가지 임무가 있었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달의 암석과 토양을 채취해서 지구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달 표면에 있는 돌과 흙만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달 표면 아래에는 어떤 물질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죠. 그러려면 땅속 깊이 구멍을 뚫어 원통 모양의 토양과 암석 표본, 이른바 코어 샘플을 꺼낼 수 있는 드릴이 필요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달에서는 그냥 전동드릴을 가져가서 쓸 수는 없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당연히 전기 콘센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우주비행사들이 달 착륙선에서 떨어진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표본을 채취해야 했기 때문에 자체 전원을 가진 휴대용 장비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우주로 가져가는 장비니까 가벼우면서도 작아야 하고, 단단한 달 표면을 뚫을 만큼 힘도 있어야 했습니다. 배터리는 한정돼 있으니까 가능한 한 적은 전력으로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했고요.
진행자) 당시 기술 조건에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었겠네요.
기자) 그렇죠. 이 드릴 개발을 맡은 회사가 미국의 공구업체 블랙앤드데커(Black & Decker)였습니다. 이 회사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함께 일하기 전부터 이미 무선 공구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1961년에는 충전식 무선 드릴도 선보였고요. Black & Decker는 기존의 무선 기술을 훨씬 까다로운 우주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계획에 사용할 장비를 개발하면서 특별한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드릴의 모터를 어떻게 설계해야 전력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연구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제한된 배터리로 가능한 한 오래, 그리고 강력하게 작동하는 도구를 만들어야 했던 거죠. NASA는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이후 Black & Decker의 배터리식 제품 개발을 위한 더 강력한 기술적 기반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실제로 그 드릴이 달에서도 사용됐습니까?
기자) 네. 이렇게 개발된 달 탐사용 드릴은 1971년 아폴로 15호 임무에서 사용됐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 아래의 표본을 채취하는 데 활용됐는데요. 그런데 흥미로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달에서 사용하기 위해 발전시킨 기술과 경험을 회사가 지구에서도 활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Black & Decker는 무선 잔디깎이와 관목을 다듬는 무선 전동공구 같은 제품을 내놓았고요. 그리고 1979년에는 지금도 이름이 잘 알려진 작은 무선청소기, ‘더스트버스터(Dustbuster)’를 출시합니다.
진행자) 이게 지금 아주 널리 사용되는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청소하는 작은 청소기죠?
기자) 맞습니다. 지금 보면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새로운 제품이었습니다. 청소기라고 하면 전원 코드를 꽂고 큰 본체를 끌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Dustbuster는 작고 가벼워서 한 손으로 들고 사용할 수 있었고요. 사용하지 않을 때는 충전기에 꽂아뒀다가 음식 부스러기 같은 게 떨어지면 바로 꺼내서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청소기라는 기계의 성능만 바꾼 게 아니라 ‘청소기를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셈이죠.
진행자) 그 영향이 청소기에서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다른 분야에도 많이 사용됐죠?
기자) 네, 집에서 사용하는 무선 드릴과 정원용 전동공구뿐 아니라 자동차와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무선 공구에도 활용됐고요. 더 뜻밖의 곳은 병원입니다. Black & Decker는 아폴로 계획에서 발전시킨 무선 기술을 바탕으로 정형외과 수술에 사용할 수 있는 무선 의료기기도 개발했습니다. 드릴과 절단 장비 같은 수술 도구인데요. 전선이 없으니까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진행자) 달의 암석을 뚫던 기술이 결국 사람의 뼈를 수술하는 장비에도 활용된 거네요. 그런 걸 흔히 ‘NASA 스핀오프(spinoffs)’라고 부른다면서요?
기자) 맞습니다. NASA는 우주개발 과정에서 나온 기술이나 전문지식이 민간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지는 것을 ‘스핀오프’라고 부르는데요. NASA가 직접 만든 제품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NASA와의 연구나 계약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노하우가 기업의 새로운 제품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올해는 이 NASA ‘Spinoff’가 이런 사례를 기록해 온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NASA는 올해도 우주 탐사를 위해 개발하는 기술이 의료, 항공, 농업을 비롯한 지상의 여러 분야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네, 오늘은 달 탐사를 위해 발전한 기술이 어떻게 미국 가정과 산업, 의료 현장의 무선 제품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조상진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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