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한 "자유로운 인도태평양 질서 가꿔나가자"

낸시 펠로시(왼쪽) 미 하원의장과 김진표 한국 국회의장이 4일 서울에서 회담 후 공동언론발표를 내고 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방한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행보에 관해 미한 대북 억지력의 징표라고 말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윤 대통령에게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질서를 가꿔 나가자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4일 방한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40분간 전화통화를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김 1차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특히 펠로시 의장이 이끄는 미 의회 대표단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에 관해 “미한 간 대북 억지력의 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미한 동맹은 여러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도덕적 측면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있다”며 “워싱턴에서 최근 미한 추모의 벽 제막식이 거행됐듯이 그동안 수십년에 걸쳐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온 평화와 번영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가꿔나갈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미한 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질서를 가꿔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미한 정상회담과 관련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앞으로 발전시키는 데 미 의회와도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고 김 1차장은 설명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이에 앞서 김진표 한국 국회의장과 한국 국회에서 회담을 한 뒤 가진 공동 언론발표에서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핵 무력 고도화에 대한 공동 대응 의지를 밝혔습니다.

김진표 의장입니다.

[녹취: 김진표 한국 국회의장] “양측은 북한의 위협 수위가 높아가는 엄중한 상황에 우려를 표했고 우리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하고 확장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국제 협력 및 외교적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이루기 위한 양국 정부의 노력을 지원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낸시 펠로시(왼쪽) 미 하원의장과 김진표 한국 국회의장이 4일 서울에서 주먹을 맞대 인사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시급한 상황에서 안보상 위기로 시작된 미한 관계가 따뜻한 우호 관계로 변했다”며 “회담에서 경제와 안보, 거버넌스의 의회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Our three main pillars are security, economics and governance. In all three of those areas the U.S. S.Korea relationship is very strong and we learn from each other.”

펠로시 의장은 “저희가 의회 대표단으로 순방한 세 가지 중요한 목적은 안보, 경제, 거버넌스”라며 “세 분야 모두 미국과 한국이 굉장히 탄탄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5월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이니셔티브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한 논의를 했다”며 “우리는 협력을 통해 모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미한 양국 관계는 굉장히 특별하고 공동의 가치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이겨내는 것이나 지구를 구하는 것 등 이야기할 게 많고 기회도 많다”며 “국가 정상만이 아니라 의회 간 협력으로도 이를 증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의장은 “회담에서 미한 동맹이 군사 안보, 경제, 기술 동맹으로 확대되는 데 주목하며 포괄적인 글로벌 동맹으로의 발전을 의회 차원에서 강력히 뒷받침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진지하게 협의했다”며 “동맹 발전에 대한 양국 국민의 기대를 담아 동맹 70주년 기념 결의안 채택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장은 “새 정부 출범 직후에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펠로시 의장이 연달아 방문한 것은 미한 관계에 있어서 상징적이고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하원의장 방한은 2002년 데니스 해스터트 당시 의장 이후 20년 만입니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 연방하원 의원단을 이끌고 아시아 5개국을 순방 중입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타이완을 거쳐 3일 방한한 데 이어 일본도 방문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미-러 갈등, 북 핵 위협 심화 등으로 민주주의 국가 대 권위주의 국가간 대립구도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펠로시 의장의 방한은 민주 진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행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윤석열 정부 출범 또 더 길게 보면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한-미 동맹이 글로벌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거든요. 또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 한-미 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했기 때문에 이 흐름에서 북 핵 문제에 대응한 한-미 동맹 강화 이 측면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죠.”

한편 북한은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에 대해 이례적으로 즉각적인 당국 차원의 비난 입장을 내보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일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에 대해 “미국의 파렴치한 내정간섭 행위”라며 중국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북-중 관계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미-중 갈등 구도가 격화될수록 외교적 활동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타이완 이슈가 불거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측면이 점점 축소되면 축소될수록 북한의 입지가 넓어지기 때문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중국 편을 들고 있고 또 그런 맥락 속에서 자기들의 행보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보여집니다.”

한편 타이완을 자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을 내정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타이완을 겨냥한 고강도 군사훈련에 돌입했습니다.

미군도 타이완 동남부 필리핀해에 항모전단을 전개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국제협력센터장은 타이완을 둘러싼 긴장이 우발적 충돌 등으로 과열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 북한도 이에 편승한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병광 센터장] “미국이 지금 러시아에 전선이 형성돼 있고 대만 문제로 중국과 충돌하게 되고 그러면 북한 핵 문제나 미사일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북한이 상황에 따라선 그런 것을 노리고 지역정세에 편승한 도발을 할 수도 있죠.”

박 센터장은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에 대해 한국 정부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반발을 의식해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는 양상이라며 이달 중으로 예정된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얘기가 오갈지 한국 정부에게 부담스런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