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김정은 '반통일 선언' 후폭풍 겪는 듯

  • 최원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지난 1월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반통일’ ‘반민족’ 선언 이후 북한 내부가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반통일’ ‘반민족’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요. 그 배경과 의미를 최원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반통일’’반민족’’반평화’ 발언은 지난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나왔습니다.

김 위원장은 시정 연설을 통해 헌법에서 ‘평화통일’과 ‘동족’ '민족대단결'같은 표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우리 공화국의 역사에서 동족,민족,통일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합니다.”

김 위원장의 이런 지시에 따라 몇가지 조치가 이뤄졌습니다.

평양 남쪽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철거됐으며 ‘애국가’에서 ‘삼천리’ 라는 단어가 빠졌으며 지하철 ‘통일역’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단순히 ‘역’으로만 표기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이한 것은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언론의 반응입니다.

시정연설 다음날인 16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 전문을 게재했습니다.

그러나 17일부터는 노동신문에 ‘반통일’’반민족’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은 한마디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노동신문에는 ‘당의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데 대해서’ 또 김 위원장의 ‘군수공장 현지지도’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과거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 또는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하면 노동신문이 후속 기사를 게재하는 것은 물론 평양에서 1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군중대회를 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반통일, 반민족 같은 엄청난 언급을 했지만 노동신문은 관련 기사를 싣지 않고 또 군중대회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 조선중앙-TV에도 관련 보도가 없습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으로 북한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일’과 ‘민족’은 지난 70년간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일성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해온 최고의 정치적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기 때문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통일과 민족을 부정한 거죠. 삼천만 겨레 쓰지마라,삼천리 금수강산 쓰지마라, 북한 주민을 지배해왔던 정신세계를 부정하는 것이거든요.”

이와 관련 김영호 한국 통일부 장관도 25일 KBS와의 대담에서 북한의 이런 ‘통일 지우기’ 움직임이 “세습 권력의 기반이 되는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을 지우는 것으로 북한 내부 엘리트 사이 이념적 공백이나 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이 의도치 않게 부작용을 내고 있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민족’과 ‘통일’을 부인한 것은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것인데 북한 내부에서 혼란이 일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Some side effects, he doesn’t make big deal of it internally. Obviously speech in Supreme People Council…”

평안남도 평성에 살다가 2011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조충희 씨는 북한 당국이 유훈을 부정하기도 어렵고 또 남한과 북한 사람이 왜 한민족이 아닌지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씨]”설득을 못하죠.또 설득할 생각이 없을 거에요. 민족은 민족인데, 현재 상황을 설명하다 보니까, 반통일, 반민족으로 표현이 된 것인데, 주민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북한 수뇌부가 뒤늦게나마 ‘반통일, 반민족’ 연설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수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반통일 연설은 지난해 12월 26일 평양에서 열린 노농당 중앙위원회 8기9차 전원회의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 위원장은 헌법에서 ‘평화통일’과 ‘동족’같은 표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2월 8일 인민군 창건일인 ‘건군절’ 연설부터는 다소 달라졌습니다. 이 날 김위원장은 “한국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한 것은 천만지당한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두 연설에서 언급한 ‘반통일, 반민족’ 은 이날 연설에서 빠졌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건군절 연설에서 반통일, 반민족이 빠진 것은 북한 당국이 수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2월 8일 건군절 연설을 보면 대한민국이 주적이라는 얘기는 있지만 통일을 안한다, 민족이 아니다는 얘기는 빠져있거든요. 김위원장이 선대의 유훈을 부정하는 얘기를 했기때문에 어떻게 수습할지 북한 당국도 고민하는 것같다.”

이번 ‘반통일’ 연설 사건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상당히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겁니다. 만일 김 위원장이 연설에 앞서 당정군의 많은 간부들과 사전 논의를 했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을 비롯한 최측근 몇명하고만 논의해 정책을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김정은과 김여정,조용원, 리일환 이런 몇명 측근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고,북한의 집단 지성이 돌아가고 있지 않다.”

미국과 한국은 김 위원장의 ‘반통일’정책에 조금씩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은 김 위원장의 연설 중 ‘반통일’ 보다는 대남 위협에 주목했습니다. 이에따라 한국과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해 북한의 도발에 대처한다는 입장입니다.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면서도 ‘통일’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행사 기념식 연설에서 “북한 정권의 폭정과 인권유린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 주민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을 것이며,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